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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과 판옥선...

까칠부 2014. 8. 10. 07:01

사실 원거리에서 포격으로 적을 저지한다고 하는 것은 이순신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수십 년 전 을묘왜변이라는 것이 일어났다. 조선의 대일본전술에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육지에서는 진관체제가 제승방략으로 바뀌고, 바다에서는 맹선을 대체할 새로운 전선이 건조되었다. 바로 판옥선이다.

 

일본인에 비해 배위에서의 백병전에 치명적인 약점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았다. 기존의 적과 직접 붙어서 싸우는 방식으로는 도저히 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했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단순한 어떤 해답을 찾아냈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이 조선의 전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면 되지 않는가.

 

판옥선의 컨셉은 말 그대로 바다위의 성이다. 기존의 맹선보다 한 층을 더 올림으로써 당시의 다른 어떤 전선보다도 높이에서 우위를 가지게 되었다. 배를 이루는 목재 역시 매우 두껍게 설계되었다. 그리고 배 위에는 적의 접근을 저지하기 위한 다양한 무기들이 탑재되었다. 이를테면 모두가 흔히 아는 총통류라든가 화살을 연속해서 쏠 수 있는 연노와 같은 것들이다. 명량에서도 그것들은 그대로 쓰였을 것이다.

 

칠천량에서 조선수군이 패한 이유는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적의 영역에서 아무런 대책없이 그만 지쳐서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여전히 거리를 유지한 채 전투를 벌였다면 조선수군이 그렇게 일방적으로 패했을 리 없건만, 그러나 경계를 소홀히 한 틈을 타 접근한 일본수군에 의해, 더구나 야간에 조선수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아마 여기에서 명량에서 어떻게 이순신 장군은 혼자서 일본수군을 막아낼 수 있었는가에 대한 답이 나올 것이다. 일본군이 판옥선 위로 올라오지 못하도록만 하면 된다.

 

실제 명량해전에서 당시 조선수군의 사상자는 아마 10명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전투중 사망한 것은 2명이 전부였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까지 일방적인 전투를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이순신의 탁월한 지휘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판옥선만 있다고 일본수군에 무조건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즉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의 승리는 비단 이순신 개인의 승리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소한 판옥선을 설계하고 도입하는데 관여한 기술자와 관리들 역시 그 지분의 일부를 나누어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당시의 임금이 명종이었다. 명종의 몇 안 되는 업적 가운데 하나다. 이순신에게 판옥선이 없었어도 그런 기적같은 승리가 가능했을까. 한 개인의 뛰어남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이순신과 같은 올곧기만 한 인사가 끝끝내 관직을 가지고 마침내 전라좌수사까지 승진할 수 있었던 사회분위기 역시 중요하다. 몇 번이나 모함을 당했고, 그로 인해 위기도 적잖이 겪어야 했었다. 지금도 처세가 나쁘면 출세하기가 그렇게 힘든다. 그러나 이순신의 재능을 눈여겨보아온 이들이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선조야 말로 이순신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다. 선조가 아니었다면 이순신은 전라좌수사가 될 수 없었다.

 

이순신을 포함한 조선의 승리였다. 이순신과 조선을 분리할 수 없다. 일본제국주의의 잔재다. 조선을 이순신과 분리함으로써 조선의 열등함을 강조한다. 이광수는 그 첨병에 있었다.

 

그냥 이순신에 대해 떠올랐다. 잊고 있을 것이다. 거북선이 아닌 판옥선이 조선 수군의 주력이었다.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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