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김구라의 부인이 그런 타입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전제한다.
특히 '주의'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가족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가족은 곧 자신과 동일시된다.
가족이란 곧 나의 정체성이다. 가족이 곧 자신과 같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다. 남편의 벌이가 없어도 자기가 벌어서 부양한다. 어떤 경우에도 가족을 깨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거꾸로 그렇기 때문에 가족이라면 자신을 위해 무엇이든 양보하고 희생해야 한다. 자신의 부족함조차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의외로 이 두가지는 같은 기제를 갖는다.
선이란 타인을 향한 것이다. 선을 위한 자신의 희생을 고귀하게 보는 경향 또한 존재한다. 나를 희생해서라도 남을 위해야 한다. 그리고 앞서의 가족관과 결합하면 가족 역시 기꺼이 자신의 희생에 동참해야 한다.
이타적인 사람에게 그 선의가 자신을 향하지 않듯, 가족애가 강한 사람의 이타 역시 가족을 향하지 않는다. 자신은 옳은 일을 하려 하고 가족은 그런 자신을 지지해야 한다.
바로 그것이 문제일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우리 사회에서 '선'으로 지칭되는 것들이다. 가족을 자신과 같이 여기고, 남의 일에 자기 일처럼 희생하고 헌신하며 돕는다. 그래서 이 두 가지가 만나면?
많은 가정이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것이다. 김구라의 가정사가 김구라 자신에 대한 불호의 정서마저 뒤어넘어 보편적인 연민과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다.
드라마 '미생'에서 김동식 대리와 맞선을 본 한 여성이 그리 말한다. 이기적이 아니어서 싫다. 사람은 적당히 이기적일 줄도 알아야 자기과 자기의 주위를 지킬 수 있다. 그 아버지도 비슷한 타입이 아니었을까.
남의 가정사에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타입이 아니라. 그런데 문득 그 이야기가 나왔다. 어째서 그랬을까고. 주위에 제법 보고 듣는 것들이 있는 터라. 대개는 착한 사람들이다. 여린 사람들이고. 그게 사단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것이 관계의 단절조차 쉽게 결심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착하지 않은 것도 좋다. '라이어게임'에서 남다정이 들려주는 주제다. 강도영에게는 오히려 나쁜 사람이 된다. 모두에게 착할 수는 없다. 남다정의 선의는 타인에 휘둘리지 않는 지독한 이기이며 그로부터 비롯된 올곧은 이타다. 진짜 착하다는 것은, 진심으로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착하다는 것과 좋다는 것은 별개다. 자기만 착할 수 있다. 모두에게 좋을 수는 없다. 역시 '미생'에서 오차장의 선의가 모두에게 좋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별 문제 없기를 바라지만. 참 힘든 상황일 것이다. 모두에게 알려졌다. 남걱정도 병이다. 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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