사람은 누구나 선지자이고 싶어하고 순교자이고 싶어한다. 선지자를 바라고 순교자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신을 이끌어주기를 바란다. 누군가 자신을 위해 희생해주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를 위해 그를 이끌고 그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고귀하고 명예로운 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로지 특별한 능력을 가진 특별한 사람만이 그것을 행할 수 있다. 사람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더욱 이타적일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란 가장 무서운 재앙이기도 한 것이다. 끝도 없이 펼쳐진 대지 위를 사람들이 걸어간다. 저 너머에는 낙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저 아득한 지평선 너머에는 젖과 꿀이 흐르고 향기로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풍요롭고 아름다운 낙원이 있어 사람들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지평선이 끝나는 그곳에 깎아지른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향기로운 꽃에는 독사가 숨어있고, 풍요로운 숲에는 맹수가 우글거리며, 평탄한 대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일 것이다. 아무리 한참 저 앞에서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선지자라 할지라도 결국은 사람인 것이다.
그럼에도 믿는다. 자신은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는 숭고한 사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아직 다 오지 않았다. 맹수의 습격을 받아 희생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약속한 땅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독사에 물려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이것은 단지 약속한 땅이 내리는 시련에 불과할 뿐이다. 늪으로 들어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리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단지 믿음이 부족한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이 그 증거다. 사람들이 희생되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양심의 고통이야 말로 자신이 그들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가장 큰 증거인 것이다. 자신은 옳다. 틀리지 않았다. 모두가 죽어나가는 - 최소한 자신이 죽어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똑똑하다. 능력있다. 그런데 정의롭고 성실하기까지하다. 자신이 가진 능력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사명으로 받아들인다.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일을 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능력이며 그를 위해 주어진 재능이다. 그를 위한 과정에서의 사소한 희생 쯤이야. 자신조차 얼마든지 제물로 바칠 수 있는데 작은 희생 쯤이야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고귀한 시련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그로 인해 모두가 행복한 낙원에 이를 수 있다. 그럴 능력이 있고 그럴 책임이 있다. 차라리 멍청한데다 무능하고 탐욕스럽기만 한 사악한 인간이었다면 그 피해란 고작 그 주위의 일부에게나 미치고 말 뿐일 것이다. 게으르기까지 하다면 어차피 그럴 의지조차 없을 테니 피해는 더 적어진다. 똑똑해서 문제고, 그럴 능력이 있어서 문제고, 그런데다 성실해서 문제다. 정의롭다는 것은 반성도 회의도 없다는 뜻이다. 재앙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더구나 더 큰 문제는 그같은 선지자의 소명의식이 세속의 이익과 만나게 되는 경우다. 목적을 위한 수단을 정당화하는 숭고한 정의가 세속의 계량되는 이해와 만난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바로 '효율'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효율이란 지금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단어인 동시에 그로 인해 얻게 되는 이익을 뜻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생에 비해 더 큰 이득을 얻었기에 자신은 옳았다. 모두를 위해 옳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도 이익이 되었다. 선지자이자 순교자인 김세진(이기우 분)이 글로벌라이프라는 현실의 자본과 만나게 되는 이유다.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며 인체실험을 강행하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일부 부작용들을 사소한 문제로 치부한다. 정치권력이 여기에 더해진다. 아니 정치권력이란 바로 그러한 신성의 사명과 세속의 이익이 결합된 결과일 것이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을 만들려 한다. 백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치료해야 할 대상인 병과 환자인 인간이 필요하다.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만들고 백신의 성능을 입증해 줄 숭고한 희생자를 만들어낸다. 백신을 더욱 널리 알리고 보급하기 위해서라도 경각심을 주기 위해 바이러스를 퍼뜨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죽어나가는 몇몇 사람들 정도야 더 큰 목표를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에 불과할 것이다. 결국 그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면 그들의 희생도 가치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전제는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소수에 자신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누구도 자신이 희생될 것을 전제로 실천에 옮기지는 않는다. 아니 자신마저 희생하고자 하는 순교자이기까지 하다면 더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절반이 죽어도 절반이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의미가 있다.
흥미로운 캐릭터일 것이다. 세속적인 욕망을 나타내는 황선숙(조덕현 분)고 글로벌라이프에 비해 김세진은 오히려 선량해 보이는 온건한 인물로 그려진다. 과묵하고 성실하고 다정하다. 누가 보더라도 그는 좋은 사람이다. 그런데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모두를 위해, 대한민국 국민과 나아가 인류 전체를 위해 모든 종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부터 인간을 구원해줄 슈퍼백신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를 위해서라면 거대다국전자본의 탐욕과도 타협하고, 그 과정에서의 불법적인 인체실험마저 기꺼이 감수한다.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슈퍼백신을 사용해 사람들을 살릴 고민 뿐이다. 죄책감이란 그저 하찮은 자기연민에 불과하다. 그조차 자신이 치러야 할 댓가다. 가까운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며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이 그 희생의 증거다. 그는 고귀하다.
이명현(엄기준 분) 반장은 어찌보면 상당히 세속적인 캐릭터다. 오히려 황선숙이나 글로벌라이프는 고도로 정제된 욕망이 현실로부터 유리된 듯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오로지 이익만을 위해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모든 것을 계량하고 판단할 수 있는 황선숙 등에 비해 이명현은 여전히 감정에 휩쓸리고 그런 자신을 주체하지 못한다. 무엇이 자신을 위해 - 혹은 모두를 위해 이익이 되는가보다 당장 죽어나가는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 더욱 그를 움직이는 힘이 된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가 하는 원대한 사명보다 당장 죽어나갈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를 분노케 할 뿐이다. 그는 선지자도 순교자도 아니다. 그냥 인간이다. 울고 웃고 화내고 슬퍼하는 그저 인간. 어쩌면 세속의 인간이 그것이 신이 되었든 악마가 되었든 신성에 도전하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는 길가메쉬였던 것일까?
인간이 신이 되려 한다. 인간이 신성을 탐낸다. 혹은 순수한 인간을 꿈꾼다. 순수한 세속이라는 것도 결국은 신성의 또다른 형태다. 신성에는 인간이 없다. 신성은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최초의 신성은 인간을 도구로써 만들었다. 신성 앞에 인간이란 아주 작은 미천한 수단에 불과하다. 자본이라는 이름의 신성이 되었든. 혹은 권력이 그 자리를 대신하든. 아니면 어떤 정의가 - 어떤 필연의 사명이 그것을 의미하든. 그리고 재앙이 찾아온다. 역사가 가르쳐주듯 그렇게 인간에게 가장 큰 재앙은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일 것이다. 우상이라 부른다. 인간이 만들어낸 신성이다. 인간이 그렇게 믿고 있는 신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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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는 사소하다. 그런 것은 그 과정에서의 아주 작은 그저 도구에 불과하다. 인간조차 도구에 불과하다. 하긴 현실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같은 사고에 익숙해 있다. 대를 위해 소가 희생한다. 더 큰 목적을 위해 작은 것이 희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를 위해. 민족을 위해. 회사를 위해. 혹은 가족을 위해. 자신을 위해서라는 말은 오히려 순수하기만 하다. 인류를 위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영웅이란 재앙의 다른 말일 것이다.
영웅물이었다면 김세진은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 텐데도. 이명현은 영웅물의 주인공이기에는 너무 세속적이고 너무 약하다. 특출난 것이 없다. 무엇도 특별한 부분을 찾아볼 수 없다. 메마른 듯 어떤 향기조차 느껴지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차라리 사람의 땀내가 더 지독할 정도다. 발냄새마저 나는 것 같다. 거창하지만 사소하다는 점에 드라마의 미덕이 있다. 드러내지도 강요하지도 않는다. 담담히 보여준다. 배우들의 연기마저 차분히 가라앉아 있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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