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주군의 태양 - 그냥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얘기에요

까칠부 2013. 10. 4. 06:50

"그냥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얘기에요"

 

가장 인상적인 몇 분이었다. 사랑에 대한 가장 진실하면서도 솔직한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요 당신이 절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나만의 세계가 있어요. 그거에 빠져서 울기도 하고 슬퍼할지도 몰라요. 내가 이해가 안되겠지만 그냥 쟤는 저런가보다 좀 봐주세요."
"어떤 사람의 관계에서도 상대방의 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경우는 없어. 내가 이해가 안돼서 널 무시해도 그러려니 좀 봐줘!"

 

술에 취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경우란 일상에서도 매우 흔하다. 갑자기 말이 많아지기도 하고, 느닷없이 펑펑 울기도 하며, 감정이 고조되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무작정 거리를 걷기도 한다. 그리고 잊어버린다. 필름이 끊겼다고 말한다. 자기가 한 일인데 다음날이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기는 그래서 술에 대한 전설 가운데 병을 치료하려 사람을 죽여 밀밭에 묻었는데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영혼이 밀에 들어가 밀로 빚은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 쓰이게 되었더라는 것이 있을 정도다. 전통적으로 술을 빚을 때는 누룩을 쓰는데, 이 누룩을 만드는 것이 바로 밀이었다. 술에 취해 정신을 놓거나, 아니면 귀신이 씌어 전혀 다른 사람이 되거나, 혹은 함께 대화를 하다가도 전화가 오거나 하면 그것을 받느라 대화를 멈추어야 하는 일도 곧잘 벌어진다. 그렇게 보통의 연인들도 사소한 일들을 서로 양해하며 만나고 사랑하는 것이다.

 

완벽하게 어울리는 사람이란 없다. 서로를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시작하는 사랑 또한 없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고 말한다. 그 사람의 단점마저 장점으로 보인다. 그 사람으로 인한 괴로움이나 불편함조차 행복으로 여겨진다. 얼마나 자기와 다른 부분들을, 자기와 부딪히고 부대끼게 될 부분들에 대해서 관용할 수 있는가가 그 사람과의 사이를 정의한다 할 수 있다. 도무지 이상하고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서까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 믿음이 있다. 이 사람이라면 이런 나의 모습마저 사랑해 줄 것이다.

 

자신이 부끄럽다. 한심하고 초라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서는 안 될 것 같다.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에게 폐가 된다. 그러나 사랑한다. 그래서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자 최선을 다한다. 더 좋은 모습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자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면서도 다만 미치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상대의 관용과 배려를 기대하게 된다. 자신의 모든 부족하고 못난 부분들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줄 수 있기를. 때로 그런 것을 시험하기도 한다. 얼마나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는가.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가장 가까이에서 영원히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모든 이들은 그것을 꿈꾼다.

 

짧지만 사랑에 대한 직관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이해를 간결하게 압축해서 들려주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꿈꾸는 로맨스다. 드라마다. 사람이 만나고 서로 사랑하게 되는 과정에 대해서. 그 사랑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도. 서로 전혀 다른 인격과 개성이 만나 하나가 되기까지. 그 하나 안에 둘이 오롯한 모습으로 함께 공존한다. 때로 그것이 원인이 되어 서로 싸우고 돌아서고 외면하다가 독한 말로 상처를 주다가도 결국 그런 서로의 모든 것들을 사랑하여 하나가 된다. 사랑하기에 서로 닮아가고 사랑하기에 서로 다른 모습으로 함께 있는다. 모든 연인들처럼.

 

물론 쉽지만은 않다. 세상에 힘든 일이 수도 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 가장 어렵고 힘든 것이 바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일 게다.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이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다. 그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는지. 자신을 사랑하면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사랑이 얼마나 이어질지. 그런데도 사랑한다. 두렵고 불안한데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결과를 알아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용기다. 그 끝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든 지금의 자신의 진심에 최선을 다한다.

 

보통의 연인들처럼 사랑하려 한다. 우연처럼 만나고, 조금씩 튕기며, 밀당이라는 것도 해 본다. 반가우면서도 감정을 숨기고, 때로는 거짓말도 해가면서, 그러면서도 주위를 맴돌며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주중원(소지섭 분)의 마음을 안다. 그가 아직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도. 그 사랑이 진심이라는 것도 역시 알고 있다. 자신도 역시 그를 사랑한다. 결과에 대한 확신을 전제로 즐기는 게임과 같을 것이다. 정작 주중원을 멀리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태공실(공효진 분)은 주중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려 한다 말하고 있었다.

 

조금은 뜬금없었다. 난데없이 주성란(김미경 분)의 임신이라니. 굳이 이 시점에서 주성란이 임신을 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반전을 위한 소재로 너무 흔하게 쓰이다 보니 식상하다 못해 신물이 나려 한다. 그런데 아니었다. 주성란과 태공실이 만난다. 고민하고 있었다.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지금에 와서 잘 낳아서 기를 수 있을까? 차라리 포기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임신의 기미조차 없었고 젊어서는 유산의 경험까지 있었다. 그러나 태공실은 말하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그 모든 두려움과 불안과 아픔과 상처마저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라고. 포기한다면 사랑할 수 있는 기회조차 놓칠 수 있다고. 설사 그 끝에 불행이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사람은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강우(서인국 분)와 태이령(김유리 분)이 레드카펫 위를 걸어간다. 두렵다. 태이령의 곁에 서는 것이. 태이령의 곁에서 태이령을 과연 지켜줄 수 있을까 자신이 서지 않는다. 태이령은 지금 이대로인 채가 더 좋을지 모른다. 톱스타로서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화려한 모습이 더 어울리는지 모른다. 그래서 흑수염고래라 부른다. 자신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녀를 아껴주고 지지해 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태이령을 위해 함께 레드카펫 위를 걸으니 생각만큼 그렇게 무섭지 않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모습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상당히 음흉하고 능글맞은 모습도 보여왔었지만 사랑하는 아내의 임신 소식에 도석철(이종원 분) 평범한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된다. 순수하게 좋아하는 모습에 주성란도 새삼 마음이 든든하다. 태공실의 언니 태공리(박희본 분) 역시 경호팀장 이한주(이재원 분)와 투닥거리며 함께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귀신을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하는 기적이 중요하다. 여기까지 오기가 참 힘들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랑하며 살 수밖에 없는 연인들의 이야기다. 우연이 운명이 되고 운명은 필연이 된다. 예정된 이야기처럼 그들은 사랑을 한다.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사랑하는 순간 그들은 안다. 사랑하는 그 자체가 주어진 결말이라는 것을. 사랑은 수단이 아니다. 사랑이 곧 이유이고 목적이다. 그들은 사랑을 한다. 지듬도 그들은 사랑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귀신이 등장하면 흐트러지는 것이 있었다. 진부하고 평이했다. 주중원과 태공실의 로맨스도 장르의 정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공효진의 연기가 드라마를 지탱했다. 다양한 캐릭터를 천연덕스럽게 잘 소화해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사랑스럽다. 하지만 마지막 마무리는 작가의 역량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을 것이다. 작가가 보내는 메시지다.

 

드라마를 보는 이유도 같다. 실망도 한다. 화도 내고 욕도 한다. 불평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본다. 좋은 드라마를 보게 되면 보상을 받는 듯하다. 일상이다. 재미있어서도 보고 재미없어서도 본다. 오히려 후반이 좋았다. 주중원과 태공실의 감정이 살아있었다.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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