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불후의 명곡2 - 나르시즘의 '나의 옛날 이야기', 바다 우승하다!

까칠부 2013. 6. 16. 07:30

문득 바다의 '나의 옛날 이야기'에 대한 나름의 감상과 해석을 들으며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고 말았다. 처음 조덕배라고 하는 - 아니 가수 이름이 조덕배라고 하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던 때, 그때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필자 역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지독한 나르시스트다."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자란 것 같았다. 간절함이나 처절함보다는 그런 극단의 감정들조차 관조하며 즐길 줄 아는 여유가 있었다. 다른 말로 낭만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설레어하는 그 모든 감정들조차 그대로 즐긴다. 조덕배의 노래에서 느껴지는 아련한 낭만의 서정성은 더 깊이 들어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여유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객관화하며 그런 자신조차 즐기고 누린다.

 

설마 조덕배가 5공화국 시절 공중분해된 삼호그룹 오너의 일가였을 줄이야. 조덕배 자신도 삼호까뮈라는 이름의 계열사를 직접 경영하고 있었다고 했다. 삼호그룹이 해체될 당시 조덕배의 나이가 아직 20대였을 텐데, 하기는 오너 일가에 의한 독점적 지배구조는 여전한 우리나라만의 기업문화였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그룹이 해체되고 경영하던 회사마저 망하면서 결국 조덕배는 그동안 취미로 즐기던 음악을 자신의 평생의 직업으로 삼기에 이른다. 호구지책이라지만 확실히 그의 첫앨범에서도 어쩐 절박함은 느낄 수 없었다. 굴곡없는 고급스러운 세련됨이라고나 할까? 필자가 처음 그의 음악을 들으며 느꼈던 것들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과연 그와 같은 자기애적 자의식이 문제인가? 원래 아티스트라고 하는 인종들이 그렇다. 쉽게 감동하고 쉽게 감탄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만의 특별함으로 해석하여 세상에 내놓는다. 보통 사람들은 좋은 무대를 보면 박수를 치지만 아티스트는 그보다 더 훌륭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절치부심한다. 후배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끝은 결국 자기의 노래이고 자기의 무대다. 자신의 예술의 완성이다. 그는 여전히 탐욕스럽게 자신의 음악과 무대를 꿈꾼다. 여전히 그는 젊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조덕배의 '꿈에'가 독백이었다면 더 포지션의 '꿈에'는 고백이었을 것이다. 사랑에 설레어하는 자기에게 들려주는 노래가 조덕배의 '꿈에'였다면 꿈에 나타난 그녀를 향한 처절한 고백이 더 포지션의 '꿈에'인 것이다. 아마 조덕배가 아닌 더 포지션이었다면 그렇게 고백도 못하고 첫사랑을 끝내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어느날 없는 용기까지 쥐어짜 꿈속에서 본 그 아이에게 달려가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는다. 하기는 만일 그랬다면 '꿈에'라고 하는 노래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조덕배는 '꿈에'를 쓸 수 있었다.

 

한 남자가 고백을 한다. 지난 사랑을 이야기하며. 지난 사랑의 모든 아픔과 그리움을 털어놓으며. 하지만 이제는 너 하나만을 사랑한다. 더 이상 다른 누군가를 위해 아파하거나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너로 인한 아픔과 상처마저도 사랑이라는 감정에 묻은 채 더 이상 너를 위해서도 아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을 것이다. 절절한 사랑의 고백이다. 문명진은 과연 이런 남자였다. 이런 가수였다. 그가 만일 사랑을 한다면 이렇지 않을까. 사랑조차 슬픈 것은 그 사랑의 감정이 진실하기 때문이다. 노래는 가슴으로 부른다.

 

우연히 멋진 뒷모습의 여인을 보게 된다. 상상을 한다. 어떤 모습일까? 예쁠까? 귀여울까? 나이는 몇 살일까? 나를 돌아봐 줄까? 나에게 호감을 가져줄까? 짧은 순간에도 온갖 감정과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난다. 문득 그 여인을 추월해서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기까지. 혹은 그녀의 모습이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지기까지. 혹은 용기가 있다면 고백을 할 것이고, 운이 없다면 단번에 거절당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현실과 마주하기까지 누구나 상상속의 그녀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 버라이어티하다. 행간을 꾹꾹 눌러 채운 듯한 임정희의 노래와 주석의 랩이 '뒷모습이 참 예쁘네요'를 한결 설레고 들뜬 사랑의 노래로 만든다.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자기 안의 그녀에 대한 격렬한 열정의 사랑이다. 우습기도 하고 들뜨기도 한데 그 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 과연 주석이고 임정희다. 자신도 모르게 들뜨고 만다.

 

짝사랑의 감정이야 말로 가장 순수한 지극한 자기애의 발로일 것이다. 대상을 마주하려 하지 않는다. 사랑을 하면서도 정작 현실의 사랑하는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기를 꺼려하고 두려워한다. 굳이 현실에서 상대와 직접 마주하지 않고서도, 심지어 상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그러나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있다. 정확히 그것은 자기 안에 이미지화된 어떤 관념일 것이다.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 사랑해야 할 것만 같은 대상이다. 그런 자신에 도취되기도 한다. 사랑으로 인한 상처와 아픔과 갈등과 고민까지도. 그로 인한 모든 비극과 희열에 대해서까지. 상상속에서 자기란 주인공이다. 스스로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그같은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 즐기고 있다. 무대에서 그녀는 주인공이다. 바다만 보인다. 서인영의 평가한 그대로 힘이 넘친다. 그녀는 사랑을 하고 있다. 바다의 '나의 옛날 이야기'였다.

 

엠블랙의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 나르시즘의 극치였을 것이다. 자신들이 잘생긴 것을 안다. 매력적인 것도 안다. 그런 자신에 도취된다.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고 사랑을 고배가는 자신의 모습에 매료된다. 차이라면 엠블랙의 노래에는 뚜렷한 대상이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사랑하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다. 자신들의 노래였다. 그들 자신의 노래였다. 엠블랙의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이다. 그들의 허들은 높다. 과연 누가 있어 자신있게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자기들로 꽉 차 있는데.

 

마치 80년대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었다. 디스코풍의 신스사운드와 기교를 뺀 담백하면서도 간결한 거친 질감의 무채색의 목소리, 음악에 맡긴 듯한 절제된 퍼포먼스까지. 진짜 흥겨워서 추는 듯 춤동작도 간결하면서 자연스럽다. 여백마저 느껴지는 무대에서 더욱 또렷하게 보이는 것은 다름아닌 서인영 자신이었을 것이다. 사랑스럽다. 섹시하다기보다는 마치 소녀처럼 무대를 즐기며 노는 그녀의 모습이 사랑스럽기만 했다. 노래를 표현하는 능력도 이제 경지에 올랐다. 사람을 압도하는 탁월함은 없지만 노래에 맞게 느낌있게 부르는 역량이 수준을 넘어섰다. 진심으로 즐길 수 있는 무대였다. '나풀거리듯' 그녀 역시 무대 위에서 소녀처럼 나풀거리고 있었다. 매료시킨다.

 

후배들의 무대에 자극을 받았다니 무척 다행이다. 더 많은 노래를 쓰고 더 많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지나간 전설이 아닌 여전히 그는 현역일 것이다. 현역이어야 할 것이다. 오랜만의 조덕배가 반갑고, '불후의 명곡2'로 인해 음악인으로서 다시 열정을 되찾을 수 있어서 기쁘다. 조용필의 새음반이 바로 얼마전 크게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전설의 자리가 아닌 무대에서 다른 후배가수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조덕배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 조금은 무모할까. 그래도 역시 그의 노래를 다시 듣고 싶다.

 

최고점수가 384점으로 전반적으로 점수가 그리 높게 나오지 않은 것은 역시 낯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후배가수들이 조덕배의 노래에 자기만의 색깔을 더해 부르고 있었다. 조덕배가 아닌 그들 자신의 노래였다. 최고의 예우였을 것이다. 후배들의 노력과 발전을 알아주고 칭찬해주었던 조덕배처럼 후배들 역시 자신의 역량으로 최상의 예를 표했다. 점수가 낮다고 무대의 수준까지 낮았던 것은 아니었다. 충분히 즐길 수 있었던 무대들이었다.

 

조덕배의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며. 그의 건재함을 반가워한다. 지금도 가끔 듣는다. 부르기는 오히려 더 자주 부른다. 입에 붙어 있다. 흥얼거리며 따라부른다. 항상 반갑다. 후배들의 들려주는 새로운 그의 노래는 즐거웠다. 오랜만의 즐거운 만남이었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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