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사는 것이 곧 정치라 말하는 것일 게다. 인간이 지금과 같은 고도의 지능을 가지게 된 이유를 정치에서 찾는 학자들도 있다. 대단하고 거창한 무엇이 아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주도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가는 기술이다. 오상식(이성민 분) 자신도 하지 않는 진급에 대한 걱정을 부하직원인 김동식(김대명 분) 대리와 장그래(임시완 분)가 먼저 자발적으로 나서서 할 수 있는 것도 결국 그동안 상사와 부하직원으로서 같은 팀 안에서 쌓아온 관계가 전제되었기에 가능하다. 그만한 인정과 신뢰가 담보되어 있다. 의도하기도 하고 오상식처럼 그것이 천성이기도 하다.
물론 더 쉬운 방법도 있다. 아니 그래서 더 사람들은 정치에 목을 매기도 한다. 권력을 가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이다. 거저 얻어지지는 않는다. 정치인이 권력을 가지기 위해서도 사람들을 설득하여 지지자를 확보하는 힘든 과정이 필요하다. 인정에 호소하기도 하고, 이익을 나누어주기도 하며, 인간적인 매력을 강조하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지지자를 확보하여 권력이라는 것을 손에 넣게 되면 그로써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손가락 하나 까딱 없이 그럴 마음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상대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권력을 잃거나 혹은 다른 누군가로 인해 추월당하기 전까지는. 권력 앞에서 권력에 속한 상대는 철저히 무력하며 권력의 의도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승진과 월급은 결국 회사가 고용한 직원들에게 돌려주는 보상일 것이다. 그것을 위해 사람들은 직장을 구하고 일을 한다. 거꾸로 말하면 그것을 이용해 회사는 직원들을 유인하고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더 크고 더 안정되고 더 많은 급여가 보장된 직장이라면 누구도 그로부터 밀려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더 치열하게 정치를 할 것이다. 인정받기 위해서.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남들보다 더 안정되고 더 많은 보상이 보장된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그 힘을 틀어쥔 것이 회사이고 그 힘을 나누어가지는 것이 바로 임원인 것이다. 더 인간적으로 훌륭해서도, 실력이 뛰어나서도 아니다. 전무와 부장, 부장과 과장, 과장과 대리, 그것이 전부다. 그것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것을 따라야 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그렇게 자신의 노력과 실력으로 결과를 내놓아도, 결국 그것을 평가하고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위에 있는 누군가의 몫인 것이다. 안영이(강소라 분)의 직속상사인 하대리가 그러는 것처럼. 하대리가 인정하고 정과장이 인정하기까지 안영이는 아직 일한 것이 아니다. 부장의 판단에 따라 업무의 우선순위가 결정되고, 전무의 결정에 따라 업무의 소속이 결정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토록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필사적으로 결과를 내놓았던만 그때까지 영업 3팀의 노력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 허탈함. 그 무력감. 하지만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고 결정할 수 없기에 그들은 말단인 것이다. 부장조차 최전무(이경영 분)의 한 마디에 감히 토를 달 생각을 못한다. 권력이 곧 정의다.
굳이 회사안에서만이 아니다. 자영업을 하더라도 수많은 부장과 전무들을 만나게 된다. 손님이 왕이다. 손님이 곧 상사다. 온갖 말도 안되는 요구들을 단지 손님이라는 이름으로 참고 들어주어야 한다. 감히 반박조차 하지 못한다. 회사가 자신의 승진과 월급을 틀어쥐고 있듯 손님이 자신의 수입과 평판을 틀어쥐고 있다. 하필 영업 3팀이다. 상사에 치이고, 거래처에 치이고. 그나마 자기가 사장이라면 손님에게만 치이면 그만이다. 고용주가 따로 있다면 손님에 더해 고용주의 그것까지 감당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여유가 필요하고 휴식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없을 때는 그저 술을 통해 잠시 다른 곳으로 도피해 본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시름과 아픔에 술이 유일한 위로가 되어 준다. 술은 쓰기에 너무 달다.
사실 장백기(강하늘 분) 정도가 그나마 현실의 평균적인 신입사원의 모습에 가장 가깝다. 신입사원이 입사하고 바로 업무를 맡고 실적을 낸다. 주위로부터 인정받는다. 거의 불가능하다. 기본부터 다시 배운다. 회사의 표준과 룰을 철저히 익히고 그 다음부터 조금씩 일이 주어진다. 드라마니까. 하기는 이만한 거대종합상사에 학벌도 별볼일 없는 장그래가 계약직이나마 입사할 수 있다는 자체가 판타지일 것이다. 선배로부터 무시당하고, 야단맞고, 때로 무거운 질책까지 들으며 조금씩 회사원으로서 다듬어져간다. 장백기 다음은 안영이다. 안영이 다음이 장그래다. 한성률(변요한 분)은 적응이 너무 빠르다. 역시 정치의 중요함이다. 정치적으로 가장 능숙한 캐릭터가 바로 한성률이다. 장백기가 의외로 가장 서툴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어디나 고유한 표준과 룰이 있다. 모든 판단은 각자의 고유한 표준과 룰에 의해 거의 이루어진다. 아무리 못마땅해도 자원부에 속한 안영이를 위해 영업부의 과장인 오상식이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그 불합리와 부조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사회인이 되어간다고 하는 것일 게다. 부당하면 부당한대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따른다. 언젠가 기회만 주어진다면. 영업부장도, 오과장도, 일개 신입사원인 안영이도 결국은 모두 같은 처지다. 온갖 수모와 굴욕을 참고 견디며 주어진 기회를 잡기 위해 매순간 필사적이다. 보상은 달다. 마침내 안영이가 웃는다. 모두가 우는 가운데.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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