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려고 하니 정작 쓸 게 없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있는 그대로. 그는 신승훈이다. 발라드의 황제. 아니 발라드 그 자체.
시작은 여러 사람이 했다. 이문세가 있었고, 유재하가 있었고, 변진섭이 있었다. 하지만 발라드라고 하는 양식을 완성한 것은 바로 신승훈이었다. 발라드는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 발라드의 에티튜드는 신승훈에게서 시작되었다. 발라드는 이런 것이다.
정준영은 과연 멋을 아는 아티스트였다. 무대 전체가 그의 공간이었다. 밴드만이 아니었다. 무대에 서 있는 모든 시간이 그와 하나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노래를 부르는 사이사이,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동안에도 어떻게 하면 멋있게 보일까 철저히 계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울부짖고 있었다. 거친 질감의 남자의 목소리가 '널 사랑하니까'의 감미로운 슬픔을 절규로 바꾸고 있었다. 상처입은 남자가 서 있다. 그런데 왜 이리 멋진가. 잘생긴 사람은 상처투성이가 되어서도 멋지다.
신승훈의 말처럼 부부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무대였다. 이미 서로 다른 공간속에 있는 연인들이 있다. 그러나 시간은 함께 흐른다. 헤어짐의 아픔도. 지난 시간에 대한 추억도. 사랑에 대한 미련도.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도. 가끔씩 그들은 만난다. 서로 다른 공간 다른 시간에서 그들은 서로가 알지 못한 채 서로 만나고 있다. 그들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오랜 이별 뒤에. 어쩌면 누구나 겪어봤을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그들은 만났다. 부부가 되었다. 새삼 그 노래를 부른 것이 김소현 손준호 부부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해피엔드이기를. 모든 시간의 바람이다.
상대가 너무 강했다. 신용재라니. 모든 감정을 내려놓은 신용재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노래가 갖는 감정을 극대화하여 들려주고 있었다. 이별을 믿고 싶지 않은 미련과 안타까움.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을 믿고 싶은 간절함이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를 따라 파고든다. 그리고 감정이 고조된다. 노래를 따라 감정이 치밀고, 치미는 감정에 노래가 실린다. 거대한 파도가 되어 밀려드는 감정의 격랑 위에서 노래가 아슬아슬한 곡예를 보인다. 넘어갈 듯 넘어갈 듯 마지막 순간에 그 선을 넘기지 않는 것은 신용재가 갖는 노련함일 것이다. 감정의 극한에서 노래를 부른다. 신용재라서 가능하다. 'I Believe'. 신승훈의 감정은 잔잔한 바다다. 수면 아래서 태풍이 몰아치는 잔잔한 바다다. 신승훈과는 다른 신용재만의 'I Believe'였다. 그러나 신용재조차 다시 강적을 만난다.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긁어 거친 질감을 만들어내고 있었을 것이다. 사랑이란 달콤하기만 한가. 사랑한다는 것이 그저 아름답기만 한 일인가. 더구나 짝사랑이라면. 그 사람이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화내고 아파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차라리 포기하려 한다. 차라리 이대로 잊으려 한다. 그조차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너무나 화나고 슬프다. 나는 왜 이러는가.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 꿈을 꾼다. 꿈은 너무나 허무하다. 드라마틱. 이 한 단어로 요약해 본다. 노래는 드라마다. 사랑도 드라마다. 삶도 드라마다. 알리의 '우연히'는 가장 아픈 드라마였다.
레드애플의 '보이지 않는 사랑'을 들으면서 문득 레드애플이 부르는 트로트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목소리에 뽕이 있다. 원초적으로 통하는 어떤 고유의 감정이 있다. 오케스트라와 밴드의 만남이 좋았다. 하지만 정제된 연주에 비해 목소리는 너무 본능적이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마저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원래는 전주에 나왔어야 했을 'Ich liebe Dich'를 허밍으로 삽입한 것이 감동을 그대로 지난 추억 속에 가두어 버렸다. 감동을 여운으로 남긴다. 편곡의 승리였다. 어쩌면 노래보다 더 진한 감동이 승리를 결정지었다.
지난주 우승이 우연이 아니었다. 내내 즐거운 웃음을 머금고 지켜보고 있었다. 당장은 슬프고 아프겠지만 지나고 나면 그것도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신승훈이 자기가 곡을 꽤 쓰는구나 감탄한 이유를 알 것 같다. 30대의 신승훈이 쓴 노래가 20대의 산들과 너무나 잘 어우러진다. 사랑에 한창 고민하던 나이의 풋풋하던 감수성이 경쾌한 멜로디를 타고 너무나 어울리게 들려온다. 놀라고 당황하고 실망하고 다시 사랑에 들뜨는 산들의 목소리가 표정과 잘 어울리고 있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산들의 상큼함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먼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산들이기에 가능했다. 산들의 나이이기에 가능한 무대였다. 산들 방식대로의 '내 방식대로의 사랑'이었다. 흐뭇하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다. 노래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노랫말과 멜로디 그 자체로 아름답다. 노래가 슬프니 슬프고, 노래가 기쁘니 기쁘다. 노래를 잘한다는 것은 노래가 갖는 느낌을 가장 충실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멋진 퍼포먼스도 없었다. 화려한 기교도 없었다. 노래만 부르고 있었다. 노랫말과 멜로디를 따라 살짝살짝 감정이 내비치고 있었다. 통곡을 해도 부족할 것 같은 노랫말에 누르고누른 절제된 감정이 실린다. 슬퍼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눈물을 흘리는 것도 관객의 몫이다. 노래를 부른다. '나보다 더 높은 곳에 네가 있을 뿐'. 슬퍼해야 할 사람이 슬퍼할 수조차 없을 때 주위에서 대신 울어준다. V.O.S도 베테랑이다. 깊이를 듣는다.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다. 남자는 존경의 대상이지 호감의 대상은 아닐 것이다. 산들을 보며 바뀐다. 그 멍한 표정이 너무나 순수해 보인다. 아니 순수란 남자와 여자의 성별을 초월한 것일까? 무대에서 드러나는 솔직함이 그 나이에 어울리는 순수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남자아이돌의 팬이 되어 가는가. 무리하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만을 보여준다. 원래 B1A4의 무대에 항상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벌써부터 다음 무대를 기대하게 된다. 그만큼 이번주 보여준 산들의 무대는 우승을 차지한 지난주보다 더 훌륭했다. 개인적으로 이번주 최고가 아니었을까.
과연 전설을 한 번 보고 마는 것은 아까운 일일 것이다. 한 주로도 부족하고, 한 번 출연하는 것으로는 너무 아쉽다. 전설의 무대를 재현하고 싶은 후배가수들도 아직 많다. 새로운 젊은 목소리로 전설의 무대를 다시 보고 싶은 욕심도 갈수록 커진다. 신승훈은 그럴 가치가 차고 넘치는 그야말로 전설일 것이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그 이름 그대로 신승훈이 곧 신승훈을 말한다.
눈이 즐겁고 귀가 즐겁다. 시간과 공간을 거스른다. 과거와 현재가 만난다. 후배들도 선배에 못지 않다. 그러나 전설이 전설인 이유는 그가 이미 존재했기 때문이다. 항상 즐기고 있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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