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트로트의 연인 - 믿음 없는 손을 잡고, 살아가는 역설

까칠부 2014. 7. 1. 06:46

트로트에 대한 대중의 낮은 평가와 인식은 어쩌면 폼을 잡는 것과는 거리가 먼 장르적 특성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음악인으로서 음악적인 고민이나 노력에 소홀한 것은 아니다. 단지 그 노력들이 오로지 음악을 듣는 청중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


이런 음악적인 시도들을 해보았다. 이런 점들에 유의해서 듣는다면 더 음악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는 대중이 얼마나 들어서 즐겁고 따라부르면서 즐거울 것인가를 생각한다. 간결하면서도 솔직한 가사와 멜로디는 그다지 음악적인 고민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쓸데없이 현학적이고 장식적인 가사도 배제된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절박한 막다른 궁지에서, 오로지 저 위만 보고 달려갈 수밖에 없다. 아버지가 남긴 빚을 갚기 위해서. 동생과의 마지막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혹은 음악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저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시간이 없다.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가수로서 성공해야 하고 성공시켜야 한다. 지금까지의 자기만족을 위한 음악적인 허세는 의미없다. 가장 대중이 좋아할 것 같은 그야말로 대중적인 음악을 해야 한다.


김준현(지현우 분)을 향한 전소속사 마이더스의 대표 김우갑(조덕현 분)의 그런 역설적 변화를 암시한다. 대중음악이란 가사가 있는 노래이며, 대중음악의 스타란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를 가리키는 것이다. 연주인으로서 대중적인 스타가 된 경우가 없지야 않겠지만 역시 주류는 가사가 있는 노래이며 노래를 부르는 가수인 것이다. 그런데 대중을 상대로 상업적인 음반을 내면서 팔리지도 않는 연주곡을 고집하고 있었다. 음악인으로서 김현준 자신의 자신감이며 자존감이었을 것이다. 자기과시였다. 그런데 이제 최춘희(정은지 분)를 앞세워 오로지 팔릴 수 있는 음악만을, 대중이 좋아할만한 트로트를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대중이 좋아할 음악이라고 그것이 마냥 쉬운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더 어렵다. 자기가 만족할 수 있는 음악이야 자기 혼자만 좋아하면 그만이지만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은 그 음악을 듣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해야 한다. 최춘희의 매력은 이미 샤인스타의 오디션에서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임으로써 증명되었다. 샤인스타의 새로운 사장 조근우(신성록 분) 역시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최춘희가 불러야 할 노래만이 남았다. 트로트라는 장르를 폄하하며 낮추어 보던 김준현이 어떻게 최춘희를 위한 트로트를 만들어낼 것인가. 많은 신인들이 그러하듯 어쩌면 그것은 가장 진실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일 것이다. 김준현이 아니면 최춘희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래일 것이다. 하기는 그래서 드라마다.


그야말로 인간으로서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김준현이 맺은 사기계약으로 계약금도 한 푼 못받고 무대에 설수록 빚만 들어간다. 무대가 아닌 곳에서도 - 노래만 부르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동생과 집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절망의 끝에서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등을 빌려준 것이 자신을 속이고 도망친 김현준이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가장 원망스럽고 가장 믿을 수 없는 상대와 함께 손잡고 깡패들을 피해 도망쳐야 했다. 이제는 그의 손을 잡고 그에 의지해 성공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믿을 수 없지만 이제 그녀가 믿을 상대는 김현준 뿐이다.


고작 천만원에 자신의 양심을 팔았다. 고작 며칠의 호사를 위해 최춘희를 속이고 돈을 받아 도망쳤다. 최춘희의 동생을 불러 이것저것 먹이고 사주는 것은 그의 알량한 죄책감이었을 것이다. 그런 최춘희에게 다시 돌아가야 한다. 자신이 속이고 이용해먹은 최춘희에게 돌아가 그녀의 손을 잡고 사정해야 한다. 최고의 스타였다. 음악인으로서의 자부심 역시 지나칠 정도로 넘쳐났다. 그녀를 볼 때마다 자신의 비루함과 한심함을 떠올려야 한다. 자신의 원죄를 떠올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럼에도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달린다. 절박하게 미안하다 믿어달라 애원한다. 이제 그가 믿을 것도 최춘희 뿐이다.


믿어주지 않을 누군가를 향한 간절한 호소와 믿을 수 없는 누군가의 간절한 호소를 들어야 하는 모순된 순간이 그들이 놓인 답답한 상황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만큼 김현준의 몸짓은 공허하고 최춘희의 표정 또한 허무하다. 남의 일인 것 같이 차라리 한 편의 희극을 보는 것 같다. 삶이란 어쩌면 이리도 우스운가. 그런 우스운 삶을 그럼에도 치열하게 살아가야 한다. 좋은 노래가 나올 것 같다. 억눌린 감정이 출구를 찾아 끌어오른다. 아마도 오디션에서 최춘희가 보여준 그 무대에서처럼. 바로 그것이 대중이 트로트를 찾는 이유일 것이다.


모든 감정을 표현해내는 정은지의 솔직한 표정이 드라마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지현우의 과장된 감정은 김현준이 겪어야 하는 절망과 어우러져 좋은 대비를 이룬다. 신성록은 드라마의 변속기어다.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드라마의 중심에서 드라마의 속도와 방향을 결정한다. 정은지로부터 빚을 받아내려다 어느새 그녀와 한 편이 되어 어울리는 사채업자의 캐릭터 또한 유쾌하다. 현실은 고단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한 편으로 살만하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느낌은 좋은 이유다. 전형적이지만 맛깔나게 양념을 버무리는 법을 안다.


삶의 역설이다. 원하지 않는 길도 가야 한다. 원하지 않는 상대와도 어울려야 한다. 가장 원망하고 가장 미워하는 가장 믿을 수 없는 상대와도 궁지에서는 손을 잡아야 한다. 자신의 죄마저 끌어안고 그 원망을 받아가며 손을 내밀고 잡아야 한다. 성공을 위해서. 단지 꿈만이 아니다. 이루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함이며 또한 현실의 족쇄다. 그렇게 살아간다. 꿈이란 항상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음악이 항상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듯.


드라마 자체가 하나의 트로트같다. 들끓는 격정과 그것을 타자화시키는 낙천. 꿈이 아닌 꿈과 그럼에도 꿈을 꿀 수 있다는 긍정. 그럼에도 사람은 살아간다. 그렇게도 사람은 살아간다. 악인도 있고, 그래서 괴로움도 어려움도 있지만 어떻게든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삶의 이유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6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