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특수사건전담반 TEN2 - 어느 완벽한 엘리트의 살인...

까칠부 2013. 5. 27. 09:40

문득 범인인 신영근의 성장과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신을 믿고, 심지어 그로 인해 살인의 의혹마저 받게 된 상황에서조차 끝까지 믿음을 놓으려 하지 않던 배서연에 대해 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그의 비뚤어진 우월감과 약자에 대한 멸시까지도 읽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이와 같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신영근이 학교에서 학생들로부터 '난제'라는 별명으로 불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굳이 학생들이 풀기 힘들 정도로 문제를 어렵게 내는 경우는 대개 두 가지로 수렴할 것이다. 학문적인 엄밀함을 추구하는 진짜 학자이던가, 아니면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며 말 그대로 학생들을 시험하고자 하는 에고이스트이던가. 과연 신영근이란 어떤 캐릭터일까? 작가의 농간만 아니라면 그 순간 이미 사건의 범인은 확정되었다 보아도 좋을 것이다. 필자에게는 느낌이 오고 있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신영근의 부모는 항상 그에게 최고가 되라 가르쳤을 것이다. 너보다 못한 아이들과는 어울리지 말라고. 너보다 못난 아이들과는 어울려서는 안된다고.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너는 최고라고. 어느새 그것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양심을 대신한다. 최고가 되어야 한다. 최고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사람을 죽여서라도. 아니 그러한 죽음들조차 최고가 되어야 할 자기를 위해서는 너무나 당연한 희생이었을 것이다. 자기가 최고가 되기 위해 그들은 죽어야 하고 그래서 자신은 죽음을 내린다. 양심이 개입할 여지란 없다. 그는 최고가 되어야 했으니까.


많은 부모들이 지금도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을 것이다. 그 부모들이 아직 아이이던 시절에도 그래서 그런 것들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었다. 자기보다 못한 아이들과는 어울리지도 못하게 만들고, 공공연히 소외된 이들을 가리키며 노력하지 않으면 자리 된다 공포를 심어준다. 자연스럽게 승자가 되어야 하는 당위와 함께 패자에 대한 차별과 멸시를 체화하게 된다. 능력이 부족해서. 노력이 부족해서. 한 마디로 그럴만 하기 때문에 그들은 패자가 되는 것이다. 패자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그래서 승자의 아량이며 승자로서의 자기에 대한 확인이다. 자신은 승자다.


그래서 아내 이수연의 약혼자를 죽였다. 그럴 자격도 안되는 주제에 학교 이사장의 딸을 연인으로 두고 있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최고가 되어야 할 자신을 위해 준비된 자리였을 것이다. 그래서 약혼자를 죽이고 이수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 이수연이 그날의 죄라고 할 수도 없는 일들로 인해 자신을 의심하고 거리를 두려 한다. 죽인다. 자신을 죄인으로 만들 수 있는 김민정도 배서연도 모두 죽인다. 자기는 여전히 최고가 되어야 한다. 한 점 오류도 없는 최고가 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에고라기보다는 차라리 외부로부터 주입된 당위이며 의무가 아니었을까. 그는 어쩌면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트릭의 연속이었다. 함정이 중첩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남편인 신영근이 범인이 아닌가. 그런데 대학 화학과 교수인 신영근의 주위에도 화학을 전공한 조교들이 있었다. 김민정과 배서연 두 사람에게도 충분한 살인의 동기가 있는 것 같다. 배서연이 흘린 한 방울 눈물은 드라마의 정점을 찍고 있었을 것이다. 궁지에 몰린 자신을 구해준 교수 신영근에 대한 믿음과 그리고 그것을 배신하는 것 같은 확신과도 같은 의심, 무엇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영근을 믿고자 하는 자신과 양심에 대한 배반감. 그러나 그녀는 마지막 순간 신영근에 대한 믿음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믿음을 신영근은 그녀를 죽이려는 시도로써 보답한다.


사실 함정은 많았지만 진실은 너무나 명확했던 에피소드였을 것이다. 최소한 김민정과 배서연이 용의선상에 오른 그 순간까지도 필자의 경우 배후의 신영근을 의심하고 있었다. 심리적으로 가장 범인에 가까운 것이 신영근이었기 때문이었다. 지나치게 완벽하다. 자연스러운 것은 결코 완벽할 수 없다. 인위가 개입되었을 때 그것은 완벽해진다. 작가의 실수이거나, 아니면 신영근 자신의 실수이거나. 최고가 되어야 했던, 최고가 되지 않으면 안되었던, 그것이 심지어 이성이 가리키는 양심의 명령마저 무시하게끔 만든다. 모든 정의와 당위에 우선한다. 엘리트의 자화상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엘리트들이 그러한가. 하지만 알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어째서 이렇게 비틀리고 일그러져 있는가를. 하기는 어느 사회라고 안 그럴까? 엘리트가 되고자 해서 엘리트가 된 이들, 엘리트란 욕망의 상징이다. 그리고 욕망의 성취다. 배제된 이들을 경멸하고 무시한다. 조롱하고 혐오한다. 자기애에 빠져산다. 다만 그것을 견제할만한 장치가 있는가. 차라리 그들을 닮으려 할 뿐 그들에 대한 어떤 비판도 패배자의 넋두리에 불과할 뿐이다. 신영근이 실수한 것이라면 단지 완벽하지 못해 경찰에 빌미를 준 것 뿐. 아니었다면 그는 여전히 승자였을 것이다. 아니 먼 훗날 영웅담처럼 자신의 범죄에 대해 누군가에게 자랑하는 날도 오게 될 것이다. 피해자들을 조롱하며.


수사물과 추리물의 차이다. 굳이 어렵게 개인이 범죄의 트릭을 분석하고 밝혀내야 할 필요따위 없이 모든 것이 구조에 의해 이루어진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있다. TEN에 소속된 부검의도 있다. 발로 뛰기만 해도 체계화된 현대사회의 시스템은 정보들을 헤아릴 수 없이 내키는대로 쏟아낸다. 그 가운데 단서를 찾아 조합하는 것이 현대수사관의 일이다. 추리가 아닌 수사다. 단지 발로 몇 번 뛰어다니는 것만으로도 교집함이 완성되고 은폐되었던 피해자의 신원이 밝혀진다.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이 과연 드라마 작가의 역량이라고나 할까? 인간의 슬픈 본성을 가감없이 담아낸다. 의도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그 가운데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도 감추어져 있다. 신영근이 단순한 사이코패스라 한다면 필자는 더 우울해질 것이다. 그건 너무 쉽다.


크게 대단한 사건은 아닌데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렇게 흥미를 끌만한 자극적인 사건은 아니었을 텐데도 그 과정에서 흥미를 가지고 계속해서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구성이 치밀하다. 구조가 탄탄하다. TEN의 멤버들의 캐릭터가 사건과 적확하게 어우러진다. 아이스바를 사이에 두고 보이는 허술한 박민호(최우식 분)과 남예리(조안 분)의 신경전도 우습다. 백독사 백도식(김상호 분)은 가장 아날로그적이면서도 가장 매력적인 수사캐릭터가 아니었을까. 여지훈은 여전히 냉정하다. 과연 남예리가 알아야 한다는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게 쓰기보다 쉬운 이야기를 쉽게 쓰는 것이 더 어렵다. 적당한 오해와 적당한 착오와 그리고 납득할 수 있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따라가며 같이 함정에 빠지고 엉뚱한 결론에 스스로 도취되기도 한다. 그러나 결론은 어이없을 정도로 쉽고 간단하다. 처음 생각한 바로 그가 범인이었다. 재미있다는 것이 더 무서운 함정일 것이다. 항상 최고다. 놀랍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