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트로트를 듣고 있으면 구성지다거나 신명나다거나 하는 인상은 있어도 세련되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래서 트로트를 어른들의 동요라 부르기도 한다. 쉽고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인 노랫말과 친숙한 멜로디가 동요처럼 특히 기성세대의 삶 속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어쩌면 유치하기까지 한 순수함과 솔직함이 세대를 뛰어넘어 사람들로 하여금 트로트를 듣고 또 따라부르게 만드는 것일 게다.
확실히 그런 점에서 심수봉은 트로트가수로서 - 아니 작곡가로서도 매우 유별난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기는 심수봉이 처음부터 트로트를 하겠다고 음악을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다. 심수봉의 음악적 뿌리는 당시의 많은 대중음악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미군무대의 연주자로서였다.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웠지만 미군무대에서 그녀는 밴드의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녀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리듬감은 바로 그런 그녀의 전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신파조의 노랫말과 구슬픈 멜로디에도 어느새 어깨가 절로 들썩이는 신명을 느끼고 마는 것이 흥겨운 리듬이 노래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흥겨움을 놓아버렸을 때는 왁스가 부른 '미워요'처럼 그저 청승맞은 애절한 트로트로 돌아가고 만다.
집안부터가 증조할아버지는 피리의 명인에, 할아버지는 판소리의 대가, 고모는 승무의 무형문화재였다.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미군무대에서는 드러머로서 해외의 선진적인 음악들을 일찌감치 체화하고 있었다. 이미 미군무대를 통해 보다 세련된 해외의 음악들을 몸으로 체화하고서 어쩔 수 없는 여러 이유들로 인해 트로트를 하게 되면서 트로트라는 장르 자체에 변화를 주고자 했던 당시의 많은 음악인들처럼 그녀의 그같은 남다른 환경이나 그녀가 쌓아온 경험과 지식들이 그녀의 음악에도 깊은 영향을 주게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아직 20대 초반이던 젊다기보다는 어리다는 말이 더 어울리던 시절 그녀가 선택한 트로트는 아무래도 기존의 트로트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니 트로트라기보다는 그저 대중가요였을 것이다. 그녀만의 익숙하면서도 보다 세련된 대중들이 즐길 수 있는 대중가요였을 것이다.
지금도 당시 심수봉의 데뷔곡이던 '그때 그 사람'을 듣고 있으면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세련되다. 분명 멜로디와 가사는 트로트의 그것인데 재즈인 듯 해외의 어딘가의 다른 장르의 음악인 듯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의 경우도 유치할 정도로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가사가 마치 싯귀처럼 절로 음악이 되어 불려지는 것 같다. 트로트의 솔직담백함과 마치 노랫말 자체가 노래가 되어 불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달라붙는 멜로디가 그녀만의 독특한 리듬에 실려 노래가 들려주는 신명 그 자체를 어디론가부터 불러들이는 것 같다. 신이 내린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가 어린 나이에 겪어야 했던 좌절과 수모는 그런 그녀의 재능에 대한 운명의 시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확실히 다르다. 분명 왁스는 노래를 부를 줄 아는 가수다. 왁스가 부른 '미워요'는 아니나 다를까 그녀다운 훌륭한 노래였다. 그러나 다르다. 그저 신파조의 구성진 트로트에 지나지 않는다. 중간에 삽입된 영화 'Love Story'의 메인테마가 특별한 느낌을 주고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썩 잘부른 트로트 이상의 느낌은 주지 못한다. 훌륭하지만 그러나 하필 그 대상이 심수봉의 '미워요'라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심수봉의 '트로트'는, 아니 심수봉이 추구하는 대중'가요'는 분명 이와는 다른 것이었을 터다.
오히려 심수봉의 노래를 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외국국적에 한국말까지 서툰 박재범이 아니었을까. 미국에서 나고 자라며 일상에서 체화한 리듬감이 오히려 심수봉이 추구하는 그것과 많이 닮아 있었다. 가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기는 한가 의심이 들 정도지만 그럼에도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의 가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소화해 들려주고 있었다. 음역이라든가 성량과 같은 하드웨어에서 분명 박재범은 많은 모자란 점이 있을 테지만, 노래를 표현한다고 하는 가수로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재능에 있어 남다른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퍼포먼스와 노래가 따로 놀고 있었다는 것. 겉돌고 있었다. 오히려 이제까지의 박재범의 무대와는 달리 퍼포먼스가 노래를 받쳐주지 못하고 있었다.
바다가 부른 '사랑밖에 난 몰라'를 들으면서 필자는 한참을 고민에 빠져 있었다. 머릿속을 간질이는 것이 있었다. 무언가 그녀의 노래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떠오를 것만 같았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을 더 지나고 나서야 필자는 그 단어를 마침내 찾아낼 수 있었다. '애절'. 꾹꾹 눌러담은, 슬픔이라는 감정조차 초월한 듯한 안타까움이 '애절'이라는 단어마저 넘치려 하고 있었다. 마치 고백처럼. 마치 독백처럼. 마치 자기의 이야기를 하듯. 마치 자기에게 들려주려는 것처럼. 원망처럼. 미움처럼. 그러나 그조차 자신을 연민하고 포용하며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벌써 바다도 이런 나이가 되었던가. 요정이 여인이 되고 여성이 되었다. 무대에서 그녀는 누구보다 크고 아름답다.
포맨의 신용재가 스스로 인정했던 것처럼 어쩌면 심수봉 자신의 지금의 남편에 대한 프로포즈곡이었을 '비나리'를 지나치게 처절하게 편곡해 부른 것은 아니었을까. 필자 역시 그런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노래가 아니었을 텐데. 하지만 노래에 얽힌 심수봉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해 버리고 말았다. 짝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간절히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반드시 이 사람이어야 하고, 이 사람이었으면 싶고, 이 사람이 아니면 안될 것 같다. 목숨마저 걸어야 할 것 같은 치열했던 사랑의 기억이 누구나 한 번 쯤은 있을 것이다. 중년의 나이에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 필자로서는 그저 부럽기만 할 뿐. 포맨이라면 어울린다. 사랑이란 그런 것일 게다.
시즌3는 기약없는 헛된 희망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TOP밴드2>가 낳은 최고의 스타라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이들 장미여관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음악의 정체를 비로소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룹사운드라 불렀다. 아직 대중음악이 여러 장르로 갈라지기 전, 그저 '가요'라고만 불리던 그 시절 밴드라는 형식을 통해 화려한 밤의 무대에서 연주되어지던 음악이었을 것이다. 록이라는 장르로만 특정지을 수 없는 보편적인 대중과의 접점에 존재하던 일상의 쾌락으로서의 음악이었을 것이다. 들어서 구성지고 불러서 즐겁다. 어느새 따라 일어서서 어깨를 들썩이며 흥겨워한다. 유치하지만 진지하다. 아니 유치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누구보다 진지하기 때문이다. 음악의 악자는 즐거울 락(樂)자다.
JK김동욱은 남자였다. 신용재의 평가에 동의한다. 심수봉은 철저히 여자의 입장에서 여자의 마음으로 '백만송이의 장미'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JK김동욱이 그 노래를 부르는 순간 그것은 어느새 남자의 노래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짐승같다는 말이 이럴 때 딱 어울린다. 모든 것은 삼켜버리는 탐욕스런 짐승의 울부짖음과도 같았다. 진심보다도 더 진하고 진실보다도 더 깊은 인간이기 이전에 한 남자로서의 자기주장이며 증명인 셈이다. 그의 노래는 그가 존재하는 가장 깊은 심연으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남자의 노래라는 것이다. 남자라기보다는 수컷이었다. 남자는 이렇게 사랑하고 이렇게 노래를 부른다.
고득점의 연속이었다. 412점의 포맨과 418점의 장미여관, 그리고 정동하와 김태원이 세운 438점의 기록과 타이를 이룬 JK김동욱, 그만큼 진지했고 최선을 다했던 무대들이었다. 무엇보다 노래가 좋았다. 노랫말 자체가 스스로 노래가 된 것처럼 적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조화가 가수들을 더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바다도 훌륭했고 박재범도 썩 괜찮은 무대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쉬움을 말하기는 했지만 왁스 또한 단지 상대가 나빴을 뿐이다. 운이 없었다. 경연이 아니다. 축제다. 승리를 거두지 못했더라도 그 무대의 가치가 - 그 무대로 인해 즐거웠던 시간들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점수가 높았고 사람들이 조금 더 호응해주었을 뿐이다.
다시 만나고 싶은 전설 1위에 심수봉이 오른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말 그대로다. 그녀의 음악은 쉽다. 친근하다. 쉽게 들리고 간단히 불린다. 하지만 어렵다. 세련된 형식이 그녀의 음악에는 있다. 쉽게 들리지 않고 간단히 불려지지도 않는다. 대중을 지향하는 예술의 절묘한 지점에 그녀의 음악은 있다. 오히려 많이 저평가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세월이 만들어준 그녀의 새롭게 편곡된 '그때 그 사람'도 그래서 감동이었다. 그녀의 음악은 항상 새롭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과거를 과거인 채로 묻어두지 않고 다시 현재로 이어 되살려낸다.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새로운 기억을 얻는다. 활동한 시대는 다르지만 음악을 통해 심수봉과 출연가수들이 하나로 이어진다. 심수봉을 기억하는 세대와 박재범을 기억하는 세대가 하나로 이어진다. 음악이 갖는 힘에 대한 신뢰가 프로그램에는 있다. 그래서 제목도 <불후의 명곡2>인 것일 터다. 항상 감탄한다.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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