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정도전 - 정치의 이유, 이성계 정도전의 손을 잡다

까칠부 2014. 4. 14. 07:13

어쩌면 사람들이 정치를 혐오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는 이유일 것이다.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 시끄럽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조용한 것이 좋다. 편한 것이 좋다. 정치란 불편하고 불쾌한 것이다. 정치와 정치인이란 어느 사회에서나 비토와 조롱의 대상이 되고는 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사람들은 그같은 불편하고 불필요한 정치를 하게 되는 것일까?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하게 이미 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를 부정하고 외면한다. 무관심하며 심지어 적대한다. 그조차 결국 정치다. 정치란 삶이다.


"힘없는 백성들이 기댈 곳은 미우나 고우나 정치 뿐입니다."


권문세족이 농민의 땅을 빼앗아 자신의 장원을 넓히려 한다. 농민은 권문세족의 탐욕으로부터 자신의 땅을 지키고자 한다. 자기 소유의 재산을 지키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자신의 신분과 실력에 어울리는 재산을 소유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당연한 욕망이기도 하다. 때로 인간은 빼앗는 자의 편에 서기도 하고 지키는 자의 편에 서기도 한다. 오랜세월 고려에서 상식은 빼앗는 자의 편에 있었다.


이인임(박영규 분)의 고려에서 권문세족이 농민의 땅을 빼앗아 가지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조민수(김주영 분)의 고려에서도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면 그에 어울리는 재산을 얼마든지 소유할 수 있었다. 자신들이 빼앗는 입장인 권문세족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를 거부하거나 저항하는 자가 나온다면 국가가 나서서 단호하게 응징할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성계(유동근 분)가 권력의 중심에 다가가려 하니 기존의 상식을 뒤엎으려는 무리들이 나타나게 된다. 권문세족으로부터 땅을 빼앗아 농민들에게 돌려준다. 그를 위해 거꾸로 권력을 가지고자 하는 의지가 더욱 강해진다.


인간에게는 저마다 다른 수많은 이해와 가치가 존재한다. 어느 것이 내게 이익이 된다면 어느 것은 내게 손해가 된다. 내가 간절히 지키고자 하는 그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부수어야 하는 불온하고 불순한 것일 수도 있다. 전쟁 역시 결국 정치의 한 수단이다. 그래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과 반드시 관철해야 할 것들을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반대자들을 제거하거나 힘으로 억누른다. 그럴 수 있는 힘과 위치를 달리 권력이라 부른다. 정치란 그것을 가지기 위한 싸움이다. 자신의 정의를 현실에 구현하기 위한 투쟁인 것이다.


"이 고통을 끝장낼 수 있는 것은 고통 한가운데 들어가 싸우는 것 뿐입니다!"


정치의 이유와 목적에 대한 가장 간명하고 직절적인 정의일 것이다. 인간사회에서 대립과 갈등은 차라리 원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고통이란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욕망을 억압하는 것은 충돌하는 또다른 인간의 욕망이다. 인간이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한다면 마땅히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고 침범하는 다른 욕망과 맞서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그로부터 자신의 욕망을 해방시킴으로써만이 진정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누구도 죽이지 않고 누구도 다치지 않는 이상적인 현실을 바란다면 그를 위해서라도 그에 반대하는 이들과 맞서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피를 보지 않기 위해 손에 피를 묻혀야 한다. 예고편에서 이인임이 말하던 '괴물'의 정체가 바로 그것일 터다.


반드시 지키고 싶고 이루고 싶은 욕망이 있어 싸움을 시작했는데 정작 그 싸움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다. 숭고한 이상도 있고 원대한 포부도 있었는데 싸움이 계속되는 사이 싸움에서 이기는 것 자체가 자신의 모든 것이 되어 버렸다. 권력을 쥐기까지는 이런저런 많은 궁리와 목표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을 쥐는 순간 권력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다.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도전(조재현 분)의 모습이 그의 비극적 결말을 예고하는 복선이지 않을까. 결국 서로 간절히 지키고자 했던 그것을 위해 이성계는 최영(서인석 분)을 공격했고, 정몽주(임호 분) 역시 장차 이성계와 정도전을 죽이려 한다. 정몽주 역시 그를 아저씨라 부르던 이방원(안재모 분)에게 목숨을 잃는다.


오만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될 것이라 생각했다. 자기가 하고자 한다면 모두가 그에 따라줄 것이라 생각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자기가 그르다고 생각하는 그것에 모두가 그르다고 동의해 줄 것이라고. 그런데 아니었다. 조민수에게는 조민수의 입장이 있었다. 이색(박지일 분)에게는 이색 나름의 주장이 있었다. 근비와 창왕의 입장도 아주 이해 못할 것이 아니다. 자신을 싫어한다. 싫어할 뿐만 아니라 거부하려 한다. 그래서 토라졌다. 자기가 생각한 이상적인 정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정치따위 못해먹겠다. 정치란 더러운 것이니 신경쓰지 않겠다. 비단 이성계만일까?


역시 거만이었을 것이다. 이인임만 물러나면 다 잘 될 것이다. 이인임만 몰아내고 나면 모든 것이 알아서 잘 풀릴 것이다. 시행착오가 있다. 당연히 실수도 있고 잘못도 있다. 그렇다면 이색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최영을 막았어야 했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막을 수 있다면 끝까지 막으려 시도했어야 했다. 자기가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흘러가니 차라리 과거로 회귀하려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는 이런 문제도 없었다. 이인임에게 모든 것을 맡겨놓았으면 지금과 같은 문제들도 없었을 것이다. 부정과 비리를 단지 안정을 위한 댓가로 여긴다. 조금 피해입고 희생당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쪽이 훨씬 모두를 위해서도 낫다. 이성계와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흔히 발견하게 되는 모습들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져가며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무언가를 위해 싸우려 한다. 지키고자 하는 무언가를 위해, 반드시 쟁취하고 싶은 그 어떤 것을 위해, 그래서 바보가 되고 미친놈이 된다. 스스로 세상의 상식을 거스르는 반역자가 되어 버린다. 그런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것이 곧 시대정신이었다. 왕을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왕조를 바꾼다. 아예 나라 자체를 바꿔 버린다. 그 이상에 동조하는 이들이 그렇게 많았다. 그것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이성계 역시 인정한다.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세상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직접 자신의 손으로 거머쥐는 것이란 것을. 이인임의 유배지를 찾아간다. 더 이상 자신의 손이 더러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다. 이성계 역시 기꺼이 진흙탕같은 싸움에 뛰어든다.


정치란 무엇인가. 결국 투쟁이다. 싸우는 것이다. 지켜야만 하는 것을 위해. 반드시 이루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 아무것도 없다면 싸울 이유도 없다. 하지만 간절하고 절실한 만큼 싸움은 더욱 지독해질 수밖에 없다. 전쟁은 차라리 낫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 동원된다. 인정에 호소하고, 이익으로 유인하고, 음모로써 속이며, 믿음으로 배신한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 욕망이든 이상이든 승자만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조준이 트로이의 목마가 되었다. 뇌물까지 바치며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결정적인 순간 조민수를 궁지로 내몬다. 조준이 조민수를 탄핵하여 실각시킨 것은 역사적 사건이다. 조민수의 권력기반은 아직 미약했다. 조민수가 이인임을 필요로 했던 이유였다. 정도전이 계획한 회심의 반격이었다. 계민수전의 이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마침내 정도전이 내민 손을 이성계가 잡는다. 백성을 위하겠다. 야심인가. 이상인가. 조민수의 짧은 천하가 이렇게 끝이 난다. 이성계가 일어서려 한다.


이색이란 고려였다. 존경하는 스승이었지만 정도전에게 그 어리석음으로 인해 더 이상 존경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스승에 대한 의리와 이인임을 복귀시켜서는 안된다는 대의. 정몽주는 그조차 조화시키고자 했었고 정도전은 기꺼이 하나를 버리려 했었다. 정몽주와 정도전의 입장이 더욱 선명하게 대비된다. 정몽주의 밝음이 이성계를 이끌지만 결국 이성계가 도달하게 되는 것은 정도전의 어둠이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미래를 건설한다. 정도전은 부수는 자이며 이성계는 새로 쌓아올리는 자다. 정몽주는 이상을 꿈꾸는 자다.


조선건국의 이상을 밝힌다. 고려의 종말을 고한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임금, 새로운 이상, 새로운 법과 제도, 궁극적으로 모든 백성이 자기 땅을 가지고 굶주리지 않으며 살 수 있는. 그를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고자 한다. 괴물에 잡아먹히지는 않을까. 어둠이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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