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봐야 차영우로펌 역시 일개 민간기업에 불과하다. 사법부의 인사에 개입할 어떤 명분도 수단도 가지고 있지 않다. 국세청을 움직이고, 은행을 통해 대출상환의 압력을 가하고. 차영우로펌에 어떤 대단한 권력이 있어 그런 것들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곧 욕망이며 자본은 그 욕망을 움직이는 매개다. 금융감독원의 융통성없는 과장을 설득한 그것처럼.
물론 차영우로펌을 이루고 있는 다수는 변호사이고 법조인들이다. 하지만 차영우로펌 자체는 이익을 추구하는 영리기업이며 독점적 지위에 있는 거대자본이다. 더 비싼 수임료를 지불할 수 있는 특별한 고객들을 위해 특별한 서비스를 준비한다. 다수의 우수한 변호사가 고객의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 최상의 환경에서 최적의 결과를 이끌어낸다. 그것은 결국 비싼 수임료가 되어 차영우로펌의 이익이 되고, 그 이익은 다시 차영우로펌이 보유한 서비스의 질의 향상을 위해 투자된다. 선순환이다. 모든 것은 자본이 향하는 곳을 향한다.
제아무리 판검사라 해도 결국은 사람이다. 공무원에 불과한 그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수입이란 한정될 수밖에 없고, 인간의 무한한 욕망과 이기는 그 이상의 다른 수단을 기대하도록 만든다.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보다 더 큰 이익이 주어진다면 누구라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것이 차영우로펌이 가진 힘이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과 이기를 충족할 수 있는 거대한 이익,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보다 더 강한 권력은 없다. 인간의 어떤 양심과 신념과 존엄과 인정보다 어쩌면 더 강하다. 대한민국 사회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은 차영우로펌이 아닌 바로 그것은 인간의 욕망과 자본의 힘인 것이다.
차영우가 믿는 정의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 이미 일상이 되어 버린 가치이기도 하다. 실제 있었던 사건들이다. 실제 있었던 재판들을 모델로 삼고 있었다. 결과 역시 모두가 아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욕망을 지배하는 자가 정의까지 지배한다. 법이란 단지 수단에 불과하다. 정해진 결론을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며, 그 욕망을 지배할 수 있는 수단이다. 차라리 전지원을 대신해 차영우가 전면에 나선다. 치열한 법논리 대신 차영우로펌이 가진 힘을 과시하면서.
그러고보면 김석주(김명민 분)가 기억을 잃은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이지윤(박민영 분)의 협조를 구하며 사람좋은 얼굴로 여러 댓가들을 제시했다. 그의 방식이다. 공짜는 없다. 그리고 지불한 댓가만큼 결과는 돌아온다. 아끼지 않는다. 김석주에게도. 전지원에게도. 대형로펌의 대표로써 차영우를 대표하는 이미지 역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협조를 구하는 것이다. 변호사이고 로펌의 대표일 테지만 정작 법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자본이, 차영우로펌 자신이 곧 법이고 정의다. 김석주가 맞서야 할 상대다.
치열한 법리논쟁은 그렇게 현실과 만나며 굴절되고 만다. 법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 있다. 법이 더 우선한다면 그 우선순위조차 바꿔버린다. 김석주 자신도 그래서 중소기업인들을 도우면서 그같은 법이외의 부분들에 대해 더 중요하게 조언하고 있었다. 검사인 이선희(김서형 분)와도 그녀가 간과하고 있는 법 이외의 요소들에 대해 깨닫도록 하고 있었다. 그가 차영우로펌에 몸담고 있으면서 항상 가까이에서 지켜보던 것들이었다. 그 안에 깊숙이 개입하기도 했었다. 그가 승리해 온 이유였다. 인간은 정의가 아닌 욕망에 이끌린다.
기대했던 법정에서의 법리공방이 아닌 배후에서의 음모와 협잡이 중심에 서게 된 이유였다. 하필 대한민국이 배경이었다. 법에 우선한 정의가 있다. 정의에 우선하는 가치가 있다. 부정과 비리가 능력이 된다. 법을 지키는 것이 바보처럼 여겨진다. 법이란 자기와 상관 없는 곳에서 정의롭다. 거대로펌조차 법을 지키고 있지 않다. 차영우로펌이라는 거대로펌을 통해 욕망이 지배하는 현실의 사회를 보여준다. 역설처럼 차영우로펌이 수단으로 삼는 법을 통해 법이 지금 이 사회에서 가지는 가치를 보여준다. 오로지 기억을 잃은 김석주만이 법을 말한다.
기억을 잃은 아버지와 기억을 잃은 아들이 만난다. 십수년의 시간이 지워지고 난 뒤 두 사람은 비로소 솔직해질 수 있었다. 아버지가 아니었고 아들이 아니었지만 그들은 솔직하게 다하지 못한 마음속의 말들을 나눌 수 있었다. 진실한 자신이란 기억 저편에 있다.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자신을 찾은 것이다. 아버지 김신일(최일화 분)조차. 고집스레 지키고 있던 완고한 아버지의 가면을 이제서야 비로소 벗어던진다. 아들 역시 이제껏 흘리지 못한 진실의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 지나간 시간들이란 어째서 이토록 후회스럽기만 한가. 기억이 원망스럽다.
이지윤이 김석주에게 시계를 돌려줬다. 신데렐라의 구두를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줬다. 시간이 없다. 로맨스를 넣기에 남은 분량이 너무 적다. 박민영을 위해 애써 분량을 배려하는 듯한 모양새다. 아버지의 사건도 흐지부지 넘어가고 더 이상 이지윤이 드라마에 등장해야 할 개연성이 사라졌다. 유정선(채정안 분)은 어떨까? 혼란이 사라진 듯하다. 홍가분하다. 오로지 딸의 행복만을 바라는 아버지와의 통화가 구원이 된다. 그러나 역시 알 수 없다. 분량이 적다.
키코 다음은 진로소주사태다. 차영우로펌을 위해 준비되었다. 변호사의 윤리에 대해 묻는다. 쌍방대리를 통해 기업의 기밀을 알아내어 한쪽에 일방적으로 이익을 보도록 만들었다. 피해를 입은 기업과 경영자가 나선다. 그 책임은 필경 차영우로펌이 지게 될 것이다. 차영우 자신과의 직접적인 싸움이다. 차영우가 가진 차영우로펌의 힘과 직접 몸으로 맞서는 싸움이다.
조기종영이 무척 아쉽다. 예정은 시청자와의 약속이다. 18회까지 방영한다고 했으면 그 만큼의 내용과 완성도를 기대하며 시청자는 TV앞에 앉는다. 2회가 줄어든 만큼 필요한 내용을 빼야 하고 구성에도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 세상에 나오지도 못하고 사라져버린 이야기들이 안타깝다. 시청자로서 그것은 큰 상실이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아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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