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일까? 아니면 제작진의 의도일까? 정말 닮은 두사람이 함께 전설로 출연했다. 데뷔연도도 비슷하다. 김정수가 1967년 미키스라는 밴드에서 베이시스트로 데뷔했고, 김국환은 두 해 뒤 1969년 김희갑 악단에서 가수생활을 시작했다. 1977년 김국환의 첫히트곡인 '꽃순이를 아시나요'가 발표되었고, 그 이듬해 김정수는 자신의 이름을 딴 '김정수와 급행열차'를 결성 이후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명곡 '내 마음 당신 곁으로'를 발표했다. 두 사람이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도 역시 1991년 '당신'과 1992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 삽입되었던 '타타타'였다. 정말 한두해 사이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인생역정이 닮아 있다.
데뷔는 베이시스트로 시작했지만 1970년대 당시 최고의 소울을 들려주던 최헌 등과 '검은 나비'라는 팀을 결성하여 여러 무대를 섭렵하며 보컬로써의 역량도 키워나가고 있었다. 당시의 많은 음악인들이 그러하듯 밤무대에서 다양한 취향의 손님들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역시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고루 섭렵하고 있었다. 보컬리스트로서 처음으로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린 '내 마음 당신 곁으로'에서부터 그를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은 '당신'까지 김정수의 노래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감성은 바로 그같은 탄탄한 폭넓은 음악적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록의 힘과 흑인음악의 소울, 그리고 너무나 한국적인 트로트의 뽕끼가 그대로 어우러져 녹아있는 듯하다. 소울이 느껴진다. 임태경의 평가에 동의한다.
국민가수라는 말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성별과 세대를 초월하여 하나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라면 김국환 역시 국민가수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지 않을까? 모두가 따라부르고 있었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일이었다. 그러나 가장 소중했던 시기에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김국환의 주제가가 함께하고 있었다. 어린시절 가장 재미있게, 가장 감동받으며 보았던 만화영화들에 김국환의 주제가가 들리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따라부르게 된다. 물론 그 주제가들을 부른 가수가 김국환이라는 것도 결국 '타타타'가 성공하며 알려지게 되었다. 애니메이션의 주제가만을 전문으로 부르는 가수가 있고, 그들의 전문성과 업적에 대해 사회적으로도 인정해주고 존경해주는 옆나라의 문화가 부러울 따름이다. '타타타'보다는 솔직히 '은하철도 999'가 더 와 닿는다. 무명 아닌 무명이라 할 것이다.
역시 산들은 노래를 부를 줄 안다. 어느 선술집이다. 한 사내가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지친 표정 지친 몸짓으로 나즈막이 지나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잔, 또 한 잔, 술과 함께 추억을 더하며 사내의 목소리가 커져간다. 떠나온 고향에 대해서. 사랑했던 첫사랑에 대해서. 그녀를 떠나보내고 견뎌야 했던 시간들에 대해서도. 서럽고 억울하다. 누군지 모르게 화가 난다. 원망을 토해낸다. 그리워한다. 나이가 아직 어릴 텐데도. 아마 노래를 더 잘 알기 위해 보았던 영화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꽃순이를 아시나요', 김국환 다음이 산들이다.
노래 못하는 멤버가 없다. 더구나 각자가 목소리며 스타일이며 하나같이 색깔이 다르다. 김정수가 솔로로 전향하고 처음으로 발표했던 '가슴이 떨려'가 제국의 아이들 멤버들의 색깔에 맞춰 무한히 변주된다. 강렬한 랩은 제국의 아이들의 자기주장이다. 발표 당시와는 전혀 다른 지금에 맞는 제국의 아이들에 맞춘 옷을 입는다. 편곡의 승리다. 신나고 즐겁고 슬프고 안타까운 감정이 노래와 함께 변주된다. 실수가 있었다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무대에 몰입하고 있었다. 매력만큼이나 재주도 많은 친구들이다. 결과가 아쉬웠다.
스윙의 다른 말은 덩실덩실이었을까? 주부인 이수영이 부르는 '우리도 접시를 깨뜨리자'는 남자인 김국환이 부르는 것과는 또 전혀 다른 느낌이다. 뮤지컬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집안일에 치여 살던 아내가 어느날 소리친다. 나에게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변신이 시작된다. 마침내 자유를 얻은 화려한 차림의 아내가 남편에게 그것이 얼마나 자신에게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인가를 설명한다. 그것이 얼마나 자기를 기쁘게하고 행복하게 만드는지. 의도적으로 무대의상도 하려하게 꾸몄을 것이다. 덩실덩실 능글능글 마침내 집안일에서 자유로워진 아내의 여유와 기쁨을 몸짓으로 보여준다. 접시를 깨뜨려야 하는 이유다. 과연 이수영이다.
솔직히 우승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무대였다. 뮤지컬배우였을 것이다. 역시나 모든 노래를 뮤지컬처럼 부른다. 아내를 향한 노래였다. 아내에게 들려주려는 자신의 이야기였다. 모두가 들으라는 노래가 아니었다. 뮤지컬배우는 관객을 향해 노래를 부른다. 관객을 이해시키려 노래를 부른다. 감정이 과장되어 있다. 지나치게 극적으로 꾸며져 있다. 뮤지컬이었다면 더 감동적이었을 텐데. 담담히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전하려 할 때 김정수의 '당신'은 모두의 이야기가 되었다. 임태경만의 노래다. 나쁘지는 않다. 김정수의 원곡 '당신'을 너무나 좋아하는 필자의 작은 투덜거림일 뿐이다.
지오의 '내 마음 당신 곁으로'를 들으면서는 자아도취를 떠올렸다. 사랑에 취해 있다.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에 취해 있다. 그보다는 그런 자신의 감정에 취해 있다. 혼자서 연습할 때는 못느꼈다는 지오의 말을 히해할 것 같다. 혼자서 감정에 도취되어 있는데 누군가 그 모습을 보게 되면 상당히 당황스럽다. 어느 외로운 카페가 있다. 어둑한 구석진 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다.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을 사랑하는 자신에 대해서. 나쁘지 않다. 조금 더 몰입해서 불렀으면 어땠을까.
'타타타'에는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한다. 분노와 체념이. 슬픔과 허무가. 좌절과 냉소가. 노래를 부르는 내내 강민경은 인상을 쓰고 있었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이해리는 웃고 있었다. 힘을 빼고 있었다. 두 개의 다른 얼굴처럼 다른 목소리가 다른 감정을 들려주는 듯하다. 관능적인 라틴의 선율이 주체할 수 없이 모순된 내면의 격정을 들려주는 듯하다. 자기와의 대화다.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와 또 하나의 내가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이런 노래였는가. 그들은 '다비치'였다.
참 무명시절이 길었다. 1977년 '꽃순이를 아시나요'를 발표하고 무려 15년이 지나서야 '타타타'로 사람들에게 비로소 이름 석 자를 알릴 수 있었다. 1978년 '김정수와 특급열차'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내놓았지만 노래만 겨우 다른 가수들의 리메이크로 알려졌을 뿐이었다. 1991년 그동안의 무명의 설움이 자신과 함께 해 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되어 '당신'이 나오게 되었다. 김국환이 1948년생, 김정수가 한 살 어린 1949년생, 스타가 되었을 때는 벌써 불혹을 넘겨 있었다. 꿈이란 그런 것 아니던가. 삶이란 불혹도 늦지 않다. 어쩌면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느다고 젊은 가수들은 너무 쉽게 꿈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동안 '불후의 명곡2'에도 대중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가수들이 적잖이 출연하고 있었다.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고민하고 있었다. 이대로 이 길을 계속 가도 좋은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 그리 하라 권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같은 선배들도 있었다. '불후의 명곡2'를 통해 늦게나마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는다. 깜짝스타로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불후의 명곡2'를 통해 편견없이 귀기울여주는 수많은 관객과 시청자가 있다. 전설 김정수와 김국환을 보녀 느끼는 소회일 것이다. 이런 선배들이 있었다. 기억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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