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라이어게임 - 대통령게임, 선거의 진실과 모순을 비추며

까칠부 2014. 11. 13. 03:34

선거란 무엇인가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 강도영(신성록 분)이 공약이 거짓이었다고 밝히는 순간 분노하던 유권자들은 이내 강도영이 나누어주는 돈에 순순히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대통령이 선출되기까지 주도권은 표를 가진 유권자에게 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 일단 선출되고 나면 법이 정한 바에 따라 가장 크고 강한 권력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주어진다. 지지자조차 그때는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


진실따위 상관없다. 공약이 무엇인가도 전혀 의미가 없다. 실제의 선거가 그렇다. 후보자나 그 지지자들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진실여부를 엄격히 따져묻는 사람은 드물다. 공약도 거의 꼼꼼히 살피지 않는다. 단편적인 이미지에 의존한다. 미디어에 지배당한다. 미디어를 통해 보여주는 이미지가 전부라 여긴다. 진실인 것처럼. 사실인 것처럼. 리얼리티는 리얼이 아니다. 단지 리얼이라 여기고 싶은 것이다. 강도영은 프로그램의 사회자였고, 하우진(이상윤 분)은 사기전과자로 그동안 몇 번이나 참가자들을 속이고 농락해 온 인물이었다. 참가자 누구도 강도영이나 하우진 개인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눈에 보이는 이미지만 가지고 판단하고 선택해야만 했다. 과연 누가 거짓말장이였을까?


처음에는 공약이 무척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참과 거짓을 섞어 어떤 공약은 지켜야 하고 어떤 공약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지. 그렇다면 후보의 어떤 공약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지. 하우진도 그것을 염두에 두고 조달구(조재윤 분)에게 언제 거짓공약을 내놓을 것인지 일일이 지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약이란 결국 유권자가 믿든 안 믿든, 그것이 유권자 자신에게 이익이 되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후보자 자신을 당선시킬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치밀한 함정이었다. 강도영의 공약은 오로지 하우진을 옭아맬 덫을 놓는 용도로만 쓰이고 있었다. 처음 변호사에게 모든 돈을 몰아주었던 것도, 2차투표에서 제이미(이엘 분)를 자극하여 강신규와 조달구 양파전으로 흐르는 상황을 방관한 것도, 그리고 마지막 3차투표에서 그 사실을 이용 하우진에 대한 의심과 불신의 씨앗을 뿌린 것도 역시 모두가. 어쨌거나 돈과 참가자 가운데 2명을 탈락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대통령만 될 수 있으면 모든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때 가서 공약이 거짓이었다고 문제삼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표만 얻으면 된다. 지지자만 확보할 수 있으면 전혀 상관없다. 아니 설사 자신을 지지하지 않더라도 상대 후보만 지지하지 않으면 문제될 것이 없다. 자신에게 표를 주지 않더라도 상대후보에게도 역시 표를 주지 않는다면 승리의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아예 투표를 못하도록 지지자로 하여금 기표소를 에워싸게 만든 강신규의 방법 역시 거칠지만 본질은 같다고 할 수 있다. 투표율을 떨어뜨려야 한다. 상대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는 최대한 투표에 참가할 수 없도록 투표일과 시간까지 세심하게 계산하고 고려한다. 유권자와의 은밀한 뒷거래는 그런 점에서 어쩌면 너무나 당연할 것이다. 다수의 표를 가지고 오히려 후보자를 협박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공약을 내놓도록 강요하는 것도 얼마든지 현실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결국 자기에게 이익이 있다고 여기는 곳에 표를 던진다. 중요한 것은 실제 이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고 믿는 것이다. 자신을 지지한 사람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함으로써 앞으로 남은 게임에서 자신을 믿고 따르도록 그들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남다정(김소은 분)과 강도영이 다른 점일 것이다. 남다정은 참가자 모두를 염려하고 배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도영은 오로지 자신의 지지자들에게만 보상을 베풀고 있었다. 자신을 한 번 배신했던 제이미는 충성을 조건으로 아무 댓가 없이 자신의 곁에 다시 묶어두고 있었다. 충성만 보인다면 제이미에게도 더 큰 보상이 따를 것이다. 결국 조달구를 지지할 것처럼 보이던 구인기(박재훈 분)가 제이미의 꼬임에 넘어가 입장을 바꾼 것도 너무 많은 사람이 함께 돈을 나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강도영이 처음 제안한 공약은 그 본질을 다루고 있을 것이다. 다른 모든 사람에게서 돈을 빼앗아서 국고의 돈과 함께 지지자들과만 나누겠다. 탈락하더라도 빈손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게 하겠다.


강도영의 비밀이 드러난다. 고도로 훈련된 하우진의 눈마저 속인다.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이라는 감정이나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아주 미세한 순간적인 신호마저 마음대로 조종함으로써 하우진의 예민한 눈을 오히려 거꾸로 이용한다. 20년 전 있었던 어떤 심리학 실험이 강도영이 어렸을 적 살았다는 가공의 지명에서 하우진에 의해 추출된다. 텅 비어 있다. 문득 일본만화 '몬스터'를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면 강도영이 지금 이와 같은 게임을 꾸미고 실행에 옮기는 목적과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을 알려면 강도영을 이겨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강도영은 하우진의 천적으로 설정되고 있다. 남다정에게도 어쩌면 기회가 주어질 지 모르겠다.


믿음의 힘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착한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정직한 것은 단지 무능의 다른 이름이라고. 그래서 쉽게 무시하고 비웃는다. 속이고 이용한다. 하지만 한 편으로 기대한다. 거짓말로 상대를 속이고 기만해야 하는 '라이어게임'의 참가자들마저 제이미를 제외하고 어느새 마음속깊이 남다정을 믿고 의지하고 있었다. 하우진이 아니었다면. 남다정은 믿어도 하우진은 믿지 못한다. 치밀하고 정교한 하우진의 계획도 결국 하우진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불신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하고 만다. 하우진의 말처럼 어쩌면 거짓말을 겨루는 '라이어게임'이기 때문에 남다정은 누구도 갖지 못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우진의 물음에 조달구는 울먹이며 대답한다. 남다정같이 착하고 정직한 사람이 현실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드라마에서 남다정을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도 같을 것이다. 물론 시청자 가운데는 입장이 갈릴 것이다. 여전히 착해서 거슬리고 정직해서 거추장스럽게 여겨진다. 거짓말을 겨루는 '라이어게임'인데 착하고 정직해서 어디에 쓰는가. 원작에서 주인공 '나오'가 많은 사람들에게 민폐캐릭터로 여겨지는 이유가 그것이다. 드라마의 주인공 남다정이 원작의 '나오'와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라 할 것이다. 남다정은 결과를 내놓는다. 하우진의 실패와 남다정의 우려는 그녀가 결코 어리석지도 무능하지도 않음을 결정적으로 보여준다. 과연 진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위선에 불과할지라도 베풀고 나누는 모습에 사람들은 강도영에게 마음깊이 승복하고 있다. 물롱 그 위에 오로지 자신들에게만 베풀어지는 이익이 있다. 착한 것도 정직한 것도 결국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는 사람들의 혼탁한 욕망 가운데 오로지 남다정만이 흔들림 없이 고요하다. 하우진만을 무작정 따르지 않는다. 항상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고, 그것을 지키려는 강한 의지와 용기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에 이끌린 참가자도 한 사람 나왔다. 믿어달라는 남다정의 호소에 마음이 움직이고 만다. 텅 비어있다는 말 그대로 거울앞에 선 강도영의 표정을 지운 얼굴이 차라리 무기물같다. 강도영의 반대편에 어쩌면 남다정이 있을 것이다. 강도영이 남다정을 부르는 듯하다. 하우진이 아닌.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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