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따뜻한 말한마디 - 내일을 잃어버린, 옛이야기만이 남다

까칠부 2014. 1. 21. 06:42

치매가 진행되면 가까운 기억부터 사라진다고 한다. 그리고 먼 기억이 조금씩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렇게 하나하나 기억이 사라지고 자신마저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인간의 비극이다.


서러운 것이다. 더 이상 내일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은. 그래서 더욱 지난 일들이 떠오른다. 사느라 바쁠 때는, 내일을 위해 매일이 분주하던 동안에는 떠올릴 겨를조차 없었다. 그립고, 설레고, 후회된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미안하다. 바로 어제일 같다. 바로 조금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들이 자신을 스치고 지나간다.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그것은 어쩌면 그동안의 시간들을 정리하기 위한 의식과 같은 것일 터다. 오랜 짐들을 정리하듯 하나하나 기억을 정리하고 차곡차곡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개어 놓는다. 빛바랜 사진처럼 감정마저 퇴색된 채 오랜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이 아닌, 내일도 아닌, 어제의 이야기다. 헤어짐을 준비한다. 아마 필자가 김성수(이상우 분)의 입장이었다면 왈칵 눈물이라도 흘렸을 것 같다. 이제 자신들은 진짜 헤어지려 하고 있구나.


결국 김성수와 나은진(한혜진 분) 부부를 돌려세우는 것은 그동안의 다른 인연들이다. 김성수와 나은진 사이에서는 더 이상 내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지만, 그러나 자신들의 결혼으로 맺어진 또다른 관계에서는 내일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시어머니는 무릎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를 위해 한동안 자신의 집에 머물러야 한다. 장인장모 소유의 빌딩에서 일어난 문제로 내일 다시 그쪽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잠시나마 그들은 다시 예전의 모습을 연기하기로 한다. 내일에 대한 기약조차 없이 거짓된 지금에 갇히려 한다. 계기가 되어줄까? 어느새 그들은 조금씩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유재학(지진희 분)이 지키고자 하는 것도 결국은 자기 자신의 과거다. 그동안의 자신이다. 그것을 허물 생각이 없다. 어쩌면 송미경(김지수 분)이 바라는 것도 결국은 자신들의 내일이 아니었을까? 어떻게 하겠다. 어떤 식으로 바뀌고 어떤 모습으로 달라지게 될 것이다. 자신들의 내일은 오늘과는 또 다를 것이다. 희망이다. 그러나 과거만을 이야기한다. 좋았던 과거의 어느 순간만을 이야기하려 한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희망이 없다면 기대도 없다. 그것은 익숙함인 동시에 체념이고 절망이다. 다시는 그 오랜 기다림과 인내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역시 주위와의 관계가 두 사람을 붙잡는다. 조기유학간 두 아들이 있다. 송미경의 동생 송민수(박서준 분)를 유재학은 처남이라 부른다. 유재학의 어머니 추여사 역시 송미경에게는 시어머니가 된다. 추여사가 쓰러진다. 송미경이 달려간다. 그러나 추여사는 유재학과 송미경의 사이를 낱낱이 알고 있다. 굳이 시어머니를 속이기 위해 송미경이 오늘을 연기해야 할 필요가 없다. 송미경이 자신의 결심을 굽힐 수 있을 정도의 계기가 필요하다. 다만 송미경과 유재학 두 사람을 불러들일 명분은 될 수 있다. 마지막 기회다.


사실 논리란 비겁한 것이다. 진심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인다.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어떤 어려움을 무릅쓰더라도 이루려 한다. 지금껏 자신이 지켜오던 것이 무엇이든 얼마든지 그것과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 더구나 그것이 결코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이유를 만들게 된다. 자기를 합리화한다. 도련님이다. 온실속에서 자라났다.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것이 화가 난다. 마지막 순간에까지 유재학은 얼마나 비겁하고 비열한가.


송민수와 나은진이 나은영(한그루 분)의 가족에게 인사하는 자리에서 마주치기를 기대했었다. 매우 짓궂다. 여기서 두 사람의 관계가 더 깊어지고 사실이 밝혀졌을 때 그 뒷감당을 어찌 하려는지. 더 큰 비극으로 그리거나, 아니면 화해를 위한 계기로 삼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송민수와 나은영은 서로 사랑한다. 송미경과 나은진 역시 자신들의 동생인 두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송미경은 나은영에 대해서도 호감을 가지고 있다. 시청자가 모든 것을 알고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옛날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어느 순간 지금의 자신들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이야기하게 된 내일이란 서로 헤어지고 난 다음의 내일이다. 서로 남남이 되고 나서. 무덤덤하다. 그것이 또 김성수를 서럽게 만든다. 나은진은 스스로 체념하고 있다. 지쳐 있다. 사람에 대해. 사랑에 대해.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으로는 결코 치유할 수 없다. 어떻게 해도 치유되지 않는 상처가 자신들의 내일을 결정한다. 함께할 수 있는 내일은 없다.


차라리 싸우라. 악다구니하며 할퀴고 물어뜯으라. 싸우자는 거냐는 나은진의 말에 김성수는 한 발 물러선다. 싸울 수조차 없다. 자신들의 내일에 있어 서로는 전혀 상관없는 남남일 것이다. 무덤덤함이 슬프다. 아직은 감정이 남아 있다. 송미경의 목소리에 날이 서 있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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