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 자신과 서로에게 한 걸음씩 다가서며, 사랑하다

까칠부 2014. 8. 22. 07:40

벌써부터 벽을 친다. 도망치려 한다. 구속하려 한다. 확인받고 싶어 한다. 부딪힌다. 그런 그들의 혼란과 갈등을 해소시켜주는 한 마디,


"사랑!"


그것이었을까? 기껏 쌓아 올리고 있던 견고한 벽이 '사랑'이라는 한 마디에 그대로 녹아버리고 만다. 상대에 대한 불신과 불안과 두려움이 '사랑'이라는 한 마디에 그대로 풀려 버린다. 지해수(공효진 분)의 간섭을 받아들이고, 장재열(조인성 분)의 도망침을 이해한다.


화장실에서 목에 흉기를 갖다댄 채 버티고 있던 남자를 지해수는 먼저 긍정한다. 그리고 공감한다. 그럼으로써 그의 경계를 허문다. 경계를 허문 남자는 지해수가 내민 손에 순순히 자신이 가지고 있던 흉기를 건네준다. 조동민(성동일 분)이 그토록 장재범(양익준 분)의 친구가 되고자 했던 이유였다. 눈물흘리며 돌아서는 이영진(진경 분)에게 사랑한다 말해준다.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한 미련을 우정으로 바꿀 수 있도록.


상처가 생기면 조금 지나 딱지가 앉기 시작한다. 붕대로 상처를 감싸는 것은 외부로부터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작은 충격에도 크게 고통받고, 상처가 벌어지거나, 혹은 세균이라도 들어가면 크게 덧나기 쉽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자신의 상처를 건드릴까, 자신의 아픔을 들쑤실까, 그래서 더 크게 상처입고 아파할까봐, 그런 자신을 지키고자 단단히 여미고 웅크리게 된다. 고슴도치마냥 가시를 세우게 된다. 


누군가 자신의 상처를 알아주기를 바라면서도 혹시라도 그것을 남들이 알게 될까 두려워한다. 인간의 슬픈 이중성일 것이다.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본성과 자칫 상처가 약점이 되어 도태될 것을 두려워하는 야생의 본능이 약해질대로 약해진 내면에서 충돌한다. 말하고 싶고, 가르쳐주고 싶고, 이해받고 싶으면서도, 그냥 이대로 아무도 모르는 채 지금의 자신으로 만족하고 싶다. 필요한 만큼 드러내고 그것으로 자신과 모두를 속인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자신조차 헷갈리기 시작한다.


장재범이 조동민에게라도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자 했던 것은 외롭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차라리 모두를 원망하고 모두를 상처주며 그렇게 고립되려 한다. 완전히 혼자가 된다면 더이상 외로워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버림받았다. 모두로부터 외면당했다. 어머니였는데. 동생이었을 텐데. 진실이었음에도. 울고 만다. 막다른 궁지로 내몰린 상처투성이 인간의 마지막 발버둥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살고 싶다. 


그래서 더 아픈 것일 게다. 상처입은 몸으로도 어떻게든 살아가야 했을 테니까.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먹이를 찾고 물을 마시고 짝을 찾아 후손을 남긴다. 아주 작은 고양이를 알고 있다. 쥐새끼인 줄 알았다. 어미로부터 버려지고,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고, 꼬리에는 벌써 구더기가 슬어 있었다. 그래도 살려고 젖은 콘크리트 바닥을 기어 구석으로 숨고 있었다. 근육이 찢겨 너덜너덜해진 채로도 한 쪽 다리를 끌며 맹수로부터 도망친다. 설사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이 거짓일지라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답을 구하고 싶다. 그렇게라도 살아야겠다. 아마도 장재열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유와 같을 것이다.


화장실에서만 편히 잠들 수 있다. 화장실 이외의 장소에서는 악몽을 꾼다. 유일하게 글을 쓰는 동안에는 화장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잠깐씩 잠이 든다. 꿈이다. 꿈이란 무의식이다. 장재열이 차마 하지 못한 해야만 했던 말들이다. 한강우(디오 분)는 그래서 장재열이 지금 쓰지 못하는 그의 새로운 소설이었을 것이다. 그의 악몽이다. 그의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이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던 자신이었다. 그는 아직도 악몽을 꾸고 있는 중이다. 한강우가 그에게 보여줄 마지막은 과연 무엇일까? 그는 과연 무엇을 꿈꾸려 하는 것일까?


결혼에 대한 집착이라기보다는 어머니처럼 되고 싶지 않은 반동이었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남편을 버리지 못한다. 배신하지 못한다. 설사 남편이 자신을 버리고 배신하더라도 자신은 그래서는 안된다. 그에 비하면 어쩌면 지해수는 버려진 아버지와 같지 않았을까. 어머니의 불륜이 자칫 어머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심어주지는 않았을까. 여전히 끊임없이 장재열을 의심하며 확인하려 한다.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집착처럼. 어머니에 대한 증오를 풀었다 여겼는데 아직 풀지 못한 것이 남아 있다.


언니의 한 마디가 또다시 의심의 불을 지핀다. 지해수의 다그침에 장재열은 다시 마음의 벽을 쌓는다. 뒤로 숨으려 한다. 그래도 그 벽을 허물고 들어서는 것은 다름아닌 지해수다. 두렵고 불안해도 지해수가 잡고 싶은 것 역시 장재열일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지금까지의 자신을 치유해간다. 확실히 정신과적인 치료방법은 아닐 것이다. 인간의 치유방법이다. 제목처럼. 드라마이기에. 그들은 사랑하고 또 사랑할 것이다. 결국 살아갈 것이다.


문득 그런 의심이 생긴다. 조동민의 고민처럼 당시 장재열이 재판정에서 장재범이 범인이라 증언했던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장재열 자신의 죄를 감추려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조동민이 논증했다. 장재범 또한 아들이었음에도 장재열의 어머니(차화연 분) 또한 장재범을 버렸다. 다른 비밀이 있지 않을까? 진정 장재열이 감추고자 하는 진실이 숨겨져 있지는 않을까?


서로 연인사이가 되고 장재열과 지해수의 사이에 더욱 긴장감이 감돈다. 서로에게 한 걸음을 내딛으며 서로가 불편해진다. 서로의 상처에 바짝 다가선다. 보지 못한 서로의 불편한 모습도 보게 될 것이다. 그래도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이란 상처를 딛고 살아간다는 의미다. 살아가기 위해 사랑을 우정으로 바꾼다. 사랑하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 있다.


한강우의 진실을 양태용(태항호 분)이 알게 된다. 한강우는 실재하지 않는다. 단지 장재열의 상상속에만 존재한다. 장재열만이 한강우를 보고 듣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멀지 않았다. 아마 이영진이 말한 상처가 터지는 순간일 것이다. 장재열의 곁에는 지해수가 있다. 고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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