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개과천선 - 김석주의 승리가 통쾌하지만 않은 이유

까칠부 2014. 6. 20. 07:06

흔히 말한다. 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 그런데 그 기업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그런 경우에조차 기업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기업이 사회에 끼친 해악까지도 너무 쉽게 용서하고 만다. 기업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 사회가 기업을 위해 그들의 문제까지 모두 떠안는 구조다. 어찌되었거나 기업을 살려야 경제가 살기 때문이다.


은행이 중요한 이유는 은행을 중심으로 시장에 돈이 돌기 때문이다. 여윳돈이 은행으로 흘러가 자본을 만들고, 그 자본이 다시 기업이나 개인에게 돌아가 경제를 활성화시킨다. 이익이 생기면 은행에 예치하고, 자본이 필요할 때는 은행에서 빌려 확보한다. 그래서 과거 돈이 없던 시절에서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은행을 만들어 시장에서 역할을 부여했던 것이었다. 경제를 살리고 기업을 살리기 위해 은행이 필요한 것이었다.


은행으로 인해 수백개의 기업이 도산하고 도산할 위기에 있다. 흑자를 보던 우량기업이 졸지에 채무자가 되어 부도처리되고 있다. 그런데도 국가경제를 말한다. 이러다 은행이 망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나름의 근거와 자료를 갖추어 은행들을 기소하려는 검사를 지검장이 도리어 좌천시켜 버린다. 청와대의 의지까지 개입되어 있다. 국가와 사회의 더 큰 이익을 위해서 그깟 중소기업의 희생 쯤 얼마든지 묻고 지나갈 수 있다. 기업을 살리라는 은행인데 오히려 기업을 망하게 하고도 경제를 위해서라는 논리로 그 책임을 피해간다. 국가경제를 위해서라는 말이 저들의 불법과 부도덕과 무능을 가리는 방패가 된다.


차라리 법정에서 치열한 법리공방 끝에 무죄로 판결났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검사의 무능이든, 아니면 실제 책임이 없든, 법적으로 은행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면 그렇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얼마전 당시 키코에 대한 검찰의 수사자료가 공개되며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알면서도 은폐했다. 지극히 정치적인 판단이다. 사법부가 법이 아닌 경제를 위해 판단하고 결론을 내린다. 혹은 드라마에서도 묘사된 판사 개인의 사정에 의해 사법부의 판결이 좌우된다. 법을 믿을 수 있을까?


한국에서 법정드라마가 그다지 흥행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법을 믿지 못한다. 첨예한 법리가 부딪히는 전장이어야 할 것이다. 최고의 지성들이 논리의 칼로 상대를 베는 정제된 야만의 투기장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법 위에 법을 우선하는 논리들이 있다. 때로 인정에 이끌리고, 더 많은 경우 이익에 흔들리며, 심지어 힘의 논리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기도 한다. 그것이 과연 죄인가에 대한 판단보다 판단을 내리고 난 뒤의 일에 대해 더 많은 신경을 쓴다. 재판저에 가기까지와 재판정에서 나온 뒤가 중요하지 재판정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재판은 재판정 밖에서 이미 결정나 있다.


재판에 들어가기 전에 모든 것을 끝내려는 차영우로펌과 재판정에서 모든 결론을 내리려 하는 김석주(김명민 분)가 그래서 대비된다. 재판정 밖에서 차영우로펌은 너무나 크고, 재판정 안에서 김석주는 전과 달리 너무 작고 초라하다. 이미 알고 있다. 너무 유명한 사건이라 시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키코에 대해 모르려야 모를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판결났는가도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길 수 없다. 아니 이길 수 없어야 한다. 사법부마저 움직일 수 있는 차영우로펌 앞에서 김석주가 내세우는 법리나 증거 따위 아무련 역할도 못한다. 그것은 확신이다. 일상의 관성이다. 이기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그것이 바로 이 사회의 현실이다.


김석주의 작은 승리에 환호하기보다 반격의 기회를 노리는 차영우로펌의 집요함에 불안감부터 느껴야 한다. 그를 위한 충분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정부의 요직에 차영우로펌 출신이 진출해 있고, 그동안 확보한 인맥은 사법부의 인사까지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다. 어느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던 전지원(진이한 분)조차 질려버린다. 법적인 판단을 내리는 판사로써 아직까지 법을 중심으로 사고하던 습관이 법을 넘어선 차영우로펌의 스케일에 짓눌려버리고 만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힘이다. 차영우로펌의 힘이 아닌 차영우로펌으로 대표되는 법과 권력과 자본이 결합한 기득권의 실체인 것이다.


정의로운 판사라 생각했다. 양심에 의해 철저히 법적인 논리를 근거로 판단하는 능력있는 판사라 생각했었다. 변호사가 되어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순진하지만 출세를 위한 법이었다. 더 많은 부와 더 큰 명예와 더 높은 지위와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한 법이었다. 전지원이 바뀐 것이 아니라 그가 놓인 환경이 바뀐 것이다. 그곳에서 법은 전지원이 승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지윤(박민영 분)의 푸념이 현실화된다. 이 사회의 기득권의 한가운데서 그는 진실한 자신을 드러낸다. 그것은 어쩌면 김석주의 과거의 모습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기억을 잃었다. 아버지가 기억을 잃은 만큼 김석주가 그 기억을 채워간다. 아버지 김신일(최일화 분)의 알츠하이머와 김석주의 기억상실은 그렇게 절묘하게 맞물린다. 김신일이 기억을 잃는 만큼 김석주가 자신의 기억을 채워간다. 김신일이 기억을 잃으며 뒤로 물러나는 만큼 김석주가 김신일을 대신해 새로운 기억을 채워간다.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뒤를 잇는다. 아버지의 빈자리에서 아버지의 기억을 물려받아 새로운 자신이 되어간다. 아버지에게서 아들은 태어나고 아버지를 닮은 어른이 된다.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를 대신해서.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일이 된다. 그럼에도 김석주는 변호사였다. 과거에도 지금도 그는 단지 맡은 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 사람도 부족하고 여건도 열악하지만 그는 단지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아버지의 의뢰인을 물려받아 아버지를 대신해 승리를 거둔다. 아버지가 웃음짓는다. 아들도 웃음짓는다. 아버지를 찾는 이야기다. 언젠가 아버지가 되는 아들의 이야기다.


아버지 김신일은 말한다. 자식들에게 자유가 뭔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었다고. 그래서 과연 독재가 사라지고 민주주의를 쟁취한 지금 한국사회는 자유로운가. 자유계약의 원칙이라는 말이 상당히 역설적으로 들린다. 비대칭적인 현실에서 과연 자유로운 개인의 의지라는 것이 가능한가. 전공자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고도로 복잡한 금융상품을 중소기업의 한정된 정보력만으로 과연 얼마나 제대로 알고 가입여부를 결정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개인의 자유라 책임이라 말하는 것은 얼마나 무모하고 무책임한가. 그래서 고도로 전문적인 법지식과 법논리를 갖춘 김석주와 같은 변호사의 존재가 요긴한 것이다.


역시 아버지의 뒤를 잇는다. 아버지가 군사정권의 서슬퍼런 압제와 맞서싸웠다면, 김석주는 차영우로펌이라는 실재하는 이 사회 권력의 실체와 맞서려 한다. 자본과 권력과 그리고 법. 법은 저들을 위한 도구인 동시에 저들을 저지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그로 인해 피해입은 이들 가운데는 대기업인 백두그룹의 회장 또한 포함된다. 아마 마지막 사건일 것이다. 비로소 차영우로펌과 정면으로 맞서게 된다. 변호사윤리를 저버린 대자본과 홀로 - 혹은 그를 돕는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정면으로 부딪히게 된다. 이기기는 쉽지 않다.


과연 궁금하다. 김석주를 그때 오토바이로 밀었던 범인은 누구일까? 공식대로라면 분명 지금 출연자 가운데 있을 것이다. 2회 분량이 단축되었기에 그 정체는 밝혀지지 않을지 모른다. 사실 없어도 크게 상관은 없다. 이지윤과의 로맨스도 흐지부지 끝나고 만다. 시계를 건넨 시점에서 이미 끝이다. 이제와서 사랑을 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없다. 유정선(채정안 분)도 어느새 사라져 있다. 조기종영이 역시 너무 아쉽다.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아버지가 늙는 만큼 아들은 성장한다. 법 위에 법이 존재한다. 한국에서 법정드라마가 인기없는 이유다. 너무 어렵고 너무 복잡하고 그런데다 승리한다는 확신조차 없다. 비현실적이다. 차영우로펌이야 말로 현실이다. 실제의 사건과는 다른 드라마만의 결말을 기대한다. 그래도 김석주가 승리하기를 바란다. 드라마를 보는 이유다. 시간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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