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려 한다. 원작의 에피소드에, 다시 리메이크만의 오리지널 에피소드까지. 드라마의 분량은 한정되어 있다. 만화와 같은 호흡으로 모든 내용을 드라마에 담아내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미 전에도 말했을 것이다. 선택이 필요하다고.
물론 선택은 한다. 하지만 무얼 위한 선택인지 이해를 못하겠다. 드라마도 한 회 방영분 안에 독자적인 기승전결이 존재한다. 한 주 방영분 2회 안에는 그 안에서 완결되는 이야기가 존재해야 한다. 큰 주제가 있었다. S오케스트라의 공연. 하지만 동시다발로 쏟아지는 수많은 이야기들에 치여 정작 S오케스트라는 구석으로 몰리고 말았다. 어떤 의미와 의도를 가지고 보여지고 있었는가.
윤이송 음악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굳이 차유진(주원 분)과 설내일(심은경 분) 등을 윤이송 음악제로 보내야 했을 것이면 그것이 주제가 된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그 주는 역시 슈트레제만(백윤식 분)과 차유진의 관계다. 마치 중세의 도제를 보는 듯, 무협소설의 스승과 제자를 보는 듯, 기행을 일삼는 슈트레제만과 그런 슈트레제만에게 일방적으로 휘둘리는 차유진의 관계가 점차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서 완성되어 간다. S오케스트라는 시작이고, 윤이송 음악제는 완성이다. 이곳에서 차유진은 비로소 슈트레제만의 제자로서 모두에게 소개된다. 그렇다면 그것에 주가 되어야 한다.
굳이 한음 음대 내부의 학내정치를 그렇게까지 비중을 두어 다룰 필요가 있겠는가. 학장인 송미나(예지원 분)도, 슈트레제만도, 차유진도, 심지어 이시장 편으로 분류된 도강재(이병진 분) 교수도 모두 그같은 학내정치에 휘둘리느라 정신이 없다. 슈트레제만과의 만남은 차유진에게 성장을 위한 기폭제였다. 단단한 껍질을 깨고 음악적으로 몇 단계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같은 차유진의 성장은 아직 아기포대기 속에 잠들어 있던 설내일의 재능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 단순히 젊은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가 아니다. 남다른 그들의 개성과 재능이 서로를 발전시키고 완성시켜나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그같은 음악적 치열함을 다룰만한 공간이 사라졌다. 다 쓸데없는 학내정치가 분량을 잡아먹은 때문이다.
아니 학내정치가 그렇게 꼭 필요했다면 그에 맞게 분량을 조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선택'이라 한 것이다. 다른 소소한 에피소드는 모두 배제한 채 S오케스트라의 공연까지의 내용을 보다 확장해서 디테일하게 담아낸다. S오케스트라와 윤이송 음악제 등으로 차유진이 성장하고 설내일이 계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놓치지 않고 치밀하게 담아낸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다. 인물들의 동선이 짧다. 좁은 공간에 블록을 쌓아 올린 듯 조밀하게 배치된 장면들이 인물들의 동선을 제한해 버린다. 배경과 배경 사이를 이동할 뿐 인물 자신이 움직여 사건을 만들지는 못한다. 드라마가 심심하고 산만하게 느껴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장면과 장면은 있는데 그 사이를 잇는 유기적인 고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삼각관계. 아직 채도경(김유미 분)은 차유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원작에서와 전혀 다르게 설정된 이윤후(박보검 분)가 설내일 주위를 서성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넘치는 주변이야기로 주제와 중심인물들이 묻히고 있는데 여기에 삼각관계, 아니 사각관계까지 더한다. 어른들은 정치를 하고 아이들은 사랑을 한다. 어른들은 사소한 이익에도 서로 편을 갈라 다투고, 아이들은 사랑하느라 질투하고 다툰다. 아마 이런 것을 '한국식'이라 말하는 모양이다. 그나마라도 잘 만들었으면 모를까 말했듯 너무 허술하고 뜬금없다. 도대체 무엇인가.
음악에도 동기라는 것이 있다. 이 동기가 음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된다. 변주하고 진화하며 하나의 음악으로 완성된다. 그렇다면 드라마에 동기는 무엇일까? 차유진과 설내일의 사랑인가? 그들을 둘러싼 삼각관계인가? 주변인물들의 소소한 이야기들인가? 아니면 대학내부의 학내정치인가? 그것이 명확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지루하다 산만하다 말한다. 둘 다 같은 뜻이다. 주제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때 지루해하고 산만해한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역시 슈트레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학장인 송미나나 슈트레제만이나 조용한 엽기가 무엇인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침착한데 황당하다. 진지한데 무언가 엇박을 그린다. 문제는 주변인물들의 리액션이었다. 송미나는 그래서 슈트레제만과 대화할 때만 살고, 슈트레제만은 비로소 차유진의 표정이 다양해지고서야 그 가치를 드러낸다. 이미 일가를 이루어낸 거장의 자유로운 영혼이 특유의 엄격함과 모순을 이루며 공존한다.
차유진은 표정이 풍부해졌는데 정작 설내일은 표정이 사라졌다. 가라앉는 것은 좋은데 아예 침몰해 버렸다. 드라마를 끌어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한 설내일이어야 할 것이다. 도강재 교수역의 이병준을 이런 식으로 소모해 버릴 것인가. 이윤후 역의 박보검이나 유일락 역의 고경표나 나쁘지 않은 캐스팅이다. 김유미도 훌륭히 제 몫을 다해주고 있다. 역시 가장 큰 문제는 대본이고 연출일 것이다. 아무리 배우가 연기를 잘해봐야 드라마가 재미없으면 소용없다.
나아지기는 나아졌다. 그런데 평범해졌다. 강한 개성을 가진 원작이 평범한 한국드라마로 바뀌어 가고 있다. 굳이 일본의 원작을 사들여 드라마로 만드는 의미를 알지 못하겠다. 원작에 대한 기대가 그렇지 않아도 아쉬운 드라마의 평가를 더 깎아내리는 역할을 한다. 전혀 모르겠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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