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불후의 명곡2 - 전설과 전설, 박남정과 핫젝갓알지 만나다

까칠부 2013. 6. 23. 08:11

버겁다. 그리고 행복하다. 이를 어찌 써야 할까? 굳이 리뷰를 쓰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라면 그저 보고 듣고 즐기면 그만이련만. 80년대 댄스의 전설과 90년대 아이돌의 전설이 한 자리에 있다. 무대가 터져나가는 것 같다. TV가 터져버릴 것만 같다.

 

말이 필요없다. 그야말로 독보적이었다. 김완선과 박남정, 특히 여성댄스가수의 춤을 따라출 수는 없으니 춤 좀 추고 놀 줄도 안다는 녀석들이면 누구나 박남정의 춤을 따라추고는 했었다. 소녀팬은 물론 춤을 동경하던 또래의 사내녀석들에게도 박남정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학교에서 장기자랑이라도 하려 하면 빠지지 않는 것이 그래서 바로 이 박남정의 춤이었다. 박남정의 춤을 얼마나 비슷하게 따라출 수 있는가를 두고 자존심을 건 신경전까지 벌이고 있었다.

 

그냥 춤이 아니었다. 고도성장기는 경제적 풍요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를 탄생시켰다. 거의 각 가정마다 한 대 씩 TV가 보급되며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요구도 커졌다. 통신과 미디어의 발달로 또한 보다 쉽게 해외의 감각적이고 세련된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차라리 기존의 한국 대중문화에 대해 경멸하고 무시하는 경향마저 강했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촌스럽고 수준이 낮다. 그런데 아니었다. 최소한 김완선과 박남정이 보여주는 무대는 기존의 한국 대중음악과는 한 차원 다른 경지에 있었다. 하기는 바로 이들로부터 한국의 댄스음악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을 것이다. 자존심이고 자부심이었다. 충격이고 동경이었다.

 

벌써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전혀 녹슬지 않은 듯한 탁월한 춤실력과 춤을 추면서도 라이브가 가능했던 또한 녹록치 않은 노래솜씨, 요즘처럼 키나 비율을 중요하게 보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외모 또한 빠지는 것이 아니었다. 핫젝갓알지가 무대에 올린 '비에 스친 날들'은 박남정이 야심차게 준비한 자작곡이었을 것이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그는 벌써 기획부터 작사작곡까지 자신의 음악과 무대 전반을 모두 혼자서 책임질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춤과 노래는 물론 작곡능력까지 갖춘 첫 케이스가 아니었을까. 아마 서태지와 아이들, 아니 현진영과 듀스 등의 데뷔가 조금만 늦었더라면 박남정의 전성기는 보다 오래 지속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반가웠다. 몇 해 전이었다. 박남정이 대중 앞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거의 십수년만에 TV를 통해 그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여전히 젊었다. 여전한 춤솜씨에 세월마저 비껴간 것 같았다. 물론 그도 나이를 먹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대중이 돌아보지 않는 가운데도 얼마나 엄격하게 자신을 관리해 왔는가 알 수 있었다. 벌써 몇 년 전의 노래인데 여전히 그때와 전혀 다르지 않게 부르고 춤까지 춘다. 그는 타고나기를 춤꾼이었다. 그리고 가수였다. 연예인이고 스타였다. 시대와 대중은 그를 외면했지만 그는 여전히 무대 위에서 주인공이었다. 아마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세월에 잊혀진 다른 중견가수들과는 달리 그는 여전히 활력이 넘친다.

 

80년대 박남정이 있었다면 90년대에는 HOT가 있었다. 그 전에는 서태지와 현진영, 듀스가 있었다. 이들이 세워 놓은 한국 댄스음악의 표준은 HOT에 이르러 일본의 아이돌 시스템을 빌려 특히 10대를 대상으로 대폭발을 이룬다. HOT가 데뷔하고 바로 얼마뒤 젝스키스가 데뷔한다. GOD는 이들보다 조금 느리다. NRG 역시 살짝 뒤로 밀린다. 그것은 차라리 사회현상이었다. HOT를 추종하는 열성적인 소녀팬들과 그와 라이벌의 위치에 있다고 여겨졌던 젝스키스와의  첨예한 갈등, 그리고 이어지는 수많은 아이돌 그룹들. 아이돌의 형식은 바로 이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보아도 좋을 것이다. 90년대 전부를 대표하지는 않지만 그들 역시 90년대의 한국 대중음악을 빛낸 주역들이었을 것이다.

 

결코 같은 무대에 설 것 같지 않은 그들이, 하기는 바로 이런 것이 세월이 주는 가장 값진 선물일 것이다. 원수와도 화해를 한다. 아픈 기억도 조금씩 흐려진다. 서로를 적대하던 감정 역시 이제는 더 이상 남은 것이 없다. 승자로서의 우월감도 2인자로서의 열패감도 세월속에 묻혀진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서른 중반의 나이가 되어 HOT와 젝스키스, GOD, NRG가 한 무대에 선다. 문희준과 토니안과 은지원과 데니안, 천명훈, 서로 다른 팀에 속해 있던 멤버들이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무대에 선다. 각각의 개인이 아닌 자신들이 속했던 팀과 또한 같은 시대를 살았던 모두를 대표하는 듯한 벅참이다. 그들의 팬이 아니었음에도 울컥하는 무언가를 느낀 것은 그들과 공유하는 시간 또한 적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 왕성하게 자신들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을 위해 함께 활동을 이어갈 수 있기를.

 

팀의 '여인이여'는 당시 박남정의 음악이 가지고 있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을 것이다. 댄스음악인데 감미로운 발라드의 편곡이 어울린다. 그렇다고 곡을 크게 다르게 바꾸거나 한 것은 아니다. 원곡의 느낌을 최대한 살린다. 차이라면 춤이 아닌 가수의 가창력과 호소력에 더 무게를 둔 편곡이라는 정도일 것이다. 기존의 통속가요와 크게 차이가 없다. 박남정이 '비에 스친 날들'을 스스로 곡을 쓰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필 댄스음악이었다.

 

핫젝갓알지의 '비에 스친 날들'은 '관록'이라는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체력이 부친다. 숨이 딸린다. 사실 안무도 상당히 복고적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무대를 넘치도록 채우는 어떤 아우라와도 같은 것이다. 은지원의 편곡이라는 것도 놀랍고 여전한 문희준의 팝핀 또한 감탄을 자아낸다. 도대체 저와 같은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 서로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진 팀에 속했던 저들이 지금에 와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들을 들여야 했을까. 그것은 차라리 감동이었는지도 모른다. 시계를 되돌린다. 무대를 마치고 방전되어 있는 모습은 그래서 무엇보다 아름답다. 무대야 말로 그들이 있을 곳이었다.

 

하필 핫젝갓알지의 다음순서가 다름아닌 SES의 멤버였던 바다의 무대였다. 마치 일부러 짠 것 같다. 90년대 대표 보이그룹과 대표 걸그룹의 멤버가 만나 승부를 겨룬다. 아쉽다. 바다의 노래와 춤은 여전히 훌륭했지만 무대를 넘치도록 채워주던 핫젝갓알지의 다섯 멤버에 비해 바다의 무대에는 바다 혼자였다. 휑하니 허전한 느낌이 적지 않다. 지나치게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듯 구성이 산만한 것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사랑의 불시착'이 갖는 기성가요의 문법에서 드림걸스의 복고적 느낌을 찾아낸 바다의 음악에 대한 해석력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노래를 잘하는 것보다 노래를 잘 이해하는 느낌이다. 아주 조금 모자랐다.

 

플라워의 '안녕 내 사랑'은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록발라드 그룹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 보이고 있었을 것이다. 굳이 다른 밴드의 멤버까지 나서서 액션을 취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밴드의 프론트를 맡은 보컬조차 그다지 화려한 퍼포먼스를 내보일 필요가 없었다. 그저 마이크를 붙잡고 서서 노래를 느끼며 불러도 되었다. 댄스음악인 '안녕 내 사랑'을 철저히 자신들의 락발라드의 느낌으로 편곡해 부르고 있었다. 멜로디가 풍부한 노래라면 모르겠는데 많이 허전하게 느껴진다. 조금 더 연주자들이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면. 그래도 몽환적인 연주와 고유진의 보컬은 일품이었다. 경연만 아니었다면 평가는 달라졌을 것이다.

 

과연 현역아이돌이다. 틴탑&백퍼센트의 무대는 니엘의 컵을 사용한 퍼포먼스로 시작되고 있었을 것이다. 컵과 바닥을 두드리며, 손뼉을 치고, '널 그리며'의 리듬에 맞춰 박자를 넣는다. 아무런 다른 연주 없이 니엘의 목소리만으로 노래는 시작된다. 그리고 보다 파워풀한 현역아이돌의 군무가 이어진다. 핫젝갓알지의 무대에서 관록이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면 틴탑&백퍼센트의 무대에서는 그들의 젊은 에너지가 객석까지 뻗어나가고 있었다. 재주가 많다. 1세대에 비해 더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훈련받은 신세대 아이올의 힘이 숨김없이 드러난다. 이들도 언젠가는 핫젝갓알지처럼 그렇게 모여서 다시 무대에 서게 되는 날이 올까? 전설 박남정 앞이기에 그들의 젊은 에너지는 무한한 장점이 된다.

 

플라워의 무대에서는 결여되었던 것이었다. 원래 댄스음악 이전에는 록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단순히 연주만을 들려주는 것이 아닌 연주 그 자체를 시각화하여 대중과 공유하고 즐긴다. 일단 보는 즐거움이 있다. 연주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다만 홍경민의 목소리는 그같은 밴드의 에너지를 완전히 아우르지 못하고 있었다. 홍경민 자신의 액션 또한 연주자들의 퍼포먼스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경쟁자들이 너무 강했다. 핫젝갓알지의 원조아이돌로서의 관록과 틴탑&백퍼센트의 현역아이돌로서의 젊은 에너지를 이기기 위해서는 더 강한 에너지가 필요했다. 이제까지 가운데 보컬인 홍경민이 가장 얌전한 무대였다.

 

역사와 역사가 만난다. 아니 HOT와 젝스키스라면 전설로 초대되어 박남정의 자리에 앉아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과하다. 그래서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핫젝갓알지에게는 박남정이 전설이지만 HOT가 데뷔했을 때 고작 2살이었다는 틴탑에게는 HOT가 전설이다. 그들과 시간을 함께 했던 이들에게 역시 핫젝갓알지는 이룰 수 없었던 신화이고 전설이었을 것이다. 역사가 이루어진다. 과연 '불후의 명곡2'다. 즐거운데 부담스럽다. 너무 좋기만 하다.

 

핫젝갓알지의 3승에 주목한다. 축하하며 또한 기대한다. 다른 무대를 볼 수 없을까? 언제고 다시 핫젝갓알지라는 이름으로 '불후의 명곡2'에 출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설이 되어도 좋다. 박남정의 새로운 음반에 대해서도 조금은 욕심을 부려본다. 무대에서 그는 여전히 멋지다. 즐겁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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