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불후의 명곡2 - 절대유일, 유쾌한 양아치즘 DJ DOC

까칠부 2013. 7. 14. 07:37

한국사람들은 너무 착하다. 한국사회는 그래서 지나칠 정도로 도덕적이다. 작은 잘못 하나도 그대로 지나치지 못한다. 사소한 실수조차 용납하지 못하고 응징하려 한다. 하물며 연예인의 경우는 심지어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로 영영 다시는 대중앞에 나서지 못하게 되는 경우마저 적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도 허구헌날 싸움에 폭행사건으로 연예면이 아닌 사회면에 이름이 오르내리면서도 무려 20년 넘게 이어져온 그룹이 하나 있다.

 

그러고 보면 90년대는 반역의 시대였을 것이다. 80년대말 마침내 민주화를 쟁취하면서 청년들은 시대적 사명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민주화란 곧 권위주의의 해체였다. 자유로워진 청년들과 기존의 권위에 대한 도전은 사회곳곳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었다. 이른바 X세대라는 것이다. 개인주의적이고, 감각적이고, 소비적인. 그리고 그들에 어울리는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고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듀스, 하지만 역시 그 정점에 있던 것은 다름아닌 DJ DOC였을 것이다.

 

데뷔곡부터가 파격이었다. 무려 부부싸움을 소재로 삼고 있었다. 데뷔곡인 '슈퍼맨의 비애'는 부모의 싸움을 지켜보는 아이의 눈으로 어머니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묘사하고 있었다. 여기에서의 슈퍼맨이란 만능일 것을 요구받는 아버지를 뜻하는 말이었다. 이제까지 없던 스타일의 가사이고 노래였다. 그야말로 전세대를 아우르는 DJ DOC의 인기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어진 2집의 '머피의 법칙'에서 그들은 선언한다. 돈도 명예도 따분한 음악도 정말 싫다고. 자신들은 DOC라고. 유쾌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발칙할 정도로 솔직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대중들의 높은 호응을 받았다. 그것은 대부분의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었다.

 

3집에서는 '미녀와 야수(OK?OK!)'를 통해 노골적일 정도로 솔직한 성담론을 대중음악으로 끌어들였고, 4집의 'DOC와 춤을'에서는 사회적 관습과 통념에 대한 도전장을 던졌다. 뭐 그리 대수로운 것들이라고 그렇게까지 집착하고 고집하는가. 가르치려 드는가. 한 마디로 그런 이미지였을 것이다. 이런 음악을 하는 DJ DOC라면 충분히 일상에서도 그럴 법하다.

 

그것은 어쩌면 통쾌함이기도 했을 것이다. 일상에 매여살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에게 DJ DOC가 보여주는 거침없는 파격과 일탈들은 자신들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대리배설의 창구였을 것이다. 착하고 성실한 훌륭한 사회인을 연기하며 살아야 하는 대부분의 개인들에게 자신을 옭죄는 답답하고 경직된 일상을 부수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본능과 같은 것일 터다. 자신은 할 수 없지만 누군가는 지금 그것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DJ DOC의 음악을 들으면서, DJ DOC가 보여주는 일상의 퍼포먼스를 함께 즐긴다.

 

음악적으로는 5집의 'RUN TO YOU'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까지 DJ DOC의 앨범들은 전문작곡가의 곡들로 거의 채워져 있었다. 물론 곡을 쓰고 프로듀싱하는 과정에서 DJ DOC 멤버들의 요구도 적잖이 반영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DJ DOC만의 다른 그룹과는 차별되는 독특한 음악적 색깔로 드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DJ DOC 멤버들이 - 특히 리더인 이하늘이 곡을 쓰고 프로듀싱까지 맡아 책임지는 명실상부한 DJ DOC의 앨범은 바로 이 5집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을 것이다. 'RUN TO YOU'는 한국대중음악사상 손꼽히는 명곡 중의 명곡이었을 것이다. 이때 이하늘은 음악인으로서도 완성된다.

 

유일할 것이다. 어떤 그룹이나 개인도 이들과 같지는 못했다. 이들처럼은 되지 못했다. 끊임없이 사고를 쳐도 어느새 새로운 음반을 들고 나우면 음악차트 1위를 휩쓴다. 차트만이 아니다. 세대와 성별을 떠나 모든 대중들이 그들의 음악을 따라부르고 있었다. 가장 젊은 음악을 하면서도 모든 세대로부터 사랑받는 가장 폭넓은 음악을 하고 있었다. 악동들인 때문이다. 괜히 힙합을 한다고 어깨에 힘을 주기보다 그저 자신들부터 먼저 자기들의 음악을 즐긴다. 그들만큼은 설사 용서가 되지 않더라도 그 존재 자체는 용납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하필 전설이 DJ DOC였다는 점이 이번주 경연의 승패를 결정했을 것이다. 정준영 '리멤버'는 매우 훌륭한 록편곡이었다. 정준영의 노래실력 역시 탁월했다. 하지만 단조로웠다. 정준영 혼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B1A4의 'DOCD와 춤을'은 새로움은 없지만 DJ DOC와는 다른 자신들만의 사랑스러움을 충분히 관객들과 공유하고 있었다. 놀 줄 아는 팀이다. 무대와 노래를 즐길 줄 아는 그룹일 것이다. 남자가 남자를 사랑스럽다 여긴다. 자신들이 가진 매력과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공연에 강하다.

 

문명진의 '여름이야기'는 바다의 'RUN TO YOU'와 마찬가지로 조금은 무거웠다. 알앤비가수로서 특유의 리듬감은 충분히 '여름이야기'가 갖는 흥겨움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음색부터가 흑인음악만의 어떤 음울한 소울을 깊이 체화하고 있었다. DJ DOC라면 어쩌면 무척 슬플 수 있는 상황조차 지난 오랜 이야기처럼 우습게 부를 수 있다. 바다의 'RUN TO YOU'는 완성도가 높았지만 마치 관객들을 윽박지르는 듯 사납게까지 들렸다. 그에 비하면 노라조의 '머피의 법칙'은 DJ DOC가 들려주던 발칙함과 유쾌함을 녹여내고 있었다.

 

노라조라고 하는 그룹이 갖는 강점이다. 우습다. 싼티난다. 그런데 허술하지는 않다. 90년대가 DJ DOC를 통한 파격과 일탈로써 기성의 권력과 관습에 도전하고 있었다면, 2000년대 노라조는 싼티로써 기존의 경직된 사회와 개인들을 비웃고 조롱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기에 대한 환멸이기도 하다. 못하면 비루하고 비참한데 잘하면서 자기를 비하하고 있으니 그것이 오히려 통쾌하기까지 하다.

 

"뚱뚱하고 못생긴 애 있길래 쟤만 아니면 다 괜찮아"

 

아예 윽박지르듯 질러대는 랩아닌 랩에 그만 터지고 말았다. 그 상황이 보이는 듯하다. 도저히 마음에 안 드는 여자가 자리에 앉아 있는데 하필 그 여자와 내가 파트너가 된다. 어이없기 이전에 화부터 난다. 상대와 자신과, 그리고 그런 상황을 만든 무언가에 대해. 조빈은 탁월하다. 그는 탁월한 엔터테이너다. 그가 있어 노라조의 무대는 항상 기대하게 된다.

 

씨스타는 자신들의 말처럼 준비가 조금은 부족해 보였다. 노래도 훌륭하고 편곡도 나쁘지 않았는데 - 퍼포먼스 역시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는데 - 그러나 노래와 퍼포먼스 전반이 잘 녹아들지 않았다. 사이가 조금씩 끊기는 듯 매끄럽지 못했다. 바쁘기도 할 것이다. MC들이 말하는 그대로 최근 대세가 씨스타다. 네 명이 팀을 이루어 호흡까지 완벽하게 맞추자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데 '불후의 명곡2'를 위해 그렇게까지 하기에는 무리였을 것이다. 그래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기에 훌륭한 무대였다.

 

항상 악동과 같던 DJ DOC도 어느덧 중년의 나이를 넘어섰다. 만이 누그러졌다. 결혼도 했다. 착실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려는 모습도 보인다. 서운하기도 하지만 세월도 벌써 그렇게나 흘렀다. 지난 시절의 치기를 농담의 소재로 삼는다. 그때는 그랬었거니. 사건사고가 많기로는 MC인 신동엽도 만만치 않다. 같은 시대를 거쳐왔다. 그래도 때로 보여주는 그들만의 파격적인 모습들은 대중의 비난과 함께 어떤 일탈의 쾌감마저 느끼게 해준다. DJ DOC니까 가능하다. 이제는 누가 있어 DJ DOC를 대신할 수 있을까. 가는 시간이 서운하기도 하다.

 

힙합이란 원래 미국사회에서도 빈민가 흑인들의 하위문화에 속했을 것이다. 거칠고 사납다. 대신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시작은 힙합이 아니었다. 단지 당시 유행하던 여러 댄스그룹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삶이 음악을 정의한다. 음악은 힙합이 아니었지만 그들의 삶은 힙합이었다. 어쩌면 본토의 그것에 비하면 얌전하기만 한 삶의 모습이었을 테지만. 이런 그룹이 주류에 속해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맙고 대단한 일인가. 그들은 DJ DOC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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