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의 대신들이 왕을 찾아가 무력을 앞세워 강요한다.
"왕이 왕노릇을 못하여 자신들에게 피해가 오니 앞으로 왕이 마음대로 못하도록 약속을 받아내야겠다."
혹은 영국의 국왕이 마그나카르타를 부정하고 귀족들을 분열시켜 친왕파 귀족들로만 국정을 좌우하려 한다면 또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전자야 말할 것도 없고, 후자가 바로 영정조의 탕평책이다. 탕평이란 남인이든 노론이든 상관없이 왕을 중심으로 줄세우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았다. 숙종의 환국정치로 사대부의 힘이 크게 약화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세도정치도 결국 왕권에 기댄 외척들의 발호로 시작되었다.
왕에게 도전하니까. 왕의 권위를 넘보려 하니까. 일개 권신들이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니까. 마그나카르타가 애초에 보호하고 보장하려 했던 것이 누구의 권리인가를 찬찬히 살펴보기 바란다.
이제는 그냥 습관이다. 관습이다. 왕권과 신권. 왕권이 옳다. 지겹다. 이방원의 말마따나 정몽주가 아직도 이 사회를 뒤덮고 있다. 하기는 패배한 권력이다. 사대부란.
국사는 세계사를 통해서만이 비로소 완성된다. 항상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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