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고양이탕과 '미신'

까칠부 2014. 12. 29. 01:08

'미신'이란 곧 '믿음'이다.

 

의심도, 확인도, 비판도 없는, '믿음'의 상속을 곧 '미신'이라 부른다.

 

누군가 그렇게 말했으니 그럴 것이다.

 

누군가 그렇다고 말한 적 있으니 아마 그러할 것이다.

 

근거라는 것들은 대개 주관적인 경험이거나 직관이다.

 

그리고 그것을 객관적 사실로 만든다.

 

파시즘이란 원래 전근대와 근대의 경계에서 나타났다.

 

태어나면서 죽는 순간까지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촌락사회의 전통이 근대와 만난다.

 

서로 얼굴 붉히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고,

 

따라서 감정이 상하거나 서로 불편해질 상황은 피해야만 하고,

 

그러므로 옳고 그름에 대해 그리 엄격하거나 민감할 필요가 없다.

 

좋은 게 좋은 거다.

 

누가 그렇다니 그런 거다.

 

아닌 것 같아도 그런가보다 대충 타협하고 넘어간다.

 

아니 오히려 내가 한 말이 아니니 다른 사람의 말이라는 것이 중요한 근거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고양이탕만일까?

 

남들이 그러니까. 누군가 그랬으니까. 그러니까 사실이려니.

 

개떼정신이라 말한다. 누가 뭐라 하면 모두가 몰려가 한 마디씩 더한다.

 

누가 뭐라도 하려 하면 너도나도 달려가서 자기도 똑같이 하려 아우성친다.

 

그같은 미신 가운데 단지 고양이탕과 같은 것들이 문제가 되었을 뿐.

 

고양이탕이 진짜 관절에 좋은가? 그렇다면 과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관절이 좋지 않아 약으로 고양이탕을 먹는다. 살생은 죄일지라도 섭생은 본질이다.

 

아무런 의심도 확인도 없이 맹목적으로 그저 들은 바만을 따르려 하고 있으니까.

 

적지 않은 돈이다. 그리 비싸게 주고 사먹으면서 조금의 노력조차 않는다.

 

그저 그렇겠거니. 좋겠거니.

 

차라리 맛이 좋아 맛으로 먹는다 하면 뭐라 하기는 어렵겠다.

 

틀린 건 틀린 것이다. 아닌 건 아닌 것이다.

 

참 어려운 말이다. 특히 우리사회에서는.

 

아직까지 고양이탕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니. 그것도 그 비싼 돈을 주고서.

 

고양이가 뉴스를 보고 비웃는다.

 

'그깟 사람들!'

 

고양이가 사람 무시하는 이유가 있었다.

 

약으로도 못쓸 것들이다.

 

우리사회의 또다른 야만을 찾는다. 한심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