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주군의 태양 - 통증이 답을 줄 거야! 엇갈리는 진심들

까칠부 2013. 8. 30. 07:27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믿음은 사람의 영혼이 원래의 육신을 벗어난 상태에서도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필멸자인 육신은 사라지더라도 불멸자인 영혼은 영원할 것이다. 육신이 사라지더라도 영혼은 불멸자로서 영원히 존재하며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후세계도 존재할 수 있다. 육신은 죽지만 영혼은 살아있다.

 

그래서 때로 영혼은 자기의 집인 육신을 벗어나 세상을 떠돌기도 한다. 흔히 유체이탈이라고도 하고, 일상에서 쓰이는 말로 넋이 나갔다고 말하기도 한다. 육신이 잠들거나 해서 활동을 멈추면 그때는 영혼이 육신을 벗어나 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먼 하늘나라로 여행을 가기도 하고, 깊디깊은 지옥을 방문하기도 하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못가는 곳이 없이 떠돌기도 한다. 그것을 달리 죽은 귀신과 분리해서 살아있는 영혼 - 생령이라 부른다. 아직 살았지만 육신이 아직 영혼을 담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에 죽은 귀신처럼 홀로 세상을 떠돌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익숙한 개념은 아닐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여러 형태로 전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이라 말하기는 매우 힘들다. 하지만 장르로 넘어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단순한 호러가 아닌 삶의 연장선에서 죽음을 일상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이른바 생활기담류에 이르면 생령은 매우 흔한 소재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오히려 삶을 등짐으로써 가능한 행복들이 산 사람으로 하여금 삶을 외면한 채 죽은 이들의 세계를 떠돌게 만든다. 죽은 사람의 영혼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까 아직 산 사람인데 현실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여 귀신처럼 영혼의 세계를 떠도는 중이었다.

 

차라리 아직 생령인 것이 밝혀지기 전이 훨씬 더 긴장감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 도대체 누구일까? 누구의 영혼일까? 어떤 한이 남아서 호텔 풀장에서 산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일까? 풀장에서 화장을 고치고, 식당에서 맛있게 식사까지 마친 뒤, 호텔 스위트룸에서 야경을 보며 우아하게 와인을 즐긴다. 반전이라면 반전일 것이다. 그렇게 대단한 신분의 귀부인 같은 것이 아닌 단지 이용권이 당첨되어서 잠시 방문했을 뿐인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그러나 이후 병원에 누워 있는 자신의 주위에서 벌어지는 뻔한 일상들은 반전을 진부함으로 바꿔 놓고 있었다. 그렇게 한여름밤의 꿈처럼 소원을 이룬 채 어느새 달라진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행복이란 때로 지겹기도 하다.

 

그래도 의미는 있었다. 작가의 놀라운 균형감각일 것이다. 사후세계와 현재의 일상들을 이어놓는다. 죽은 이들의 살았을 적의 이야기가 산 사람들의 간절한 이야기와 교차하여 보여진다. 한여름밤의 꿈이었다. 너무나 간절했던 잠시의 행보이었을 것이다. 마치 태공실(공효진 분) 자신의 이야기처럼. 누가 보더라도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사이일 것이다. 국내굴지의 대기업 오너의 아들과 고작 고시원 총무나 보고 있는 귀신마저 보는 평범하지 않은 여자와의 로맨스라는 것은. 동화속에서나 가능하다.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꿈을 꾸어본다. 그런 지금의 꿈들이 너무나 행복하다.

 

태공실도 어느새 인정하게 되었다. 솔직해지기는 주중원(소지섭 분) 쪽이 먼저 솔직해지고 있었다. 당연하다. 태공실이 주중원을 마음에 둔다면 주제도 모르는 헛된 망상에 불과하겠지만 주중원이 태공실을 원하게 된다면 그것은 가진 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선택'이라고 하는 권리의 행사일 수 있기 때문이다. 태공실이 주중원을 원한다면 모두는 비웃을 테지만, 주중원이 태공실을 원한다면 어떤 이들은 태공실의 행운을 부러워하기도 할 것이다. 물론 그같은 당연한 상식들이 어이없이 깨져나가기도 한다는 것이 살아가는 재미이기도 할 것이다.

 

태공실도 안다. 주중원과 자신의 사이가 얼마나 일방적으로 기우는가 하는 것을. 꿈은 깨기 마련이다. 사랑이라는 감정도 영원하지는 않다. 아니 아무리 서로를 간절히 원하고 사랑하고 있다 하더라도 현실이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벌써부터 태공실을 이용하려는 음모가 시작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보다 어쩌면 더 아득한 것이 현실이라고 하는 벽일 것이다. 이별을 준비한다. 그리고 이별을 위해 현실을 즐기려 한다. 지금이 너무도 기쁘고 행복하지만 그래서 슬프다. 하지만 그래도 그 순간들이 너무나 간절하다.

 

아쉽다면 태공실의 아련한 감정들에 비해 주중원의 감정이 갖는 어떤 절실함이 그다지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말 그대로 선택이다. 순간의 변덕이다. 우월한 지위에 있다. 모두를 굽어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더구나 자신에 일방적으로 기대려 하는 하찮은 대상에 불과할 것이다. 마음에 드니 선택하여 곁에 둔다. 구애정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전작의 독고진에 비해 주중원에게서는 그같은 진실한 감정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태공실 자신도 그것을 꿈이라 여기는지 모르겠다. 귀신을 매개로 현실의 바깥에서 맺어진 꿈같은 인연이다.

 

죽은 차희주에 대한 많은 것들이 밝혀진다. 마음이 정직하게 풀지 않을 때 통증이 답을 준다. 그 말은 차희주가 자주 쓰던 말이기도 하지만 강우(서인국 분)가 가장 존경하는 누군가가 들려준 말이기도 하다. 과연 누구였을까? 주중원이 아프기를 바란다고 했다. 아주 많이 아팠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주중원에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그녀를 기억할 수밖에 없는. 그녀를 원망하면서도 항상 떠올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런 상처를. 그녀의 잔인함에는 어떤 슬픔이 숨어 있었던 것일까? 그녀가 지켜야 한다고 말한 그는?

 

차라리 산 사람이라면 질투라도 할 것이다. 싸워서 그를 쫓아내기라도 할 것이다. 아니면 자신이 쫓겨나던가. 필사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다. 죽은 사람은 상처로써만 기억된다. 상처는 치유될 수 없다. 단지 잊혀질 뿐이다. 상처가 주는 고통에 익숙해질 뿐이다. 익숙해질 때 쯤 다시 아릿한 아픔이 상처를 일깨우고 만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 다시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된다. 더구나 그녀는 죽은 차희주를 볼 수 있다. 태공실의 간절함은 더욱 깊어진다. 주중원의 절실함은 오로지 죽은 차희주를 떠올릴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 의외로 비극적이다. 태공실의 사랑은. 주중원의 사랑은 일방적이고 무심하다.

 

호러와 로맨스를 이어보고자 한 시도는 좋았다. 하지만 새롭지는 않았다. 산 사람과 죽은 영혼이 함께 공존한다. 삶과 죽음을 경계로 산 사람의 일상이 죽은 이들의 기억과 서로 어우러진다. 삶과 죽음은 별개가 아니다. 죽음이 기억마저 단절하지는 못한다.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양식이 있다. 패턴이 있다. 특별한 로맨스와 평이한 장르적 구성이 만난다. 특별해야 할 로맨스가 지루한 이야기들과 만나 매력을 잃어간다. 조금 더 죽은 영혼들의 이야기에서도 산 사람들에게서와 같은 특별한 감각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힘이 부치는 모양이다. 필요한 장면에서 꼭 필요한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멈추고 만다.

 

 

태이령(김유리 분)은 용감하다. 용감하다는 것은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이다. 강우에게 호감이 있다. 그런 자신을 인정한다. 자신을 뒤에서 험담하는 대중들에게서 숨기보다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며 당당히 나선다. 결국 사람들에 둘러싸여 어쩔 줄 모르는 처지가 되어서도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 강우로 인해 웃을 수 있다. 멋지지 않은가. 통통 튀는 매력이 사랑스럽다. 태공실의 언니 태공리(박희본 분)이 헤어진 사랑과 우연히 만나 뒤쫓아가니 어느새 결혼해 임신까지 하고 있더라. 실망스러웠다. 진부하다. 하필 그녀의 곁에는 이한주(이재원 분)가 있었다.

 

주중원이 강우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아버지 주회장(김용건 분)의 의도가 과거의 사연과 함께 표면으로 떠오른다. 다른 여자로 인해 상처입은 남자의 모습을 보아야 하는 태공실이 있다. 태공실이 주중원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강우 역시 태공실을 바라보고 있었다. 버려진 둘리인형이 아이들에 의해 주워져 함께 하고 있다. 강우의 사랑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옛사랑이든 새로운 사랑이든.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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