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세월호 침몰, 정치혐오의 이유...

까칠부 2014. 5. 1. 02:19

전근대사회에서 정치란 곧 권력이었다. 왕궁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든 그것과 백성과는 전혀 별개였다. 그래도 백성들을 위해 무언가 해보려 했던 동아시아의 위정자들은 그런 점에서 인정할만하다 할 것이다. 그조차도 백성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권력자의 의도에 의해 모든 것은 이루어졌다.

 

그러면 정치란 과연 개인의 삶과 전혀 무관한가. 당장 조선중기 대동법의 시행을 두고 이루어진 무려 백여년에 걸친 논쟁은 백성들 자신의 삶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상업을 중시할 것인가. 농업을 중시할 것인가. 직접 농사를 짓는 농민과 토지를 소유한 지주 가운데 누구를 우선할 것인가. 단지 전근대사회에서 백성이 그같은 정치적 논의에 참여할 방법이 아예 차단되어 있었을 뿐이다.

 

어째서 세월호의 침몰이 정치적 문제인가. 선박의 연령에 대한 규제가 있었다. 선박운행의 안전에 대한 기준과 그에 따른 행정절차들이 있었다. 비숙련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가 있다. 불안한 고용조건에 재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열악한 근무환경은 노동자가 스스로 자신의 업무에 대한 자부심이나 자발적 열정을 갖는 자체를 제한해 놓고 있었다. 당장 오늘 잘릴지 모르고, 무언가 의견을 말해도 아예 들은 척도 않을 텐데, 그로 인해 해고의 위혐이나 받는데 그런데도 자긍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잘리지 않을 만큼만 일하면 그만이다.

 

규제는 암이나. 기업은 이윤을 얻어야 한다. 기업이 이윤을 얻는데 저해되는 모든 것들을 치워준다. 노동자는 단지 기업이 이윤을 얻는데 필요한 수단에 불과하다. 자긍심도 자부심도 자발적 노력도 필요없다. 최소한의 임금과 최소한의 대우만 받으며 필요한 일만을 해주면 그만이다. 회사와 모든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용자에게 감히 겉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국민들 스스로 동의한 바다. 그래서 국민들 스스로 이번 세월호 침몰에 대해 범인잡기에 골몰해 있다. 나는 책임이 없다.

 

근본적으로 해결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잘못한 몇몇만 잡아 책임을 묻자고 말한다. 단지 그들 일부만의 잘못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보다는 보다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구조란 권력이다. 정치다. 지금의 법과 제도, 문화, 관행, 무엇보다 그것을 이루는 근본적인 무엇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여긴다. 그 대상이 정부가 된다. 그래서 과연 그것이 부당한가.

 

죽은 이들을 이용하려 한다. 죽은 이들과 정치는 무관하다. 죽은 이들과 정치적 구호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아직 우리는 백성이다. 정치는 우리들 자신과 전혀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들이 어떻게 그런 불행한 사고를 당했고, 그런 끔찍한 사고의 현장에 있어야 했는가.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자신이 믿었던 가치, 자신이 추구해왔던 정의가 어쩌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 그저 몇몇 개인들만의 잘못이다. 그래서 말한다.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지 말라.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주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일관된 지향과 관계가 있다. 그들이 논의하고 주장해 온 연장선상에서 그것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려는 것 뿐이다. 그것을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한 실질적인 힘을 획득하는 것 또한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다. 그것이 곧 정치다. 만일 그 주장하는 바가 타당하다면 그들이 바라는대로 하고자 하는대로 이룰 수 있는 힘을 빌려준다. 아니라면 당연히 그 힘을 빼앗는다. 그러라고 주장도 하고 행동에도 나서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예 그 자체를 하지 말라. 오로지 특별한 특정한 누군가만이 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그 이외에는 아예 말도 꺼내서는 안된다. 흥미로울 따름이다. 정치를 포기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란 곧 자신의 삶 그 자체다. 추리닝바람에 슬리퍼 질질 끌고 나가 동네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과정에도 정치란 깃들어 있다. 그것이 정치라 여기면 그 자체로 정치가 된다. 이런 큰 사고가 일어났는데.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데. 그런데 그에 대한 정치적인 논의가 없다는 것은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없다. 단지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이제는 아예 실망조차 없다. 한국인에게 정치란 너무 낯설다. 스스로가 정치적 존재이며 정치의 주체라는 사실이 너무 어색하다. 배운 적도 없고, 가르쳐 준 적도 없다. 경험한 적은 더욱 없다. 현실의 한계다.

 

진지하게 논의를 해보아야 한다. 토론도 하고 때로 싸움도 해보아야 한다.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그에 대한 해법은 무엇인가. 각자 이유가 다르고 답도 역시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를 한다. 그것을 조율한다. 대화하고 타협하고 갈등하고 경쟁하며 투쟁 끝에 보다 나은 답을 찾아간다. 느리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시끄럽더라도 그것이 결국 모두가 나아가는 방법이다. 진보하고 진화해간다. 멈추지 않는다.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