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개과천선 - 마치 타인처럼, 김석주 아닌 김석주를 쫓다

까칠부 2014. 5. 9. 07:22

이를테면 드라마의 리뷰를 쓰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런 의도일까? 저런 의도였을까? 어떤 내용일까? 어떻게 풀어가고 어떻게 결론지을 것인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작가의 머릿속을 헤집고 앞으로의 행동까지 예측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나와는 참 많이 다르구나.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기도 하다. 낯설고 놀랍고 당황스러운 그것이 곧 드라마의 재미인 탓이다. 배반당하고 농락당하면서 변태적인 쾌감을 느낀다. 그런데 만일 그것이 나 자신의 일이라면 어떻겠는가?


아마 제목 그대로 주인공 김석주(김명민 분)가 '개과천선'하게 되는 계기이며 과정이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 문득 지금까지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당연하게만 여겨왔던 일상들이 어색하고 부대낀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불편하기까지 하다.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의 너무나 흔한 시작일 것이다. 기억상실로 인해 지금까지의 자신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은 채 백지인 상태에서 전혀 타인인 것처럼 자신을 객관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게 된다. 김석주란 과연 어떤 인간이고 어떤 일들을 하고 있었는가. 판단하고 평가한다. 어떤 의미이고 어떤 가치인가. 


실력은 여전하다. 모두가 불가능하다 여겼다.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는 듯 보였다. 결론은 내려졌고 계약까지 체결되었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뒤인데 결과를 바꾸기에는 도무지 틈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해냈다. 가지고 있던 자료들을 다시 처음부터 분석하고, 김석주의 지난 행적들을 되짚어 김석주가 확보하고 있었을 정보들을 추출해낸다. 과연 김석주는 국내최고의 기업전문 변호사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과정에서 김석주는 철저히 김석주 자신으로부터 유리되어 있었다. 김석주 자신이 사고하고 판단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닌 과거의 김석주가 원래 내렸던 결론을 추적하여 퍼즐맞추듯 짜맞춘다. 원래의 김석주를 의식할수록 현재의 김석주는 원래의 김석주로부터 분리될 수밖에 없다.


개인컴퓨터의 패스워드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자신이 타고 다니던 차도 한참을 찾아야 했었다. 개를 기르고 있었는지. 그렇다면 그 개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친했고 누구와 원수가 되었는지도. 태연한 척 하지만 무척 신경쓰였을 것이다. 장영우(김상중 분)의 기대와 신뢰는 그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책과 강박으로도 이어졌을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무엇때문에 클라이언트가 불쾌해가고 자신에게 의심을 보내는지. 무엇이 장영우를 곤란케 하고 있는가도. 자신을 향한 당연한 시선들은 그만큼 부담이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원래의 김석주로 돌아가야 한다. 장영우에게 건넨 사직서는 그럴 수 없다는 체념이며 포기였을 것이다. 기억을 찾지 못한 자신은 결코 다시는 원래의 김석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원래의 김석주로 돌아가지 못했을 때 지금의 김석주에게는 무엇이 남겠는가. 어렸을 적의 기억을 떠올린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다. 주위의 외적 요인들에 의해 한 개인은 정의된다. 인격도, 성격도, 습관도, 취향도, 결국 개인의 경험의 누적에 의해 결정되고 만다. 그러나 한 편으로 그같은 외적 요인들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 본질적인 자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 또한 있어왔었다. 아주 오래전 어떤 사건이 있기 전의 보다 순수하던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반발로, 아니면 어떤 알지 못하는 상처들로 인해 그는 지금의 피도 눈물도 없는, 오로지 법률에 대한 전문지식만을 갖춘 괴물과도 같은 변호사가 되어 있었다. 원래의 순수했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한다.


하필 처음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사건이 과거 사고를 당하기 전 맡았던 강간치상의 피해자 정혜령(김윤서 분)과 얽힌 것이다. 그것은 김석주 자신의 원죄이기도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바꾸었다. 강간치상의 피해자에게 오히려 세상의 도덕적 비난과 멸시가 돌아가도록 만들었다. 피해자를 궁지로 내몰아 합의를 강요했다. 결국 피해자는 당시 가해자였던 박동현을 죽이고 스스로 가해자가 되고 말았다. 박동현은 어찌되었거나 김석주의 친구였다. 차라리 잠시 법적인 처벌을 받고 죄를 뉘우칠 수 있었으면 되었을 것을, 김석주의 오만이 도리어 의뢰인을 죽음으로 내몰고 말았다. 무고한 피해자를 흉악한 살인자로 만들고 말았다.


자연스러운 이끌림일 것이다. 하기는 기억이 없다. 정혜령에 대한 기억이 있어 의식해서 맡는 것이 아니다. 김석주 안의 선의다. 김석주 자신의 양심이다. 과거 애써 억눌러 두었던 것들이다. 필요없다며 무시하고 외면하고 있던 것들이다. 원한을 묻는다. 무엇도 기억나지 않는다. 무엇이 옳다는 것을 안다. 무엇이 지금 가장 바른 행동이라는 것도 안다. 그대로 행동에 옮기려 한다. 지난 자신의 원죄를 씻어가며. 그는 진정 정혜령의 용서를 받아낼 수 있을까.


이지윤(박민영 분)은 역시나 보모 역할이다. 여성의 역할은 좋아봐야 모성을 넘어서지 못한다. 기억에 없던 어머니다. 사촌을 대신한 누이다. 응석을 부린다. 많은 것들을 그녀에게 의지한다. 장영우의 믿음이 김석주를 변호사로 다시 설 수 있게 했다면, 이지윤은 김석주를 다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할 것이다. 말 그대로 '부활'이다. 결국 그녀는 김석주의 파트너는 되지 못하는 것인가. 김석주는 이미 홀로 완전하다. 모성이란 단지 자궁에 불과하다. 김석주를 위한 도구다. 그를 위해 그녀는 장영우에게 채용된다.


비로소 시작일 것이다. 과거의 자신과 작별을 고한다. 언제고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지금의 김석주로 살려 한다. 살 수밖에 없다. 다른 삶일 것이다. '리셋'이다. 빚진 것도 없이, 빚을 지운 것도 없이, 이제 그는 자유롭고 홀가분하다. 장영우에게 건넨 사직서가 다시 돌아왔다. 거리낄 필요 없이 하고자 하는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그것이야 말로 김석주에게 진실한 '자신'일 것이다. 그의 곁에 이지윤이 있다. 그녀에게는 김석주의 시계가 있다. 남은 유일한 빚이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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