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꽃보다 할배 - 나이많은 소년들, 천진한 백발이 즐겁다

까칠부 2013. 7. 13. 08:08

나이를 먹으면 아이가 된다고 한다. 혹자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인간은 누구나 소년이고 소녀일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조금씩 쌓인 세상의 때가 소년과 소녀의 순수를 덮어 가리고, 그리고 다시 세월에 의해 그 때가 닳아 흩어지면 본래의 소년과 소녀의 순수로 돌아오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많은 종교인과 철학자, 사상가들이 아이의 순수를 사랑한 이유다.

 

철이 든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눈치를 볼 줄 알게 된다. 주위를 살펴 상대와의 관계를 계량하고 그에 맞춰 행동할 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본래의 자신을 속여 주위와 세상에 맞춰간다. 무엇이 자기에게 이익이고 손해인가를 알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것인가를 배워서 알며, 어떻게 자기에게 돌아올 손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인가를 궁리해서 행동에 옮긴다. 선하다고 해서 선한 것이 아니며 성실하다고 해서 성실한 것이 아니다. 각자 자기의 위치에 맞는 몸가짐이나 행동을 학습하여 그에 맞춰 자신을 만들어간다. 훌륭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사람들은 깨닫게 된다. 그런 것들이 다 부질없다는 것을. 더 얻을 것도, 더 악착같이 누려야 할 것도, 그렇다고 필사적으로 피해야 하는 것들조차 사라지는 순간이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이순재나 신구나 박근형이나, 그리고 일흔이 다 되어서 졸지에 막내가 되어 버린 백일섭이나, 이제와서 이들이 새삼 욕심낼만한 것이 무에 있겠는가. 배우로서 이미 많은 것을 이룬 이들이다. 대중적 인기와 배우로서의 명예, 그리고 경제적 풍요, 이제 자식들마저 모두 장성하여 일가를 이루고 있다. 새삼스레 더 인기를 얻어보겠다고, 혹은 알량한 출연료를 벌어보겠다고 예능에 출연해야 할 절박함따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격의없다. 그래서 분방하고 자유롭다. 차라리 PD가 연기자들의 눈치를 본다. 스탭들이 연기자들의 눈치를 보며 그에 맞춰간다.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구애되거나 구속되는 일 없이 -단지 그만한 위치에 오르기까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버린 철두철미함이 스스로 삼가고 경계해야 하는 것들을 알아 말이나 행동에 무리가 없다. 이른바 공자가 말한 종심(從心)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마음가는대로 행해도 순리에 어긋남이 없다. 아이의 천진함과 노인의 천진함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이는 몰아서 천진한 것이지만 노인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난 뒤의 천진함인 것이다. 아이의 되바라짐은 어른의 감탄을 불러일으키고 노인의 순수함은 젊은이들에게 감동과 깨달음을 준다. 지혜라고도 부른다.

 

이서진의 캐스팅은 그래서 아주 적절했다고 여겨진다. 너무 어려도 어색하고 너무 나이가 많아도 그림이 안 좋다. 너무 스스럼없어도 문제고, 그렇다고 너무 예의가 발라도 재미가 없다. 이서진의 소속사와 PD가 짜고서 이서진을 속여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는 장면도 매우 탁월했다. 자신이 함께 여행하게 될 상대가 누구인가를 알고 그에 맞춰 준비하는 작위보다는 카메라 앞이지만 자신을 속인 소속사와 제작진, 그리고 전혀 예기치않게 마흔이 넘긴 나이에 까마득한 어린것이 되어 시중을 들게 된 선배들에 대한 불만을 말하는 것이 좋았다. 그럼에도 예의바르다. 단정하고 깍듯하다. 평소 드라마 등을 통해 보여지는 이미지와도 이어진다. 젊은 시청자들과 '꽃보다 할배'의 70을 넘긴 H4와의 사이를 이어주는 가교역할일 것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젊은세대들이 자신들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를 대하는 것이 그럴 것이다.

 

성가시다. 분주하다. 제멋대로인 노인들과 그를 뒤치닥거리하는 젊은 후배. 제작진까지 이서진에게 곤란함을 더한다. 노인들은 상관없다. 그래서 즐겁다. 마치 아이와도 같은 그들의 천진함이. 그속에서 느껴지는 연륜과 여유가. 그를 위해서 이서진이 함께한다. 그럼에도 노인이기에 젊은이들과는 다르다. 젊기 때문에 너무나 쉽고 간단하기만 한 일들이 나이를 먹고 나면 그렇게 어렵고 불편하기만 하다. 늙으면 아이가 되어버린다고 하는 또다른 이유인 것이다. 아이들이 부모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듯 늙으면 다시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어쩔 수 없는 세월의 잔인함일 것이다. 불평하면서도 이서진은 하늘같은 - 존경하는 선배들을 최선을 다해 수발한다. 방송을 위한 연기이든 어쨌든 그의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다. 멋지다.

 

심상치 않다. 시청률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케이블채널의 예능임에도 벌써부터 상당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출연자들에 대한 이미지도 좋다. 관심도 높다. 확실히 나영석PD가 능력자는 능력자다. 한때 드라마의 시청률마저 우습게 넘보던 '1박2일'의 PD가 바로 '꽃보다 할배'의 나영석PD였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안다. 아니 사람들이 원할만한 것을 스스로 찾아내서 만드는 재주가 있다. 혹은 신기함으로, 혹은 호기심으로, 혹은 친근함으로, 혹은 그저 재미로. 재미가 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모습이 그러할 것이다. 크게 다르지 않다. 현실의 여건이 TV속 할배들처럼 넉넉한 여유를 누리지 못하게 할 뿐, 사소한 것에 즐거워하고, 별 것 아닌 일들에도 감동받는 등의 모습은 그들 역시 같다. 보려 하지 않을 뿐이다. 굳이 알려 하지 않을 뿐이다. 어느새 익숙해진 권위에 가려서. 당연하게 여겨온 익숙한 모습들이 그런 것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만화영화를 좋아하고, 게임을 즐기고, 혹은 사소한 수다를 나누고, 연속극을 보면서 마치 실제의 모습인 양 몰입해 보는 것도 그 나름의 천진함인 것이다. 그것을 지켜주는 것이 이서진처럼 그들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 걸어가는 뒷세대들의 일일 것이다. 굳이 의식하지는 않는다. 나영석 PD처럼. 한 데 어울린다. 그래서 즐겁다. 무겁지 않다. 진지하지 않다. 전혀 진지할 까닭이 없다. 늙는다는 건 무서운 것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바로 우리들 자신의 아버지이고 할아버지들이다. 어머니이고 할머니일 것이다. 당연하게 여겼던 모습의 뒤에서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 역시 당신들의 삶을 즐기려 함을. 그런 시대가 되었다. 초고령사회가 바로 눈앞에 있다. 자신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것을 가볍게 여상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재미있다.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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