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얼마나 비루하고 참혹한 일인가. 첫사랑과 헤어지고 아픔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어느새 현실의 무게가 그를 짓누른다. 병원에서 퇴원해 돌아온 여동생은 여전히 아프고, 여동생을 치료할 돈 10만원은 아예 기약조차 없다. 어느새 부쩍 어른이 되어버린 여동생의 원망에서 감당할 수 없는 절망과 자신을 향한 염려를 읽는다. 자신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10만원이면 당장 목숨도 내어줄 수 있다. 하기는 그보다 한참 못미치는 돈을 벌기 위해 신정태(아역 곽동연)는 도비노리를 뛴다. 목숨을 걸고 달리는 열차에 오르고 뛰어내린다. 자칫 한순간의 실수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이미 열차에서 뛰어내리다 목숨을 잃은 다른 도비꾼의 모습도 보았다. 그러나 그 알량한 돈을 위해 신정태는 필사적으로 도비노리를 배우고 연습한다. 마치 나라를 지키려 떠나는 군인마냥 첫도비노리를 뛰러 가는 그의 모습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고작 그 정도다. 신정태의 목숨값이란.
어른이 되려 한다. 성장을 위한 의식이다. 자격을 시험한다. 비로소 온전히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는 어른으로서 인정받는다. 모두의 염려와 보살핌을 받는 아이에서 한 사람 몫을 하는 도비꾼이 되었다. 그것이 하필 밀수나 하는 도비꾼인데다, 고작 그런 정도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차라리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고작 밀수꾼이 되려 필사적으로 배우고 연습하며, 목숨을 건 실전을 갖는다. 비장해서 차마 우습기조차 하다. 인간이란 이렇게 우스운 존재인가. 인간이란 이렇게 하찮은 존재인가.
같은 시간 가야(아역 주다영) 역시 자신의 가치와 존재를 인정받고자 필사적이 되어 있다. 도야마 아끼오(유현민 분)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단지 도구로써 사육되고 있을 뿐일 것이다. 그러나 그조차도 자신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녀에게 내일은 없다. 그녀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내일이 무엇이든 지금 그녀는 자신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야지만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킬 수 있는 기회를 가질 것이다. 잘 다듬어진 훌륭한 도구로 완성되어 일국회의 손발이 된다. 그녀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이다. 신정태가 그랬듯 그녀 역시 다른 선택이란 주어지지 않았다.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은 단지 듣기좋은 거짓말에 불과하다. 인간은 결코 스스로 존엄할 수 없다. 누군가 가치를 계량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인간의 존재란 타인에 종속된다. 아이는 어른에 의해 정의된다. 불곰(이철민 분)에 의해 어린시절부터 폭력배로 길들여진 도꾸(엄태구 분)처럼. 불곰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거두어졌다면 도꾸 역시 전혀 다른 지금의 자신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신이치(조동혁 분) 앞에서 개처럼 엎드리고, 돌아서서 바로 배신을 말하는 도꾸의 모습 어디에 인간의 존엄함이 보이던가. 협잡을 일삼고 타인을 불행에 빠뜨린다. 그러나 오모가리(오순태 분)의 말처럼 그것이 지금 도꾸의 본질이며 가치다. 최소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고작 그것이 자신의 최선이라는 것이 오히려 슬플 뿐이다.
누군가는 교복을 단정히 입고 학교에 다니며 내일의 꿈을 이야기한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될 것이라며 찾아서 공부도 하고 경험도 쌓아본다. 최소한 그것은 고작 돈 얼마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범죄자는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의 도구가 되어 사람을 죽여야 하는 자신 역시 아닐 것이다. 무언가 희망차다. 무언가 거창하기도 하다. 큰 사람이 되고 싶다.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누리고 싶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이 아니면 다른 선택은 없다. 동생을 치료해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모든 진실을 밝혀야 한다.
믿고 싶다. 신정태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것이 아니라고. 신정태는 자신의 원수가 아니라고. 그래서 증오를 곱씹는다. 잊지 않기 위해서. 그를 마음에서 놓아보내지 않기 위해서. 그러면서도 다잡는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겠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겠다. 자신마저 도구로 삼는다. 신정태에 대한 원망조차 수단으로 삼는다. 그래서 더 신정태는 그녀 가야를 위해서라도 진짜 범인을 잡아야 한다. 그녀가 비로소 자신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가야와 다시 만나기 위해서. 그것은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한 투쟁이다. 그래도 다시 찾고 싶은 가장 소중한 순간을 위해서. 그래서 인간은 존엄한 것일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많은 것들을 어린시절에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른이 되기 위해 불필요한 것들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꼭꼭 싸매어둔다. 어른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상흔처럼 기억에 남게 된다. 청아(이지우 분)가 일찌감치 어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병과 오빠 신정태에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짐 때문이었다. 오빠로써 동생을 지켜야만 했다. 첫사랑의 그녀를 위해 어른이 되어야 했다. 칼까지 맞는다.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난다. 어린 시절의 자신마저 다른 기억들과 함께 먼 저편에 남겨두고 온다.
첫사랑이 떠나고 깨어나니 동생마저 사라졌다. 폭풍처럼 어린시절이 지나간다. 어른이 된다. 차라리 서글프다. 성장이란 지독한 아픔을 동반한다. 가야 역시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을 신정태와 함께 불태우고 있었다. 스스로 자신을 죽이고 전혀 다른 가야가 된다. 전혀 다른 가야가 되어야만 했다. 두려움과 불안 속에. 다짐으로 자신을 속이며. 누군가의 말처럼 어른이 되는 척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을 여전히 부여잡고 있는 것은 먼 과거의 기억들이다. 마침내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이기도 하다. 돌아갈 기약조차 없다.
비로소 김현중(신정태 역)에게서 사람냄새가 나려는 것 같다. 때에 전 땀이 어울린다. 그다지 멋을 부리지 않은 차림이 오히려 멋지다. 전형적이지만 효과적인 등장이었다. 아이이던 시절은 끝나고 어느새 그들은 어른이 되었다. 한순간에 그들은 어른이 되어 있었다. 가야와 그리고 신정태. 연기력이 아쉬웠다. 반면 존재감은 탁월했다. 때로 어떤 배우들은 그 존재 자체로 작품이 되기도 한다. 너무 짧다. 그러나 기대해 본다. 놀랄만한 성장을 볼 수 있을까?
프롤로그가 끝났다. 어린 시절은 그렇게 지났다. 원치 않는 어른이 되어 원치 않는 삶을 살아간다. 그것이 원래의 자신의 삶이 된다. 도비꾼이 되고, 일국회의 후계자가 된다. 그에 충실하다. 조직을 위해 기꺼이 나서서 폭력을 휘두른다. 잔혹함은 처절함이다. 어른이 되어 그들은 다시 만난다. 엇갈린 운명과 시련을 등에 짊어진 채. 그들이 다가온다.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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