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해피투게더 - 감동의 뒷풀이, 정도전의 배우들을 만나다!

까칠부 2014. 7. 4. 06:47

사극의 기본은 역사다. 그래서 사극(史劇)이다. 사극이라는 말 자체가 역사를 소재로 한 연극을 뜻한다. TV를 통해 방영되기에 드라마다. 그러나 쉬운 작업이 아니다. 무엇보다 방대한 사료를 직접 찾아보고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해야 한다. 그와 관련한 다양한 저작과 연구결과들도 섭렵해야 한다. 역사물을 하나 쓰고 나면 반은 역사학자가 되어 있다. 그런데다 드라마로서도 재미있어야 한다. 그 과정이 과연 쉬울까?


이른바 퓨전사극이라 불리우는 정체조차 불분명한 역사드라마가 대세를 이룬 이유였다. 그만큼 쉽다. 그리고 편하다. 훨씬 적은 노력으로 역사드라마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 굳이 역사적 사실에 구애되지 않고서도, 아니 드라마적인 재미를 위해서 역사적 사실들을 직접 만들거나 입맛에 맞게 적당히 수정할 수 있다. 배우 입장에서도 현대극의 연장에서 단지 한복만 입고 연기하면 되니 상대적으로 연기하기도 쉬운 편이다. 시청자가 요구하는대로 맞춰가는데도 매우 유리한 편이라 시청률 걱정도 덜 수 있다. 역사적 사실에 너무 충실해도 드라마가 답답하고 고루하게 느껴진다. 드라마의 주시청자는 아직은 가정주부가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사드라마만이 갖는 엄격함에 매료되는 시청자들이 있다. 이미 존재하는 역사적 사실 위에 작가만의 상상력으로 허구를 가미한다. 지나쳐서도 안되고 모자라서도 안된다. 마치 클래식과도 같다.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자기만의 해석이나 개성을 드러내야만 한다. 칼날 위를 걷는 듯한 그 아슬아슬함이 바로 클래식의 매력이다. 실제의 역사와 드라마적인 허구의 경계에서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킨다. 실제의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이 절묘한 경계 위에서 만난다. 그 경계를 넘어서면 역사가 아니거나 드라마가 아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킨 드라마가 과연 최근 몇이나 있었던가.


'정도전'이 특히 성인남성들에게 찬양에 가까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 아니 과거에도 이와 같은 작품은 드물었다. 어쩔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이 완역된 것이 그리 오래지 않다. 고려사를 비롯한 사료들이 일반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된 것도 아주 최근의 일이다. 고려 이전으로 넘어가면 사료 자체가 절대부족하다. 어쩌면 '조선왕조실록'이 완역되고 완역된 사료를 바탕으로 쓰여진 최초의 역사드라마였을 것이다. 그래서 보다 사료에 충실할 수 있었고, 드라마를 보면서 실제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물론 그 위에 작가적인 상상력으로 드라마적인 재미를 부여한 작가 정현민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드라마란 작가가 쓰는 것이다.


단지 과거의 역사적 사실만을 되짚는 것이 아니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 그대로 역사를 통해 지금을 돌아보는 거울로 삼는다. 사료가 기록하지 못한 나머지는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감성으로 철저히 재구성해낸다. 초반 대하드라마 '이인임'이라 부르는 사람들마저 있었을 정도로 이인임(박영규 분)이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인임이란 어쩌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 자신의 자화상이다. 현실의 모순이고 부조리이며 병페다. 아쉽다면 그럼에도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정도전(조재현 분)의 바람이 시청자들에게 그다지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이성계(유동근 분)라고 하는 실력과 덕망을 두루 갖춘 유력인사를 내세워 한 번 고려를 뒤집어 엎자는 대의에는 공감하지만, 그러나 그 이후 과연 어떻게 세상을 바꿀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아직 우리사회에서는 이념에 가려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중이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마침내 조선을 건국한 이후 드라마에 힘이 빠진 것처럼 여겨진 이유가 바로 그래서였다. 주인공임에도 정도전(조재현 분)의 이상이 시청자들에게 그다지 와닿지 못한 이유였다. 대업을 이루기는 해야겠는데 구체적인 내용 없이 단지 권력을 교체하기 위한 권모술수만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정도전과 이방원(안재모 분)의 대립 역시 단지 권력을 사이에 둔 다툼일 뿐이었다. 그나마 정도전이 전면에 나서면서 정도전과 이방원 사이의 갈등에만 집중할 뿐 조선을 건국한 주체들마저 철저히 소외되고 있었다. 조준(전현 분)과 남은이 그 가장 큰 피해자였다. 하기는 겨우 50회만에 종영한 드라마에서 그 이상을 바라기는 어려울 것이다.


드라마 '정도전'이야 말로 어쩌면 우리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느 현실의 한계이며 모순일 것이다. 잘못된 현실을 어떻게든 바꾸고 싶어 하지만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논의 자체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바꾸겠다는 감정적인 판단만이 있을 뿐 어떻게 바꿔야겠다는 이성적인 고민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중이다. 단지 권력을 지키고 교체하는 것만을 이야기한다. 권력이 모든 정치적 선택의 시작이며 끝이다. 


덕분에 이방원(안재모 분)은 정도전의 적대자로서 존재해야만 했다. 정도전의 이상과 철저히 반대편에서 대립하고 있는 것이 이방원의 야망인 것이다. 단지 이방원의 권력을 향한 탐욕이 정도전의 이상을 좌절시킨 것처럼 묘사한다. 하지만 정작 정도전의 뒤를 이어 조선의 시스템을 완성한 것은 태종 이방원이었다. 실제 이성계의 비난과는 달리 태종에 의해 죽은 사람의 수 역시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다. 처가와 아들의 외가에 대해서만 유독 혹독했다. 하지만 정도전에게는 적이 필요했다.


역시 드라마적인 선택일 것이다. 작가(전현민)가 드라마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이기도 할 것이다. 실패한 혁명가를 그리고 싶었다. 홀로 위대한 이상을 품었고, 그 이상으로 인해 스스로 괴물이 되어갔으며, 끝끝내 현실에 의해 좌절하고 만 전형적인 실패한 혁명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정도전의 죽음은 정도전이 주장한 민본의 이상의 좌절이다. 하지만 마치 모순처럼 결국 태종에 의해 대부분의 정책이 계승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아니 계승되었다기보다는 정도전이 꿈꾸었던 그것이 다른 사대부들에게도 꿈이었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정도전은 이룰 수 없는 꿈을 말해야만 했었다. 최선을 다했노라고, 불가능한 꿈을 꾸라고, 자신이 꾸고 있는 그 꿈이 바로 대의라고. 작가의 의도가 강하게 드러난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역사드라마가 가지는 매력일 것이다.


역사란 시대다. 시대란 지향이다. 벌써 지나온 시간이기에 이미 결과에 대해서는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도 그 과정에 대해 그동안의 사료와 연구들을 통해 세세하게 거의 알고 있다. 각각의 퍼즐조각을 모아 하나의 큰 그림으로 만든다. 그것을 흔히 관(觀)이라 일컫는다. 그 그림을 재구성하는 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자신인 것이다. 그래서 또한 온고지신이다. 역사를 통해 무엇을 볼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지금을 살아가는 바로 자신들이다. 실패한 혁명과 그럼에도 꾸고자 하는 꿈과 그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온 시간들이야 말로 작가가 '정도전'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지금시대의 시청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의 이야기였던 셈이다. 바로 자신의 꿈을 꾸라. 


배우들의 연기는 굳이 말이 필요없을 정도였다. 이인임은 이인임이었으며, 이성계는 이성계였고, 하륜은 하륜이었다. 이지란일 뿐이었고, 윤소종일 뿐이었고, 정몽주이고 정도전일 뿐이었다. 베테랑의 힘이었다. '해피투게더'에 출연한 배우 가운데 이광기가 가장 나이가 어린 46세였다. 데뷔연도가 모두 80년대, 그나마 조재현만이 89년으로 80년대 후반이다. 작가가 썼고 배우들이 배역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말에서 떨어져 기억마저 없는 상황에서도 오로지 드라마만을 생각했다. 24시간 오로지 자신의 배역만을 생각했다. 출연료마저 절반만 받았다. 그들이 배우인 이유일 것이다. 드라마를 만드는 주인공이다. 책임감이고 사명감이다.


배역이 아닌 배우로서 이야기한다. 홍보만이 아닌 마무리를 위한 자리도 필요하다. 어쩌면 TV드라마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영화는 사실 이미 제작이 끝난 뒤이기에 홍보가 곧 마무리다. 모든 일정을 끝내고 편안하게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보며 시청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별로 대단하지 않은 소소한 이야기들과 함께 한바탕 잔치러럼 왁자하게 놀고 지나간다. 시청자 역시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과 함께했던 지난 시간들을 간직한다. 출연하지 못한 배우들에 아쉬워하며. 그만큼 최고의 시간들을 함께했다. '해피투게더'의 이유다. 아쉬움을 웃음과 함께 떠나보낸다. 역시 멋진 사람들이었다.


정말이지 오랜만의 정통대하사극이었을 것이다. 스케일도 크고 선도 굵다. 그러면서도 디테일하다. 역사만이 줄 수 있는 재미 역시 놓치지 않는다. 역사에 충실하기에 가능한 날선 긴장감이 오히려 시청자를 분주하게 피곤케 다그친다.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오늘을 살아가는 자신을 돌아보고, 오늘을 지나온 자신을 위로한다. 한 주의 포상이라 생각했다. 출연한 배우들에 감사한다. 작가와 수고한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최고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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