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반전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의선(김규철 분) 악역이라기에는 알량한 우월감에 도취되어 살아가는 한심한 주제에 불과했다. 악의조차 되지 못하는 비뚤어진 자기과시에 지나지 않았다. 진정한 악의란 누구보다 선한 얼굴로 세상을 속이고 자기 자신마저 속이기 마련이다. 가장 선한 얼굴로 선의를 세상에 베풀고 있는 그가 어쩌면 더 큰 악일 것이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하기는 그래야 복수도 의미가 있다. 복수란 악의를 악의로써 되갚고자 하는 것일 게다. 어떤 악의보다도 악랄하게 철저히 자기가 당한 만큼 상대에게 되돌려주고자 한다. 선의로써 대할 상대가 아니다. 합리와 양심에 기대어 풀어가기에는 너무나 크고 강한 상대일 것이다. 당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서. 하지만 보통의 수단으로는 불가능하기에 자기의 내면을 더 지독하고 더 집요한 악의로 채우게 된다. 악마가 되지 않고서는 악마를 죽일 수 없다. 스스로 악마가 되려 한다. 그만한 가치가 그에게는 있다.
아들이 사고를 치자 바로 검찰을 불러 굳이 말로써 설명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잘 해결하도록 압력을 가한다. 그저 법대로 처리하라고 한 마디 했을 뿐인데도 검찰은 물론 경찰까지도 그가 바라는대로 수사하고 결론을 내놓는다. 증거는 은폐되고 증인은 무시되며 의혹은 묻혀버리고 만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가지고 찾아온 누군가를 죽여 모든 것을 덮어버리려 하고, 아들을 대신해서 자수하려 했던 자신의 운전기사가 생각을 바꾸려 하자 역시 경찰서로 향하는 길목에서 그를 기다려 깔끔하게 처리해 버린다. 그런 순간에조차 그는 여전히 모두로부터 존경받는 선량하고 양심적인 기업가의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현실의 힘과 명분을 모두 가진 그를 장차 적으로 돌리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런 대단한 인물을 상대로 복수를 성공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아직 미미하기만 한 주인공으로서는 불가능하게만 보인다.
그래서 복수가 의미가 있는 것이다. 불가능하기에. 불가능하게 보이기에. 그래서 당장은 불가능하기에 때를 기다린다. 힘이 없으니 힘을 키우고, 마지막에는 약점을 살펴 그것을 노린다. 때로 인간으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되는 - 오히려 어떤 악당보다도 지독한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렇게 지독하게 상대에게 원수를 갚는다. 그 과정에서의 치열함이나 절박함이야 말할 것도 없다. 혹시라도 힘든 장애와 맞닥뜨렸을 때 그것도 뛰어넘어야 할 것이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복수에 성공했을 때 마침내 짜릿한 성취감을 맛보게 된다. 조상국(이정길 분)의 악은 그만큼 거대하고, 그로 인해 아버지를 잃어야 했던 한지수(김남길 분)는 그저 어리고 약한 아이에 불과하다. 그는 과연 복수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를 위한 1, 2화였을 것이다. 조상국을 감추기 위한 1화였고, 조상국을 극적으로 등장시키기 위한 2화였다. 평화롭기만 하던 낙천적인 일상이 한 순간에 산산이 부서지며 참혹한 비극으로 찾아온다. 대비를 이룬다. 대조를 이룬다. 급전직하 한이수의 동기는 더욱 커져간다. 조해우(손예진 분)는 아니었다. 하지만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들은 한이수에게 수단이 되어준다. 그것이 차라리 더 처절한 비극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다만 아쉬움은 있을 것이다. 1화가 너무 지루했다. 그러면서 2화에서는 조상국의 실체가 너무 빨리 밝혀졌다. 아직은 조상국이 좋은 사람인 채로 남아 있어도 좋았을 것이다. 복수의 대상으로는 이미 조의선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을 것이다. 조해우와의 관계 또한 미지로 남겨둘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조해우와 한이수의 사이에 아련함과 함께 복수라고 하는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조해우에게 한이수는, 그리고 한이수에게 조해우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그렇다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드러내놓은 채 시작하는 것은 아닌가.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장면은 전혀 없다. 오히려 자식의 잘못을 엄하게 꾸짖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곳에 있을 뿐이다. 목소리는 침착하고 표정은 전혀 흔들림이 없다. 그저 다른 누군가가 한이수의 아버지 한영만(정인기 분)을 죽였을 뿐이다. 자신을 찾아온 강희수(최덕문 분)이라는 이름의 교수를 살해하고 숨었을 뿐이다. 악당이다. 바로 이런 것이 진짜 악당이다. 어설프게 악의를 흘리고 다니지 않는 순수할 정도로 정제된 악의의 덩어리다. 한이수가 상대해야 할 적이다. 더 강하기를. 한이수에게 버거운 적일 때 드라마는 더 재미있어진다. 조상국에게, 아니 그를 연기하는 이정길에게 드라마의 성패는 달려있다 할 것이다. 이정길이 더 중요하다.
아무튼 조상국이 그토록 가지고 싶어하고 감추고 싶어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과거 조상국의 주위에는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한이수의 아버지 한영만의 과거 또한 의문으로 남는다. 아니 어렴풋 짐작이 가는 바는 있다. 이야기가 거대서사로 흘러가려 한다. 아쉬운 부분이다. 너무 이야기가 커지면 복수의 쾌감도 그와 함께 흩어진다. 이야기의 스케일에 눌리면 개개인의 복수따위 너무 작게 느껴질 수 있다. 작아질리야 없겠지만 그만큼 긴장도 동요도 희석될 수밖에 없다. 잔잔해진다. 깊이 빠져들어서는 안된다.
결혼식 도중 한이수와 조해우는 만난다. 화가가 되겠다던 조해우는 검사가 되어 있었다. 더구나 결혼식 도중이었다. 결혼식에 맞춰 한이수는 나타나고 있었다. 그가 계획하고 있는 복수란 무엇인가? 어떻게 그는 복수를 하게 될 것인가? 조해우는 그의 복수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될 것인가? 이제 겨우 시작이다. 의문은 기대로 남는다. 아직은 아쉽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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