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굿닥터 - 박시온 성장기, 착한 사람들의 행복한 동화

까칠부 2013. 10. 9. 07:16

아니나 다를까였다. 굳이 예견이랄 것도 없었다. 이제 겨우 한 회 남았다. 그동안 보아온 패턴이라는 것도 있었다. 박시온(주원 분)과 차윤서(문채원 분)가 공개연애를 하면서 불거진 여러 현실의 문제들 역시 별다른 고민이나 갈등 없이 수월하게 넘어가게 될 것이다. 그대로였다. 차윤서가 한 번 호통을 치고 박시온이 친구들 앞에서 한 번 재롱을 떠니 그것으로 끝이다.

 

박시온의 성장기였다. 자폐를 앓았던 박시온이 한 사람의 의사로서 홀로서기까지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의문이 남는다. 국시원장까지 직접 나서서 박시온에게 합격증을 수여할 때 과연 그동안 박시온이 의사로서 보여준 것이 무엇이 있었는가. 원래 예정되었던 6개월이 아닌 3개월만에 박시온에 대한 모든 평가를 마무리지었을 때 그것은 성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확인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박시온은 처음부터 완성되어서 단지 그것을 소아외과의 구성원들로부터 인정받게 되었을 뿐이다.

 

계속해서 지적해왔던 부분이었을 것이다. 과정이 없다. 의사로서, 혹은 인간으로서 박시온이 성장하는 계기가 보이지 않는다. 갈등하고 고민하고 부딪히고 부서지고 다치는 가운데 조금씩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게 된다. 이제까지 몰랐던 더 넓은 세상과 더 많은 가능성을 만나며, 그것을 이해하는 가운데 자신이라고 하는 세계 또한 커지고 깊어지게 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박시온을 가르치는 입장이었지 배우는 입장이 아니었다. 듣기보다는 말하는 역할이었다. 그나마 박시온이 성장했다 할 만한 부분조차 소아외과, 아니 병원의 구성원들과 공존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처세술에 가깝다.

 

감동이 없는 이유일 것이다. 어려움이 있어야 같이 마음졸이며 응원이라는 것도 해보게 된다. 긴장이 있어야 긴장이 해소되었을 때 성취감도 느껴볼 수 있다. 간절한 바람이 있을 때 성취의 쾌감도 극대화된다. 자폐의 전력이 있는 박시온이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의 벽을 하나씩 힘겹게 극복해갈 때 마침내 의사로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게 되었을 때 그 감동도 거 커지는 것이다. 수도 없이 좌절하고 절망하면서도 끝끝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해 나간다. 하지만 이미 병원에 오기 전부터 박시온은 완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박시온의 성장을 도운 멘토를 꼽이라 한다면 소아병동의 나인혜(김현수 분) 정도가 그나마 유력할 것이다. 의사로서 이미 박시온은 방대한 기억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것을 그때그때 필요한 곳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응용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경험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그조차 몇 차례의 이미지트레이닝만으로 혼자서 집도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고 만다. 그에 비하면 차윤서의 고백을 받고 공개연애를 하기까지 한 사람의 남자로서 그를 성장시킨 것은 정작 나인혜가 아니었을까. 그조차도 성장이라기에는 차윤서와 사귀기까지 별다른 갈등도 위기도 없이 그냥저냥하게 넘어오고 있었다. 누이가 어느새 여자친구가 되었다.

 

드라마의 무대가 되는 성원대학병원을 둘러싼 웨스트에머슨과 정회장(김창완 분)의 계획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강현태(곽도원 분) 한 사람의 변심만으로 15년 동안 공들여 추진해 온 정회장의 계획은 그대로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만다. 강현태의 변심이란 아들의 수술이었다. 미국에서조차 치료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성원대학병원에서 아들을 훌륭히 완치시키고 있었다.  "아이들 가지고 그러시면 안됩니다!" 민망할 정도로 진부한 대사였다. 이것으로 성원대학병원의 모두를 긴장시키던 웨스트에머슨의 인수건은 마무리지어진다.

 

어떻게 보면 이 또한 상당한 파격일 것이다. 명색이 주인공이다. 성원대학병원을 둘러싼 웨스트에머슨의 음모는 첫회부터 일관되게 드라마를 관통해 온 핵심줄거리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인 박시온은 웨스트에머슨이나 성원대학병원의 위기와는 전혀 상관없이 오로지 차윤서와의 관계에만 집중하는 듯한 모습이다. 주인공인 박시온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정작 중요한 일들이 일어나고, 그리고 박시온과 전혀 상관없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그렇다고 그것을 주도적으로 끌어가는 다른 캐릭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스케일은 상당히 큰데 배경치고는 지나치게 두드러지고 있다. 역시 모든 위기가 해결됐음에도 이입할 대상을 찾지 못하면서 그에 따른 통쾌함이나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인 것은 알지만 굳이 나인혜가 깨어나기까지 초월자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그저 기도만 하고 있어야 했을까? 많은 사람의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지는 이적보다는 의사로서 원안을 파악하고 그것을 치료할 방법을 찾는 치열한 전장의 모습이 더 드라마로서 흥미로웠을지 모른다. 대신 무언가 행복하다. 밝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마침내 나인혜가 깨어난다. 의사에게는 환경이나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진부하지만 진부한 것이 먹힌다.

 

하기는 어쩌면 이것은 한 편의 동화였을 것이다. 현실의 험난함이나 각박함과는 전혀 상관없는 철저히 가공된 동화의 세계였을 것이다. 어려운 일도 없다. 힘든 일도 없다. 위기나 장애는 딱 극복할 만큼만 주어진다. 모두 행복할 수 있다. 모두가 선량하다. 악역이라 할 만한 정회장은 아예 분량 자체가 없다. 김도한(주상욱 분)과 대립하는 현실의 캐릭터일 간담췌외과의 김재준(정만식 분) 과장 역시 한 발 물러서 있다. 강현태도 본래의 선량함을 되찾고, 유채경(김민서 분) 또한 원래의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 모두는 행복해진다. 아마도 현실에 지친 사람에게 그것은 또 하나 위로가 되어주지 않았을까. 긴장이나 갈등은 현실에서도 넘친다.

 

다만 그럼에도 아쉬웠던 것은 평생 폭력만을 휘둘러 온 아버지 박춘성(정호근 분)에 대한 섣부른 화해의 시도였을 것이다. 가정폭력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만만하게 다룰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가정폭력에 노출된 피해자가 어른이 되고 육체적으로도 성장하자 거꾸로 가해자가 되어 폭력을 휘두른 당사자에게 복수하는 내용이 심심치 않게 미디어 등을 통해 보도된다. 평생을 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을 안고 살아가야 하고, 때로 그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마저 있다. 아니 아예 그럴 기회조차 없이 목숨을 잃거나, 신체적으로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마저 적지 않다. 과연 그토록 폭력에 시달렸는데 죽을 때가 되었다고 쉽게 용서할 수 있을까?

 

박시온은 그럴 수 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을 테니까. 형을 잃은 그 날의 사고 이후 아버지가 자신을 버리며 박시온은 아버지가 없는 시간들을 10년 넘게 지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끝내 다시 남편마저 버리고 도망쳐야 했던 어머니 오경주(윤유선 분)의 사정은 다를 수 있다. 어차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인데 마지막 병에 걸려 약한 모습을 보았다고 그 죽음에 그리 슬퍼할 수 있는가. 아무리 폭력을 휘두르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어도 아버지는 아버지다. 남편은 남편이다. 가족은 가족이다.

 

화해하는 과정도 서툴기는 마찬가지였다. 굳이 김도한이 찾아가지 않더라도 직접 자신의 눈으로 아들 박시온이 의사로서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했으면 어땠을까? 의사로서 모두로부터 인정받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기억하던 그저 모자라기만 한 막내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도록 한다. 그리고 최우석(천호진 분)에게 한 잘 들리지도 않는 사과보다는 보다 진솔한 사죄가 필요했을 것이다. 용서하지 않을 수 없는. 최소한 용서하지는 못하더라도 연민을 가질 수 있는. 역시나 보편적이라는 것은 보수적이라는 뜻이다. 천륜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용서하지 않으면 안된다.

 

드라마로서는 많이 아쉬웠지만 무난하게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이 어쩌면 마음이 놓이고 있었다. 가슴졸일 일이 없으니 그만큼 자극적인 재미는 없지만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의 행복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즐겁기도 하다. 동화가 갖는 가치일 것이다. 아직 세상의 어려움을 알릴 필요는 없다. 세상의 험난함이나 각박함을 알게 할 필요도 없다. 행복하기를 바란다. 순수하기를 바란다. 영원히 그대로이기를. 드라마에서라도. 허구속에서라도.

 

박시온의 캐릭터는 드라마의 성패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한 수였다. 어린아이의 천진함과 동물의 순수함을 모두 가지고 있다. 어린아이와 동물이 미녀를 만난다. 이미 그림은 완성되었다. 모두가 행복해진다. 쉽지만은 않지만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랑을 한다. 김도한은 이상적인 형의 모습 그대로였다. 형제가 되었다. 마음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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