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그냥 법대로 원칙대로 했으면 됐을 일이다. 검사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직분에만 충실했어도 원수를 위해 일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법을 어기고, 원칙을 어기고, 검사로서 지켜야 할 양심과 책임을 저버리고, 그래서 결국 조은비(김소현 분)의 아버지 조봉학 역시 차우진(천정명 분) 자신이 은폐한 김회장(김학철 분)의 죄를 밝히고 죗값을 치르게 하려다 도리어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고.
어쩌면 어설픈 복수심에 대한 조롱일 것이다. 오로지 원수를 갚겠다는 마음만이 앞선다. 양심도 정의도 상관없이 오로지 원수를 찾아 그대로 되갚아주겠다는 본능만으로 행동한다. 그것을 정의라 착각한다. 악인에게 악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 그를 위해 또다른 악과 타협한다. 김회장을 위해 그 죄를 감추고 증거마저 숨긴다. 그렇게 해서라도 15년 전 승희를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들을 잡아 복수하겠다. 그래서 결과가 어떤가? 차라리 검사로서 자신의 양심과 보편의 정의에 충실했다면 김회장에게 최소한 다른 죗값이라도 치르게 했을 것이다.
주인공임에도 차라리 동정이나 안타까움보다는 지은 죄의 댓가를 치른다는 비웃음부터 짓고 만다. 가엾은 것은 김회장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더구나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야 할 검찰에 의해 그 진실마저 은폐당하고,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사형수로서 교도소에서 긴 세월을 보내야 했던 조봉학일 것이다. 정당한 법집행을 방해했던 부정한 검사가 오히려 그나마 수많은 희생을 댓가로 눈앞에 두게 된 복수 앞에서 일장훈계를 한다. 잘난 척 열심히 떠들더니 정작 조봉학이 죽임을 당할 때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켜만 보고 있었다.
누구도 구하지 못하고, 누구도 돕지 못하고, 그렇다고 자기가 해야 할 역할에 충실하지도 못했다. 복수라도 제대로 시원하게 해낸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못했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최악일 것이다. 물론 그런 주인공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러나 최소한 어떤 작품이든 초반을 넘어가면 주인공다운 모습을 갖추기 위한 과정들을 보여주게 된다. 결국 주인공답게 시청자에게 어떤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이 오히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주인공에게 실망하게 된다. 차라리 이 모든 일들의 원흉인 악역 김회장보다 더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일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화가 난다. 이번 기회에 차우진을 대신해서 조은비로 주인공을 바꿨으면 하는 바람까지 가지게 된다.
최소한 주인공을 위한 드라마는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주인공을 돋보이기 위한 드라마는 아니다. 주인공은 영웅이 아니다. 최면술마저 이제는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최면술이란 단지 차우진의 감춰진 기억을 암시하는 장치에 불과했던 것이다. 차우진의 단단히 봉인된 기억 저편에는 어떤 진실들이 감춰져 있는가. 별 것 아니었다. 그의 나약함과 비굴함과 졸렬함이었다. 그것이 수많은 희생을 낳는 원인이 되었다. 죄책감조차 없다. 단지 죽은 승희를 닮은 조은비가 걱정되고, 끝내 복수를 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이 승희에게 미안할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다. 내 사람만 챙기는 것. 검사로서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사죄나 반성은 있어야 했을 텐데도. 그것을 단지 자신의 나약함과 선의 뒤에 감추려고만 한다. 그런 차우진에게 복수를 당해야 할 지 모르는 김회장이 불쌍할 정도다.
과연 한심한 연기에 있어서는 천정명 이상은 없을 것이다. 어눌할 정도로 부정확한 발성은 그의 소심함과 비굴함을 더욱 극대화시켜 보여준다. 그저 불쌍할 뿐 어떤 용기도 의지도 보여주지 못한다. 의도한 것이라면 최고의 캐스팅이고 연기일 것이다. 이입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 이런 주인공을 믿고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것인가. 열심히 나름대로 진실을 찾아가던 고수사관(박원상 분)조차 결국 차우진을 위해 소모되고 만다. 차우진 대신 검사로서 나름대로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던 김동수(최재웅 분)마저 그렇게 좌절당하고 만다. 짐은 무거운데 기대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어떤 기막힌 반전이나 계기를 기대해 볼 수 있을까?
서툰 연극무대를 보는 것 같았다. 사형대에서 조봉학과 김회장, 차우진, 의무과장이 서로 엇갈리며 대화를 나눌 때, 핸드폰으로 전송된 조은비의 동영상에 의해 입장이 바뀌고 처지가 달라지는 그 과정과 전개가 그렇게 어색할 수 없었다. 세트를 아끼려 무대를 하나로 한정시킨 뒤 배우의 대사에 나머지를 모두 우겨넣는다. 과장된 표정과 몸짓과 극적인 대사들, 그나마 배우들의 연기가 그 휑한 허전함을 채우려 애쓰고 있었을 것이다. 연기하기도 무척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된 영상을 보는대도 이렇게 흐름이 끊기고 있다.
재미있자고 보는 드라마에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다. 시청자의 대신이 되어야 할 주인공으로부터 오히려 분노와 짜증을 느끼고 만다. 그래도 마지막 장면에서 승희가 등장한 것이 어떤 계기가 되어 줄 것이라 기대해 본다. 오로지 복수만을 위해서 달려온 어린아이가 마침내 검사로서, 아니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양심과 정의를 위해 스스로 행동에 나서게 된다. 승희는 죽었고 조은비는 살아 있다. 너무 늦었지만 그렇게라도 주인공의 모습을 되찾는다. 섣부른 기대이기 쉽다. 그만큼 주인공 차우진에 대한 실망이 너무 크다. 드라마에 대한 실망이 커진다.
김회장이 15년 전 차우진을 폭행하고 승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진범이라는 설정은 솔직히 너무 진부하다. 그냥 단지 검사로서 처벌해야 할 범죄자에게 차우진 자신의 개인적인 복수가 더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고뇌도 번민도 필요없다. 하긴 그렇지 않아도 검사로서 자신이 과거 저지른 행위에 대한 죄책감이나 반성 역시 지금으로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명쾌해진 것은 좋은데 그만큼 단순해지고 지루해지기 쉽다. 쉽지 않다. 여러가지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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