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라이어게임 - 정리해고게임, 잔혹한 현실의 법칙과 남다정의 해법

까칠부 2014. 11. 6. 07:43

경쟁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승자를 남기는 것, 다른 하나는 패자를 밀어내는 것. 승자가 되지 못해 패자가 되고, 패자가 되지 않음으로써 승자로 남을 수 있다. 차라리 끊임없이 누군가를 패자로 만들어 도태시킴으로써 나머지는 살아남았다는 안도를 얻는다. 승자는 되지 못했지만 패자는 되지 않았다. 경쟁이 가장 잔혹해지는 순간이다. 단 한 사람만 희생시키면 된다.


끊임없이 확인한다. 나보다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보다 아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철저히 짓밟는다. 짓밟고 올라간다. 아니 올라가지 않아도 좋다. 그 누군가가 다시는 올라오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눌러 놓을 수만 있다면. 나는 저들과 다르다. 최소한 저들보다는 나으며 저들 보다는 위에 있다. 그 대상이 누구인가는 상관없다. 단 나만 아니면 된다. 나는 살아남는다. 그래서 하필 게임의 제목이 '정리해고 게임'이다. 유일하게 고립된 남다정(김소은 분)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도 회사에서 해고당한 정과장이었다. 게임에서 떨어지는 것이 과연 패자라는 의미인 것인가?


처음 제이미(이엘 분)의 탈락이 확정적이었을 때 사람들의 신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대로도 아무 문제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사실 남다정과 제이미의 선택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사람의 확실한 탈락자를 설정함으로써 나머지의 동요와 이탈을 막는다. 남다정이 처음 제안한 상생의 전략 역시 제이미의 탈락을 전제로 해서만 성립하는 것이었다. 제이미만 확실하게 탈락한다면 나머지는 모두 아무 문제없이 안전하게 게임을 마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제이미에 의해 그 대상이 남다정으로 바뀐 뒤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제이미냐 남다정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내가 아니라는 사실만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완전히 고립된 남다정에게 다가와 그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정과장의 존재는 그동안 남다정이 쌓아온 신뢰의 증거로서 아주 의미가 없지는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하마트면 남다정의 돈가방을 훔칠 뻔했던 조달구(조재윤 분)가 애써 위험을 무릅써가며 남다정을 도우려 한다. 심지어 그동안 몸담고 있던 사채업과도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하려 한다. 조달구의 도움으로 어렵게 게임장으로 잠입한 하우진(이상윤 분)은 상황을 파악하고 남다정을 위한 최선의 방법들을 조언해주기 시작한다. 하우진이 찾아낸 방법이란 어쩌면 매우 쉽고 간단한 것이었다. 패자를 골라내어 떨어뜨리던 게임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게임으로 게임의 내용을 바꾼다. 당장은 탈락을 면해 패자가 되지 않고 살아남았지만 장차 다음 게임에서는 마지막 한 사람이 되어야 승자가 되어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다. 제이미가 남다정에게서 1억 5천만원이라는 돈을 가로챘다는 사실은 나머지 사람들의 위기의식을 자극한다. 이대로는 남다정이 자신들을 누르고 마지막 승자가 되어 모든 것을 가지게 될 지 모른다.


어차피 남다정의 탈락은 확정되었기에 별을 조금 나누어준다고 자기가 위험해지거나 할 가능성은 없다. 그보다 남다정에게서 받아낼 1억 5천만원이 다음 게임에서 승자가 되는데 크게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하지만 남다정이 모두를 속여서 얻어낸 별이 75개라는 압도적인 숫자로 바뀌고, 더구나 나머지 사람들이 소유한 별이 21개로 똑같이 맞춰지면서 상황은 전혀 달라지게 된다. 그때까지 떨어지는 한 사람을 결정하는 것은 살아남는 나머지 7명의 의지였지만, 남다정이 별을 독점하고 나머지 7명의 별이 같아지는 순간 그것은 전적으로 남다정 한 사람의 의지에 달리고 만다. 남다정이 누구에게 별을 주고 안주고에 따라 탈락자가 가려진다. 승자에 의한 줄세우기가 시작된다. 위험하기도 하다. 자칫 민주주의에 대한 독재의 유리함을 보여주는 예로도 보일 수 있다. 탐욕스런 7명의 개인이 비로소 한 사람의 도덕적인 독재자에 의해 질서와 윤리를 되찾게 된다. 가장 도덕적인 한 사람에 의해 모두가 도덕성을 되찾는다. 그러나 모두가 패자가 되었다.


결론은 과연 남다르다. 마지막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필자 역시 제이미가 탈락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여기에서 이대로 소모해 버리기에는 제이미의 캐릭터가 가진 매력과 비중은 드라마 내에서 매우 상당하다. 그렇다면 누구일까? 탈락자라고 패자가 아니었다. 단지 게임이다. 게임을 더 이상 계속해야 할 이유가 없다면 중간에 그만두어도 상관없는 것이다. 더 중요한 다른 일이 있다면 게임보다는 그것에 더 우선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탈락한 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는 게임을 계속 진행해도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정과장으로 인해 모자른 상금은 다음 게임의 상금으로 대신한다. 역시 강도영(신성록 분)의 의도가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이대로 남다정의 의도대로 게임이 진행된다면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게임이 가능하다. 의도한 것이었을까?


자유로운 인간은 항상 탐욕에 이끌리고 유혹에 빠진다. 그래서 세상은 혼란스럽다. 인간에게 질서를 부여하는 것은 다름아닌 공포다. 질서로부터 벗어나는 것에 대한 공포. 하우진이 말하는 배신의 댓가가 바로 그것이다. 충분한 댓가를 치르도록 함으로써 다시는 배신하는 것을 두려워하도록 만든다. 보다 압도적인 힘으로 그들을 통제한다. 적절한 보상은 그들을 움직이는 미끼가 되어 줄 것이다. 오히려 속아서 별을 빼앗겼음에도 압도적인 수의 별을 가지고 자신들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게 된 남다정 앞에 사람들은 기꺼이 고개를 숙인다. 돈을 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자신이 돈을 지불한다. 인간사회의 잔인하고 냉혹한 역설이랄까? 정작 자신이 표를 주고도 자신의 표에 의해 당선된 정치인에게 합의된 권력에 의해 짓눌리고 주눅드는 현대의 유권자를 보는 듯하다. 그것이 현실의 권력이다. 남다정의 다정함에 그 섬뜩함이 가려진다.


과연 매력적인 배우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많다. 하지만 이처럼 드라마를 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배우는 매우 드물 것이다. 적절한 유머와 광기와 그리고 신비, 강도영이란 어쩌면 '라이어게임' 그 자체일 것이다. 그가 만든 무대이고 그 무대 위에서 남다정과 하우진은 곡예를 부린다. TV쇼라는 드라마만의 오리지널 설정은 그런 점에서 탁월 그 이상이다. 남다정과 하우진의 필사적인 게임을 대중은 한낱 여흥거리로 보고 즐긴다. 그들에 열광하는 팬들마저 생겨났다. 그들이 무대에 서도록, 무대에서 필사적이 되도록 배후에서 그들을 조종한다. 이유는 비밀에 가려져 있다. '라이어게임'이 끝나는 순간 어쩌면 마지막 무대에서 마지막 게임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마침내 강도영을 통해 듣게 될 진실은 무엇일까? 이윤주(차수영 분) PD마저 움직인다. 블랙홀같다. 배우 신성록에 의해 강도영은 그 이상의 존재감을 가지게 된다. 신성록의 이름은 곧 매혹이다.


하우진이 복수를 위해 저지른 주가조작으로 인해 남다정의 아버지가 피해를 입었다. 남다정의 아버지가 빚쟁이가 되어 도망치게 된 이유가 바로 하우진의 복수 때문이었다. 남다정의 이름처럼 다정한 모습들이, 하우진을 향한 맹목적인 신뢰가, 그래서 더 시린 예감으로 다가온다. 남다정이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일본의 원작이나 드라마에서와는 다른, 한국대중에 맞는, 한국 대중을 설득하기에 충분한 타당한 설정이다. 하우진이 남다정을 도우려는 이유가 그렇게 납득할 수 있게 긴장까지 더한다. 적당한 끈기와 온기가 더욱 드라마로 끌어들인다.


단순히 착한 것이 아니다. 바보같을 정도로 착하다. 그러나 바보는 아니다. 오히려 강하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실망하고 좌절하고 그래서 자신이 고통을 당해도 그래도 사람을 믿겠다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다. 원작을 보면서 항상 가장 불편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남다정은 다르다. 착한 것은 결코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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