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운명은 항상 사람을 시험한다. 자격을 묻는다. 얼마나 간절한가. 얼마나 진실한가. 희생해야 한다. 고통을 견뎌야 한다. 그를 위해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바로 진심의 무게가 된다.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얼마나 지독한 고통을 견뎌야 하는가.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굳은 결심과 의지가 마침내 그에게 자격을 허락한다. 사랑해도 좋다. 마음껏 사랑해도 좋다.
운명은 때로 우연이라는 이름을 빌기도 한다. 하필 신정태(아역 곽동연)가 가야(아역 주다영)를 집으로 바래다주던 그날 신정태의 아버지 신영출(최재성 분)은 가야의 아버지 데구치 신죠(최철호 분)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데구치 신죠가 신영출을 만나러 가려는 순간 일국회에서 보낸 자객 아카(최지호 분)가 그를 막아서고 있었다. 아카가 신죠를 죽이고, 아카가 떠나고 신영출이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은 신죠를 찾아 그의 집으로 들어서고, 신영출이 신죠의 부탁을 들어 그의 목숨을 거둘 때 신정태와 가야가 도착한다. 오해가 시작된다. 신영출이 가야의 아버지 신죠를 죽였다. 신영출과 신정태는 곧 가야의 원수다.
차라리 죽이고 싶을 만큼 사랑한다. 인지의 부조화일 것이다. 신정태를 사랑한다. 그러나 신정태의 아버지 신영출이 자신의 아버지 신죠를 죽였다. 신영출은 아버지의 원수다. 신정태는 원수의 아들이다. 그러니 더 이상 사랑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아무 관계도 아닌 남이 되어버리는 것은 더 싫다. 눈앞에서 신정태가 죽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도 없다. 사랑해서는 안된다면 차라리 원수로라도 그를 붙잡으려 한다. 언젠가 자신이 원수를 갚는 그날까지. 기약할 수도 없느 그날까지 그는 살아있어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자신과 닿아 있어야 한다.
그렇게 시험은 시작된다. 시련은 시작된다. 사랑하지만 원수의 자식이다. 원수의 자식이지만 여전히 그를 마음에서 놓아보내지 못하고 있다. 오해를 풀어야 한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 가야의 아버지를 죽인 진짜 범인을 잡아 가야의 앞에 데려가야 한다. 오해만 풀린다면 두 사람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비로소 그때에야 두 사람은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신정태의 아버지 신영출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신정태에 대한 미련은 자신의 결심을 흔들어놓는 불순물과도 같다. 정리해야 한다. 증오로 바뀐 사랑과도 싸우며 신정태는 비틀린 운명을 바로잡기 위한 싸움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신정태 자신과 오해로 인해 원하지 않는 길을 가고 있는 가야를 위해. 맨몸 맺주먹으로.
김옥련(아역 지우)에게도 시련은 있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신정태 자신이 김옥련에게는 시련이고 시험이다. 신정태를 사랑한다. 그것은 진심이다. 진심을 넘어선 진실이다. 오로지 신정태만을 바라본다. 돈을 훔치고, 코피가 터지고, 보이고 싶지 않은 질투하는 못된 모습까지 보여가며. 온몸으로 온힘을 다해 부딪힌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보려 하는 신정태에게. 그녀의 진심은 과연 신정태의 마음을 돌려세울 수 있을까. 포기하거나, 신정태의 마음을 얻거나, 아니면... 비극은 그다지 취향이 아니다. 행복해지는 것을 보고 싶다.
눈앞에서 도비노리를 하던 도비꾼이 떨어져죽는 것을 보았다. 한순간이었다. 뛰어내리는 것을 망설인 그 아주 짧은 찰라의 시간이 삶과 죽음을 갈라놓았다. 살아있던 사람이 한낱 고깃덩이가 되어 철길가를 뒹군다. 죽은 이에 대한 애도같은 것도 없었다. 품을 뒤져 받기로 한 물건들을 찾아낸다. 원래 죽은 이에게 돌았어야 할 몫까지 챙기게 된 것을 기뻐한다. 한바탕의 주먹다짐 끝에 신정태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나마 친구인 짱돌(아역 김동희)는 자신을 위해 울어주겠지. 죽은 도비꾼을 묻고 신정태는 홀로 열차에 뛰어오르기 위해 달린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 죽음보다도 더 간절한 무엇이 그를 그럼에도 열차에 뛰어오르도록 만든다.
처절하다. 아니 시리다. 그러고 보면 신정태와 원수가 된 불패의 독구(엄태구 분)의 사연 역시 마음이 무거워지기는 다르지 않다. 매춘부인 어머니에게서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태어났다. 그나마 몸을 팔던 어머니는 그가 다섯살 때 성병에 걸려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다섯살이다. 제대로 된 보육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아를 위한 제도나 장치가 갖춰져 있던 시대도 아니다. 어른의 보살핌 없이 고작 다섯살의 나이에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악만 남았을 것이다. 선악의 구분도 없이 그저 세상과 부딪혀야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살아남았다. 여동생의 수술비를 위해 목숨을 걸고 열차에 뛰어오르는 신정태와 마찬가지로 그 또한 살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온몸으로 부딪혀 왔을 것이다. 지면 안된다. 지면 끝이다. 자신조차 차마 돌아보기 싫은 자신의 이야기에 독구는 눈물을 흘린다.
차라리 가야와의 운명적인 사랑보다 이쪽이 더 마음이 끌린다. 희망이 없던 시대. 내일을 기약할 수 없었던 그런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절실함과 절박함. 목숨을 걸어야 했고 양심을 내던져야 했다. 아니 양심이 무언가조차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거래하기로 한 도비꾼의 죽음을 듣고서도 도비패들은 술잔을 기울인다.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른다. 감정이 마모되어간다. 마음이 부서져간다. 체념해 버린다. 죽은 도비꾼에게서 돈과 물건을 챙기던 깝새(누엘 분)가 괭이를 둘고 도비꾼을 묻으러 나타나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모두가 아직은 마음에 선량함이 남아 있다. 단지 그것을 드러내보일 여유가 없었을 뿐.
독기를 머금고 살아간다. 신정태도, 독구도, 도비패도 마찬가지다. 독해야 산다. 독하게 죽기살기로 덤벼야 겨우 살아갈 수 있다. 너무 쉽게 죽음을 입에 담는다. 죽는 것도 너무 쉽다. 사는 것이 어렵다. 슬퍼서 잔인하고 아파서 지독해진다. 그나마 낭만적이다. 먹고 살기 위해 여자들도 몸을 판다. 김옥련이 머무는 곳이 기생집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공중파 드라마로서 부적절할 수 있다. 그것을 이용하는 자들이 있다. 그래봐야 그들은 약자다. 아무것도 없다.
과제가 주어졌다. 운명이 그에게 시련을 던져주었다. 목표가 생겼다. 당장은 동생을 치료해야 한다. 살아남을 것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주인공이기에 누리는 특권일 것이다. 그에게 자격을 물을 것이다. 그에게 가장 간절한 것을,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을 묻게 될 것이다. 그는 대답해야 한다.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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