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굿닥터 - 갑작스런 상황정리, 강현태의 계획이 시작되다

까칠부 2013. 9. 4. 06:56

드라마의 끝은 연설이다. 드라마가 추구해야 할 궁극의 지향점이어서가 아니다. 반대다. 드라마를 놓아버렸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연설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드라마로서 보여줄 것이 없을 때 잔뜩 힘이 들어간 연설로써 그것을 대신하려 한다. 교훈을 느끼고 감동을 받고.

 

그러나 드라마의 주제는 드라마의 내용 - 즉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게 된다. 시청자로 하여금 드라마속 허구를 마치 실제처럼 체험하고 공감하며 그리고 그에 대해 판단케 한다. 드라마가 재미있다는 것은 드라마속 허구의 내용들이 마치 실제처럼 실감나게 전해진다는 뜻일 것이다. 드라마가 재미있기에 드라마를 보고, 드라마에 이입하며, 마치 자기 이야기처럼 드라마속 이야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로부터 작가가 의도한 주제는 시청자에게 전해진다. 그에 대한 판단은 시청자 자신의 몫이다. 그것까지 작가가 강요할 수는 없다.

 

물론 드라마만으로 부족한 경우가 없지는 않다. 드라마의 대부분이 등장인물의 대사로 이루어져 있을 정도로 말이란 무척 중요하다. 다만 그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가, 아니면 철저히 드라마의 일부로써 드라마를 통해 들려주는가의 차이 정도는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작가가 직접 드라마에 개입하여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는가, 아니면 철저히 드라마속 인물이 되어 상황에 맞는 대사를 통해 시청자로 하여금 여지를 두고 스스로 판단토록 할 것인가. 오그라든다고 하는 것일 게다. 드라마속 상황에 몰입하기 전에 먼저 작가의 의도부터 판단하지 않으면 안된다. 작가의 의도가 드라마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드라마가 따로 논다. 허구가 철저히 허구인 채로 오히려 민망하게까지 여겨진다. 난감해진다.

 

드라마가 사라져간다. 박시온(주원 분)과 성원대학병원 의사들간의 갈등이 한순간에 봉합되어 버리고 만다. 오해도 있었다. 편견도 있었다. 그로 인한 갈등이 있었다. 김도한(주상욱 분)을 비롯한 성원대학병원 소아외과의 대부분은 자폐병력으로 인해 다른 사람과 많은 부분에서 다른 박시온을 배척하고 있었다. 의사로서의 자질이 의심되는 박시온을 부정하고 거부했고, 그조차 양심에 꺼려질 때면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고립무원의 처지로 고군분투하던 박시온에게 유이하게 손을 내밀어 준 두 사람이 병원장인 최우석(천호진 분)과 소아외과 팰로우 차윤서(문채원 분)였다. 위기도 있었고 어려움도 있었지만 두 사람이 있었기에 박시온은 지금껏 견뎌 올 수 있었다.

 

김도한과도 싸워야 한다. 김도한에게 의사로서 인정받기 위해서. 자신을 질투하고 혹은 백안시하는 동료 레지던트들과도 부딪혀야 한다. 환아들의 보호자들과도 아직 오해가 풀리지 않았다. 그토록 환아들을 위해 박시온을 거부하던 보호자들인데 어쩐지 더 이상 박시온에 대한 반응이 없다. 병원장을 몰아내기 위해 박시온의 약점을 이용하려는 소아외과 과장 고충만(조희봉 분)의 악의 역시 그가 극복해야 할 것들 가운데 하나다. 간담췌외과의 김재준(정만식 분) 과장의 경우와 같이 다른 과와의 관계 또한 그가 해결해나가야 할 숙제다.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하긴 김재준 과장이 언제부터인가 부재중이다. 더 이상 김재준 과장은 필요가 없는 것일까?

 

그런데 그런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해결되어 버린다. 김도한은 박시온을 인정하고, 동료 레지던트들 역시 그를 동료로써 받아들인다. 고충만을 유일하게 의사로써 인정해주고 존경한다 말해주는 것은 박시온 한 사람 뿐이다. 환아들의 보호자와 김재준은 언제부터인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박시온의 조언에 절망에 빠져 있던 임산부는 희망을 얻고, 산부인과 의사는 그것을 박시온의 덕이라 스스럼없이 말하고 있다. 곤란하기만 하던 분위기파악 못하고 나서는 박시온의 습관 역시 의사의 눈으로 보기에 상당히 만족스러운 놀라운 모습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나마 최우석이 병원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김도한으로부터 거절당한 강현태(곽도원 분)의 의도가 전면으로 나서기 시작했다는 점이 드라마에 변수로 남아 있다고나 할까?

 

결국은 이것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일단락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최우석이 물러나면 후임 병원장이 취임하게 된다. 강현태가 자신의 배후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유채경(김민서 분)이 김도한에게 자신의 야망을 밝히고 있었다. 어쩌면 김도한은, 그리고 의사로서 자신을 자각하기 시작한 고충만을 비롯한 소아외과의들은 새로운 더 강력한 적과 맞서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이제 곧 찾아오게 될 것이다. 소아외과에서 한가하게 아옹다옹할 여유따위 이제는 더 이상 없다. 마무리지어야 한다. 외계인이 침략해 오면 남한과 북한도 결국 힘을 모아 맞서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문제는 결국 그것은 작가 개인의 편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조금 더 치밀하게 이야기를 구성할 필요가 있었다. 박시온을 중심으로 얽히고 섥히며 긴장과 이완을 반복할 수 있도록 인물과 사건들을 배치할 필요가 있었다. 단계적으로 해결해나간다. 그때마다 사건이 주어지고, 그 사건이 해결되는 가운데 갈등이 해소되는 단서가 보인다. 갑작스럽게 모두가 박시온과 사이좋게 되지 않더라도 조금씩 주위로부터 인정을 받으며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간다. 주위의 배려가 아닌 박시온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의해 스스로 챙쥐해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것이 너무 쉽게 주어지니 정작 박시온이 할 일이 남아 있지 않다. 다른 의사들과 같아졌다. 괜한 임산부에게 먼저 말을 걸고 일장연설을 반복하게 된 이유다. 연설 말고는 할 것이 없다.

 

이제부터는 강현태가 주인공이다. 박시온에게서 드라마가 사라졌다. 더 이상 절박하고 간절한 드라마가 남아 있지 않다. 의사로서는 아직 역부족이니 수술실에서 그가 해야 할 일은 없다. 의사로서 성숙하지 못한 평범한 히어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뻔하다. 누구보다 선한 의도를 가지고 교훈이 있는 이야기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바꾼다. 진부하다. 태아의 장애를 의심하여 치료를 거부하고 태어난 아이를 입양보내고자 하는 시부모와 그런 시부모에 맞서려는 심약한 산모란. 결국 강현태가 나서서 사건을 주도하지 않는 이상 이같은 지루한 반복만을 보게 될 뿐이다.

 

강현태의 의도가 드러난다. 강현태의 배후가 모습을 나타내며 유채경 역시 자신의 야심을 노골적으로 내보이기 시작한다. 병원은 혼란에 빠진다. 소아외과가 그 중심에 놓인다. 김도한이 중심을 잡는다. 어느새 의사로서 자각하기 시작한 고충만이 함께한다. 그러나 역시 박시온의 순수가 모두를 구원하는 단서가 되어준다. 어쩌면 뻔한 교훈과 함께 흔한 감동으로 마무리할지도 모르겠다. 차윤서는 다시 자신을 버렸던 어머니와 함께 박시온에게 구원이 되어 줄 것이다. 어려움도 있고 좌절도 있을 테지만 결국은 모든 것을 이겨내고 자신이 바라던 의사로서 모두의 인정을 받게 된다. 마침내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나마 이 정도만 되어도 드라마로서 크게 불만은 없을 것이다. 어려운 의학보다는 익숙한 사람의 관계가 더 쉽고 흥미롭다. 병원을 둘러싼 음모와 그에 맞서는 소아외과, 특히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자폐의 전력이 있는 순수한 박시온의 존재란 상당히 매력적인 요소일 것이다. 다만 그렇더라도 지금처럼 연설로써 누군가를 가르치려 한다면 꽤나 거부감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오글거리는 것은 동의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드라마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드라마의 1부가 끝났다. 혹은 서장일지도 모르겠다. 박시온이 마침내 소아외과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다. 김도한을 비롯한 모두로부터 드디어 받아들여졌다. 병원장 최우석이 물러나며 강현태의 의도와 유채경의 야심과 닿아 있는 배후가 등장하게 된다. 긴장이 고조되어야 하지만... 김도한과 유채경의 갈등이 차윤서와 박시온의 사이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지켜본다. 아직은 멀다.

 

드라마를 보는 이유란 다름아닌 재미에 있을 것이다. 허구이기에 가능한 팽팽한 긴장과 갈등이 있다. 그것이 해소되는 이완이 있다. 교훈을 원한다면 차라리 다큐멘터리를 본다.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듯하다. 캐릭터는 매력적이다. 설정도 훌륭하다. 한 가지만 빠져있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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