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면 이겼다. 그래서 싸우기만 하면 되었다. 다른 수단은 고려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래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을 고민했다.
항우의 진영에는 무장이 전부였지만 유방의 진영에서는 책사가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몇 배의 적이라도 쓰러뜨린다. 아무리 많은 적을 만나도 결국에는 이긴다.
러시아 원정에 실패하고 패주하는 나폴레옹에게 오스트리아는 제안한다.
전쟁 이전으로 영토만 되돌린다면 나폴레옹의 제위를 인정해주겠다.
하지만 이 무렵 정예를 거의 잃은 상태에서도 나폴레옹은 승리한다. 승리가 오판을 가져왔다.
동맹을 찾고, 상대를 분열시키고, 빈틈을 노려 힘을 모은다.
항우가 승리하는 동안 유방은 중원을 평정하여 세력을 키웠고,
나폴레옹이 승리하는 동안 유럽은 하나가 되어 그에 맞섰다.
항상 가장 큰 적은 자기 안에 있는 오만이다.
북중국을 통일한 부견이 끝내 패하고 만 것도 그 오만 때문이었다.
구일본제국이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 가운데 하나만 패했어도.
이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기까지 군사작전에서 한 번만 실패했어도.
수데덴란트의 합병만 저지당했어도 독일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하기는 소련을 망하게 한 것은 얕잡아보던 아프가니스탄이었다.
베트남의 패전이 미국을 겸손케 만들었고, 소련의 해체는 미국을 오만케 만들었다.
항우가 유방군에 두려움만 느꼈어도,
나폴레옹이 프랑스만으로는 안된다는 한계를 절감했어도,
둘 다 싸움을 너무 잘했다.
싸움을 잘해서 졌다. 역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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