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신의 선물 - 마침내 드러난 배후, 그러나 미진함이 남다

까칠부 2014. 4. 16. 10:43

그러고보면 아귀가 들어맞는다. 청와대였다면 굳이 경찰을 매수하거나 협박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검찰이 청와대보다 경찰의 정보에 접근하기도 더 유리하다. 높기는 청와대가 더 높을지 몰라도 가깝기는 청와대보다 검찰이다. 무엇보다 이명한(주진모 분) 자신이 악역에 더 어울린다. 등장인물을 아무렇게나 늘어놓고 범인을 한 사람 짚으라 말하면 아마 거의 이 사람을 지목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검찰로서도 상당한 위치에까지 올랐고, 지금은 나름대로 실세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 비서실장의 자리에 있다. 하지만 검찰이든 대통령 비서실장이든 공식적으로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현우진(정겨운 분)이야 약점을 잡아 협박해서 이용했고, 다른 경찰은 그래도 전직 고위검찰로써, 혹은 현직 비서실장으로써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 다른 댓가를 약속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사건의 배후가 동원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런 정도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무엇보다 전직시장이며 대기업 명예회장이 그를 두려워하여 진실을 밝히기를 꺼리고 있었다.


아마 한국인이 가지는 막연한 기대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한국 공직사회에 대한 일반의 뿌리깊은 불신이기도 할 것이다. 검찰이든 대통령 비서실장이든 공무원으로서 일정한 지위에만 오르면 돈이든 사람이든 얼마든지 동원하여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최근 방영을 시작한 KBS의 수목드라마 '골든크로스'에서도 주인공 강도윤은 당당하게 잘먹고 잘살기 위해 검찰이 되었다 말하고 있기도 했었다. 이명한 쯤 되면 그렇게 사건을 키우고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위치가 될 것이다. 차라리 추병우가 배후였다면 납득하기가 더 쉬웠으련만. 대통령이었다면 더 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납득하기 어렵지는 않다. 우습다.


아무튼 한지훈(김태우 분)이 굳이 기동호(정은표 분) 사건을 재수사하겠다며 이명한을 협박하려 한 것부터가 모순이었다. 하다못해 기동호를 직접 찾아간 정황조차 없었다. 당시 기동호가 진범으로 유죄판결까지 받은 데에는 기동호 자신의 증언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기동호가 자신의 자백을 번복해야 비로소 재수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기동호를 찾아가고, 당시 기동호의 범행을 증언했던 기동찬(조승우 분)을 찾아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그것도 현직에서 물러난 전직검사에게 재수사를 요구하며 협박까지 하고 있었다. 검찰을 움직일 수 없다면 여론도 있었다. 그는 인권변호사로서 사회적으로 유명인이었다.


하기는 한지훈이 기동호 사건을 재수사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 자체가 김수현(이보영 분)이 차봉섭의 집에서 찾아낸 당시 사건의 피해자들의 것으로 보이는 장신구들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어주고 있었다. 고작 두 글자 이니셜만으로 그 장신구들이 10년 전 사건의 피해자들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야 중간과정이 생략되었을 뿐이라 어떻게 납득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나 과연 시간을 거슬러오기 전 과거의 사건에서 차봉섭은 아직 연쇄살인의 용의자도 아니었고 김수현 역시 그의 집에서 피해자의 것으로 보이는 장신구들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전의 사건에서는 한지훈은 무엇을 계기로 기동호 사건을 재수사하려 결심했고, 어떤 증거들로 이명한을 협박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 처음부터 거래할 수단이 전혀 없어 그는 샛별의 죽음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던 것이었을까.


현재의 시간이 겹치며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다. 사건의 발단이 다르고 전개가 다르다. 그러나 결과가 같다. 그런 모순들이 중복되며 어느새 과거와 현재 - 정확히 과거의 현재와 지금의 현재가 온통 뒤엉켜버리고 만다. 시간을 거슬러 미래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것을 근거로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차봉섭을 찾아낼 수 있었다. 차봉섭의 집을 뒤져 모래시계에서 피해자의 것으로 보이는 장신구들을 찾아낸 것은 우연이었다. 그런데 그 우연이 원래 있지도 않았을 시간을 거스르기 전의 사건에서도 필연적인 동기로써 작용하고 있었다. 지금의 시간에서는 그것들이 충분한 개연성을 갖지만, 그러나 드라마에서 또하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이전의 시간들이었다. 결국 이전의 시간들에서 있었던 사건들은 철저히 의문에 묻히고 만다. 이전의 시간에서도 발견된 샛별의 물건들은 한지훈이 일부러 묻어두었던 것일까.


그러고 보면 샛별이 청와대를 상징하는 봉황의 문양을 알고 있었다는 것부터가 이명한이 청와대의 인력과 조직을 샛별을 납치하는데 동원했다는 정황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무능하다고 청와대가 비서실장 개인의 용도로, 그것도 범죄를 저지르는데 이용되고 있는데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대통령제를 비판하는 것일까. 대통령중심제로서 대통령의 권한이 지나치게 강하고, 따라서 대통령의 측근이며 지인이기도 한 비서실장의 전횡을 견제하거나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납득이 간다. 바지사장인 대통령과 배후의 실세인 비서실장이란. 어찌되었거나 대통령의 의지는 아닐지라도 청와대가 개입했다. 아니면 그조차 또 하나의 트릭이거나. 숨겨진 반전이 아직 남아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는 그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사건을 거스르고 거슬러 마침내 감추어진 진실에 이르고 만다. 모든 배후에 이명한이 있었다. 이명한이 샛별을 납치했고 기동호의 재수사를 막고 사형대에 올려세웠다. 그리고 모든 진실을 알았을 때 기동찬과 김수현은 잔인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만다. 김수현의 딸 샛별을 살리려면 기동찬의 형 기동호가 죽어야 한다. 형 기동호를 살리려면 딸 샛별이 죽어야 한다. 둘 중 하나만을 살릴 수 있다. 딸을 살리려는 어머니의 간절함과 자신이 잘못으로 죄인이 되어 있는 형에 대한 안타까움이 서로 충돌한다. 같은 원인과 같은 적을 놓아두고서도.


아직 감춰진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건의 진실은 매우 단순하다. 추병우의 측근에 있던 범인 황경수는 원래 추병우의 아들을 포함한 친구들이 어디 놀러갈 때 운전기사 노릇을 해주고 있었다. 당시 무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에서 어떤 이유로 살인사건을 저질렀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이명한과 한 편이 되었다. 다만 문제라면 한지훈이 검사가 되어 처음으로 맡은 사건이 당시 무진연쇄살인사건이었는데, 그러나 황경수 역시 한지훈이 담당한 사건의 피해자 가족이었다.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역시 이명한이 그토록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이유와 관련이 있을까. 이명한만으로는 아무래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대충 정리된 것 같지만 아직도 찜찜한 것이 남아 있다. 시원하지가 않다. 무언가 엇갈린 듯 답답하기만 하다. 아직 다 풀어내지 못한 탓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 방법이 그다지 능숙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바로 직전까지 숨막힐 듯한 긴장으로 저릿저릿하던 것과는 다르다. 풀리지 않은 피로처럼 무겁고 나른하기만 하다. 무력감이기도 할 것이다.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것저것 어수선하다. 복잡하게 서로 얽히고 있다. 유기적인 것과 산만한 것은 다르다. 놀라는 것도 반복되면 지겨워진다. 반전은 흥미롭지만 그러나 지친다. 충분한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힘을 모으고 있는 중이라 믿어본다. 마무리에 들어간 듯 흐름이 빨라진다. 마지막 고비를 남겨둔다. 김수현과 기동찬 그들의 선택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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