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감격시대 - 운명이라는 유산, 아버지의 이름으로 불리다

까칠부 2014. 2. 14. 07:01

어른이란 잔인하다. 단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에게 짐을 지운다. 자기가 하지도 않은 행위를 단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물려받게 된다. 아버지의 아들이고 어머니의 딸이다. 자신의 이름보다 부모의 이름으로 더 쉽게 불린다. 자신인 거부하려 해도 주위가 내버려두지 않는다.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자신의 삶이 결정된다.


얼굴도 몇 번 보지 못한 아버지였다. 어려서 가족을 떠났고 그리워 할 틈도 없이 힘겨운 삶을 견뎌내야 했다. 어머니는 고생만 하시다 홀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동생을 버릴 뻔했고, 병을 앓던 동생은 끝내 행방조차 알 수 없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동안 아버지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심지어 아버지로 인해 첫사랑인 가야(임수향 분)와도 틀어지고 말았다. 그리움조차 어느새 원망으로 바뀌고 만다. 원망조차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을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러준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낯선 곳에서 처음 본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아버지를 기억한다. 기억할 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차라리 생면부지의 소소가 진짜 아버지의 자식처럼 여겨진다. 자신이 아버지를 간절히 그리고 있을 때 그보다 더 절실하게 아버지를 필요로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있어야 할 곳이었다. 자식인 자신과 가족의 곁이 아닌 그곳이 아버지의 자리였다. 심술이었다. 가족이기에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분노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기대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남겨준 유산으로 인해 신정태(김현중 분)는 가야와 원수가 되고 말았다. 신정태의 아버지 신영출(최재성 분)에 의해 가야는 신정태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되어야만 했다. 어머니의 유산이 가야의 발목을 잡는다. 어머니가 그러했듯 어머니의 출생이 그녀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한다. 그녀의 의지란 어디에도 없다. 어머니가 죽었고 아버지가 죽었다. 그 비밀을 밝혀야 하고 원한을 갚아야 한다. 어느새 자신도 그런 현실에 익숙해진다. 어디까지가 복수를 위한 과정이고 어디까지가 그녀가 선택한 진심인지. 먼 이국땅 낯선 장소에서 만난 두 사람은 차라리 모르는 사이보다 더 서먹하다. 여전히 두 사람의 진심은 서로를 향하고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두 사람을 그렇게 멀어지게 했을까.


하지만 그보다 더 고약한 것은 어느새 그같은 현실에 익숙해지고 마는 인간의 적응력일 것이다. 납득하고 만다. 방삼통은 아버지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방삼통에 있어야만 했다. 신정태가 더 반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혼란스러워하는 이유다. 개인으로서의 자신의 이성과 양심은 아버지가 옳았다 말한다. 그러나 가족으로서의 자신의 감정은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에게서 아버지를 발견하고, 자신에게서 아버지를 기대하고, 자신에게서 아버지를 요구하는 모두에게 반발하면서도 어느새 조금씩 납득해가고 있다. 가야가 훌륭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자기라 사람을 만든다. 상황이 역할을 만든다. 지나칠 정도로 성실한 두 사람이다.


알지도 못하는 아버지의 유산이 신정태를 구속한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어느새 아버지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찾아온 신정태에게 운명은 아버지의 뒤를 이으라 말한다. 쉽지 않은 길이다. 아마 아버지 신영출이었다면 자식이 그와 같이 험한 길을 가려는 것을 말리려 했을 것이다. 신정태를 제거하려던 정재화(김성오 분)의 태도가 바뀐 것도 어쩌면 그와 관계있지 않았을까. 너무 상투적이지만 신정태가 싸우는 모습에서 아버지 신영출을 보았다. 정재화에게 필요한 것은 외롭고 불안한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었다. 신영출의 부재가 정재화의 동요를 불러왔다.


나라를 잃은 백성들이 먼 이국땅을 떠돌고 있다. 지켜 줄 이 하나 없이. 의지할 데 하나 없이. 그렇게 흘러흘러 상하이까지 이르렀다. 상하이를 나누고 있는 여러 세력들 가운데 황방에 기대어 아주 작은 짜투리땅을 하나 얻었다. 동정에 기대야 하고 인정에 호소해야 한다. 상해 임시정부 역시 그렇게 국민당 정부의 호의에 힘입어 힘겨운 독립투쟁을 이어갈 수 있었다. 가진 것은 몸뚱이 하나, 믿을 것도 주먹 하나, 이제는 죽은 상하이의 매 신영출의 아들에게 기대려 한다. 늙고 쪼그라든 모습들이 당시의 조선의 백성들의 처지를 말해주는 듯하다. 고작 몇 푼의 돈을 신정태에게 쥐어주는 것밖에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작가가 바뀌었다더니 설정에 변화가 있다. 김수옥이 사라졌다. 상하이에서 인기가수가 되어 있어야 할 김옥련(진세연 분)은 여느 조선인 처녀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고향을 떠나 먼 상하이에서 어렸을 적 첫사랑을 만난다. 고단한 삶 가운데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첫사랑과 마주하게 된다. 더 간절해졌을까? 드라마가 단순해진다. 극적인 부분은 이제 상하이를 둘러싼 조직들의 암투와 신정태와 가야의 악연에 집중된다. 인기스타의 화려함도, 그로 인한 갈등 역시, 평범하게 사랑한다. 그만큼 더 진실하게 사랑한다. 결국 앞으로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가 남겨진 숙제일 것이다. 드라마는 재미있어야 한다.


선택의 기로에 있다. 아니 이미 오래전에 신정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정되어 있었다. 신정태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그 순간에 이미.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에 대한 상속의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아버지의 영광과 명예, 그리고 아버지가 져야 했던 짐들에 대해.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다. 숙명이라 부른다. 잔인하다. 시련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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