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불후의 명곡2 - 고독한 남자의 관능, 하동균 우승하다

까칠부 2013. 7. 21. 07:36

어느날 문득 유재하의 노래를 듣다가 그런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유재하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녀가 어느날 갑자기 이별을 통보해 온다면 유재하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울었을까? 화냈을까? 아니면 붙잡고 애원했을까? 그도 아니라면...

 

"괜찮아. 난 아무렇지도 않은 걸?"

 

이번주 '불후의 명곡2 - 유재하편'을 보면서 내내 머리속을 맴돌고 있었다. 어쩌면 자기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이토록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오히려 자기의 이야기이기에 담담하게 그 이야기 자체에 충실하려 한다. 숨을 고르고 자세를 다잡고 단어 하나에 집중하며. 머리는 엉킨 채로도 괜찮다. 집에서 입던 그대로 허술한 차림으로도 괜찮다. 오로지 자신의 진심만을 전하려 한다.

 

순수하다. 착하다기보다 외곬수적으로 오로지 순수하기만 하다. 음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깊은 산속 수풀에 내린 첫이슬처럼 정제된 멜로디와 가사가 오롯한 자신의 감정과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착한 남자였지 않을까. 바보같을 정도로 착하고 순수한 남자가 아니었을까. 상상하게 된다. 이런 노래를 직접 만들고 불렀던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음악에 대한 천재성보다 그 해맑은 순수의 감수성이 더 필자를 놀라게 만든다. 수십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의 음악이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의 삶이 그만큼 순수했던 때문일 것이다.

 

발라드라고 불리우는 한국 대중음악의 한 전형을 완성했다. 기존의 대중음악의 문법을 자신이 전공한 클래식의 문법으로 재정립했다. 그것은 어쩌면 유랑극단의 연극무대에서 TV 드라마로 옮겨지는 과정과 유사할 것이다. 멀리서도 보일 수 있도록 과장된 몸짓과 말투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한다. 그러나 TV카메라가 바로 앞에서 자신의 표정 하나 몸짓 하나를 그대로 촬영해 시청자에게 보여주자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문장이 정교해지며 문학 역시 힘을 뺀 일상의 언어로 돌아갈 수 있었다. 가정마다 TV와 음향기기가 보급되고 누구나 쉽게 음악을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음악인과 대중의 거리가 그만큼 가까워진 것이다.

 

쉽게 부른다. 굳이 잘부르려 애쓰지 않는다. 기교보다는 진심이다. 투박할 정도의 진심을 딱 그 만큼의 감정과 기교에 실어 대중에 들려준다. 가장 순수했던 한 남자가 바로 그 첨단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려 하고 있었다. 80년대는 그러고보면 세계적으로도 노래를 잘 부르는 것에 대한 집착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던 시대이기도 하다. 담백함이 진실을 전한다.

 

솔직히 문명진이 부른 '사랑하기 때문에'는 조금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돌아온 연인 앞에서 무릎꿇고 눈물을 흘린다. 애원과도 같은 눈물과 함께 넘치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전하려 한다. 감동적이지만 자칫 상대가 부담스러워 그대로 도망쳐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감동을 받은 사람이 더 많았으니 3승도 가능했을 것이다. 문명진의 노래와 소울은 이제 말이 필요 없다. 문명진의 목소리 그 자체로 감동이다.

 

두번째로 무대에 오른 조원선의 '우울한 편지'는 오랜 세월이 지나 어느 낡은 클럽의 무대에 오른 한 여가수의 지난 이야기를 듣는 듯 관조적이기까지 했다. 추억을 떠올린다. 음악에 맞춰. 엇갈리는 리듬에 맞춰. 노랫말을 곱씹으며 빛바랜 낡은 감정의 흔적들을 읊조린다. 사랑은 지나가도 진실했던 감정들은 남는다.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다.

 

홍경민의 '지난날'은 그냥 행복했다. 하필 조원선의 무대 다음이 홍경민의 무대였다는 것이 얄궂기만 하다. 신동엽의 손은 여전히 신의 손이었던 것이다. 지난 날을 관조하고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자체를 감사할 수 있게 된다. 힘들고 아프고 슬프고 화나던 그 순간들이 바래고바래 언제부터인가 추억이라는 이름의 수채화로 곱게 칠해진다. 과거는 무조건 아름답다. 추억은 무조건 아름답다. 아무리 힘든 일도, 아무리 어렵던 기억도, 그래서 더 아픈 기억을 일부러 찾아 헤매는 것인지도 모른다. 홍경민도 벌써 그런 나이가 되었다. 홍경민이니까 어울린다. 행복해하며 살기에도 삶의 시간이 너무 짧다.

 

JK김동욱의 무대는 하동균만 아니었다면 단연 최고란 말이 무색하지 않은 무대였을 것이다. 남자가 독백을 한다. 남자의 독백은 주문이다.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한. 자신을 설득하기 위한. 남자가 가장 진실할 때는 바로 자신에게 말을 걸 때다. 남자의 목소리다. 유재하에게는 없는 것이다. 유재하는 소년이었다. 소년이 어느 순간 나이를 먹어 한 사람의 남자가 된다. 고독이 어울리고 그런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사랑마저 고독해진다.

 

하동균의 '그대 내 품에'는 하동균 자신의 말처럼 무척 관능적이었다. 마치 그녀가 자신의 곁에 있는 것 같았다. 서로 눈을 마주한 채 진심을 털어놓는다. 체온이 맞닿은 채 서로의 솔직한 감정도 맞닿는다. 들끓는 격정이 하동균의 목소리를 타고 제대로 뿜어진다. 다 하지 못한 말들이 그렇게 쏟아진다. 다만 그것을 들어주어야 할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다. 조관우의 '늪'을 떠올리고 만다. 가장 가슴아프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 바로 짝사랑이다. 보이지 않는 상대와도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사랑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럼에도 아니라 말한다. 차라리 상상속의 그녀와라도 사랑을 나누고 싶다. 조금은 슬프다. 개인적으로 단연 최고였다.

 

원모어찬스의 '그대와 영원히'는 그냥 유재하였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다만 원모어찬스는 21세기를 살아간다. 그에 맞는 목소리와 창법이 있다. 원곡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더한다. 유재학 만큼이나 보컬 박원의 목소리는 순수하기만 하다. 21세기 유재하가 살아있다면 그런 식으로 부르고 있지 않았을까. 하필 멤버 정지찬이 '나는 가수다'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었다. '나는 가수다'가 있었기에 '불후의 명곡2'도 존재할 수 있었다.

 

의미심장하다. '나는 가수다' 출신의 더원과 JK김동욱, 그리고 이번에는 음악감독이었던 정지찬이 함께 방송에 출연한다. 하기는 최근 MBC의 주말예능프로그램 '우리들의 일밤'이 최고의 일기를 누리고 있다. '나는 가수다'에 대한 기약이 없다. 원조논란과는 상관없이 이제 '불후의 명곡2'가 유일이 되었다. 그만한 의미가 있는 프로그램이다.

 

벌써 26년의 세월이 지났다. 유재하의 음악보다 늦게 태어난 세대들이 이제는 유재하의 나이를 앞지르려 한다. 유재하가 멈춰선 그 위로 유재하를 따라걸었던 이들의 발자취가 다시 미래로 이어진다. 유재하가 있었다. 유재하가 이 땅에 살아있었다. 그리움을 남겨본다.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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