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따뜻한 말 한 마디 - 끝없는 수렁으로, 모두가 불행해지다

까칠부 2014. 1. 7. 06:09

차라리 살인자와는 함께 살 수 있다. 아니 함께 살 수 없다. 언제 다른 사람을 죽인 그 손이 자신마저 죽이게 될지 모른다. 이미 한 번 누군가를 죽인 그 손이 자신마저 죽이고야 말 것이다. 불신이야 말로 원초적인 공포를 불러오는 근원일 것이다.


사람에게 내려진 가장 큰 형벌일 것이다. 누군가를 믿을 수 없다는 것. 누군가를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 더구나 가장 믿고 의지하던 사람이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까 한순간에 꺼지듯 사라져버리고 만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존재마저 의심하게 된다. 자기란 그렇게 가치없는 존재였던가. 그렇게 의미없는 대상이었던가. 고독보다 더 깊은 고립감이 자신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는다.


차라리 미워할 수 있었다면. 마음껏 미워하고 원망을 쏟아낼 수 있었다면. 부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이 없더라도 그동안 함께 해 온 시간들이 있다. 자신들이 낳은 아이의 부모이기도 하다. 아버지에게는 며느리이고, 어머니에게는 사위다. 여동생은 올케라 부르고, 남동생들은 그를 매형이라 부른다. 켜켜이 쌓아올린 관계 속에 이제 등을 돌린다고 온전한 남이 되기도 힘들다. 어지간한 결심과 노력으로 쉽게 갈라서지도 못한다. 그래서 더 상처는 쌓여간다. 미워할 수 없어서. 그렇다고 용서할 수도 없어서.


차라리 말하지 않았다면. 차라리 들키지 않았다면. 그래서 차라리 자기가 모르게 했다면.  자신이 모른 채 있었다면. 김성수(이상우 분)나 송미경(김지수 분)이나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차라리 솔직한 나은진(한혜진 분)을 원망한다. 어찌하라는 말인가. 나은진은 솔직하게 털어놓고 마음의 짐을 덜었지만 이제 자기가 판단하지 않으면 안된다. 결론내리지 않으면 안된다.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끝낼 것인가. 


고통을 자기에게로 떠민다. 죄는 자신들이 지어놓고 책임을 자기에게로 떠넘기려 한다. 처음으로 자신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왔다. 송미경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이다. 지금껏 무엇하나 자기의 의지대로 이룬 것이 없는데 이제 자기의 의지로 남편과의 관계를 결론내려야 한다. 어떤 결론을 내리든 송미경에게는 고통만이 남을 뿐이다. 자신을 배반한 남편을 용서하고 함께 사는 것도, 그렇다고 남편과 영영 헤어져 남이 되는 것도, 무엇도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것들 뿐이다. 미쳐버릴 것 같다. 다 미쳐버렸으면 좋겠다.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다. 자기가 하찮게 여겨진다. 어리석고 한심하다. 얼마나 못났으면. 얼마나 남자로서 못났으면. 아니 여자로서 가치가 없었다면. 끊임없이 대상과 자신을 비교한다. 나은진을 좋게 보아서가 아니다. 자기의 남자의 모든 것을 빼앗은 나은진이 빛나 보여서였다. 자기에게 없는 모든 것이 그녀의 장점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랑받았구나. 그래서 남편이 그녀를 사랑했구나. 아예 유재학에게 묻기까지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시 김성수도 유재학(지진희 분)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본다. 그리고 스스로 상처입는다. 굴지의 기업을 경영하는 잘나가는 사업가, 거기다 외모도 잘생겼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내가 얼마나 못났기에. 그래서 더 나은진을 안고 싶다. 확인하고 싶다. 아직까지 나은진이 자기의 여자라는 것을. 우습지만 김성수는 절실하다. 차라리 함께 지옥을 겪자고 말한다. 자기가 이미 지옥에 있는데 나은진만을 놓아주지는 못한다.


하기는 그렇기 때문에 나은진이나 유재학이나 서로에 대해 솔직해질 수 없었던 것일 게다. 그저 사랑하는 것 뿐이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저 좋아서 함께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무에 다른 것들에 구애받을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남편이 있기에. 아내가 있기에.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도 그들은 남편이고 아내다. 구속이 된다. 미워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부부라는 관계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하다. 비극이다. 사랑해야 하는데 사랑할 수 없다는 것도, 사랑하지 않는데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도, 미워해야 하는데 미워할 수 없다는 것조차. 용서해야 하지만 용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경계에서 끊임없는 혼란속에 고통받게 된다.


그야말로 원죄일 것이다. 죄를 지은 것은 불륜을 저지른 당사자지만 고통받는 것은 주위의 모두다. 김성수와 나은진의 딸 김윤정(나채미 분)도 예외일 수 없다.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가 될 것이다. 송미경이 그러했다. 송미경의 동생 송민수(박서준 분)도 그 당사자였었다. 송민수와 나은진의 여동생 나은영(한그루 분)이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다. 누나의 남편과 불륜을 저지른 여자의 여동생과 언니가 불륜을 저지른 남자의 아내의 남동생. 자식의 불륜을 감당해야 하는 부모의 짐도 만만치 않다. 나은진을 향해 엄마 김나라(고두심 분)의 원망이 쏟아진다. 자식의 편이어야 할 엄마가 자식을 비난하게 된다. 


딸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사실 이해못할 일도 아닐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유따위 필요한가?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이다. 노력한다고 피해진다면 세상에 사랑으로 슬플 일도 아파할 일도 없다. 그러나 인정할 수 없다. 딸의 사정보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수치심이 더 크게 다가온다. 딸의 죄를 짊어지고 세상을 봐야 한다. 딸의 죄를 아는 세상과 마주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쩌면 김나라가 사랑한 것은 '딸'이 아닌 '자랑스러운' 딸이었던 것은 아닌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부모 역시 자식과만 살 수는 없다. 나은진은 솔직하게 털어놓고 후련해하지만 이제부터 그 짐은 주위 모두의 몫이 되고 마는 것이다.


수렁으로 빠져드는 과정이 보인다. 남김없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늪으로 빨려들 듯 죄의 수렁으로 빠져든다. 차라리 죄와 벌이 명확했다면. 그래서 엄격하게 정해진 벌로써 죄를 응징할 수 있었다면. 그것도 아니기에 찌꺼기처럼 앙금이 남아 주위를 빨아들이게 된다. 남자는 상대 남자에게, 여자는 상대 여자에게, 그 가족들이, 그 주위 사람들이. 불꺼진 방안에 혼자 누워 있는 동안에도 그렇게 모두는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독할 정도로 적나라하다.


차라리 죽이고 싶을 정도로 사랑했다. 간통과 관련한 가장 적나라한 역설일 것이다. 그냥 죄를 지었다. 따라서 벌을 받는다. 쿨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은가. 깔끔할 수 있다면 비극도 없다. 이도저도 아닌 미련과 정이 더 큰 비극을 낳는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섬뜩하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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