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란 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휩쓸던 허무와 공포의 산물이었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회의와 문명에 대한 불신이 좀비라고 하는 괴물을 만들어 투영되었다. 인간이란 어쩌면 좀비와 같이 의지라고는 없이 본능에 휩쓸리는 괴물은 아닐까. 좀비에게 죽고 좀비로 다시 태어난다.
'세계대전Z' 역시 좀비물의 전통을 이어 현대 인류사회의 모순과 불합리, 비효율을 좀비의 발생과 확산을 통해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좀비의 발생을 인지하고서도 그것을 감추기에만 급급한 중국정부와, 오히려 그것을 돈벌이에 이용하려는 불법밀수업자들과, 심지어 합법적으로 정부를 이용하여 국민을 속여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자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와 언론의 불합리하고 비능률적인 구조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국민의 지지를 위해서 오히려 진실을 숨겨야 하고, 대중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 언론은 진실을 뒤로 돌린다.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계급과 계급, 과연 인간이 이룩한 고도의 현대문명은 과연 인간을 위해 충실히 기능하는가? 하지만 과연 효율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로지 이스라엘만이 초기부터 좀비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책을 찾아내고, 더구나 팔레스타인인과의 화해를 모색하는 장면에서는 작가가 유대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가졌었다. 아니면 그렇게라도 두 민족 사이의 뿌리깊은 원한을 해결하고 싶었으리라. 팔레스타인인들을 살리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는 자국의 유대인들과 내전을 치른다. 희망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침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은 근본주의자들의 증오가 아닌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이다.
좀비를 초기에 인지하고서도 자신의 입장과 이익만을 위해 은폐하려 한 의사와 경찰, 혹은 좀비로부터 자기들만 살겠다고 성을 쌓고는 좀비에게 목숨을 잃는 사람들을 구경하던 유명스타와 저명인사들, 아무런 대책도 고민도 없이 그저 시류에 편승하려 하는 다수의 대중들, 심각한 뉴스는 피곤하다고 외면하다 보니 좀비가 어느새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의 계획에 의해 버려진 이들은 대책없이 죽어가고 있다. 시사하는 부분이 크다. 과연 지금 이 나라에 좀비가 나타나게 된다면 과연 상황은 어떻게 흐를까? 구제역이 어떻게 확산되었는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혹시라도 외부에 알려지면 자기에게 불이익이 있을까 감추고 처리하려다 시간을 놓쳤었다. 과연 우리는 다를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끝끝내 좀비와 싸워 세계를 지켜낸 인류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물론 마냥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더 큰 기만이 그들을 결집시키고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국가적인 목적을 위해 불필요한 희생을 야기하고 있었다. 미국은 결정적인 순간 자신들의 승리를 세계의 승리로 만들었다. 수많은 변명들이 이어진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용기가 있었고, 앞으로 나가려는 의지가 있었다. 승리를 향한 보다 강한 갈망이 있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한 끝없는 노력들이 있었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리고 그 대부분 다시 되돌릴 수 없을 테지만, 그래도 인류는 다시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는다.
하나의 조각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해서 마치 모자이크하듯 사실들을 배열한다. 좀비의 발생에서부터 좀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까지, 다큐멘터리에서와 같이 수많은 가상의 인물들이 증언자로 등장해 자신이 경험한 좀비와의 전쟁을 들려준다. 하나하나 조각들을 이어붙이며 인류가 경험한 가장 크고 가장 치열하고 가장 잔혹했던 전쟁의 전모가 드러난다. 가끔 그를 위해 인터뷰치고 지나치게 상세하고 장황했던 부분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덕분에 독자는 실재했던 전쟁에 대해 듣는 듯한 생동감을 얻는다. 어쩌면 실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방대하고, 풍부하며, 상세하고, 치밀하다. 역작이라는 말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직 영화는 보지 못했다. 영화를 2시간 내내 꼼짝않고 지켜볼 수 있는 집중력이 지금의 내게는 없다. 소설을 먼저 읽었다. 피곤한 가운데 몇 페이지씩 끊어가며 몇 주에 걸쳐 출퇴근하는 시간을 이용해 조금씩 읽어내려갔다. 그래서 더 실감났을 것이다. 장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기다림과 설렘이 그 실감을 몇 배 더 증폭시켜주었다. 지금까지 어쩐 좀비물도 이 한 편의 작품을 넘어서지는 못했으리라.
현대문명과 인류사회에 대한 깊은 회의이며 비판이고 조롱이다. 그러면서 인간에 대한 가장 위대한 헌사다. 가장 잔혹하고, 어쩌면 가장 비겁하고, 가장 나약한 인간이 어떻게 좀비와의 끝없는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하게 되는가. 문명회의론자라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위대하다. 구원일 것이다. 멋지다.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H2 -마지막 시합의 의미... (0) | 2015.06.06 |
---|---|
건담 - 샤아가 아무로에게 진 이유... (0) | 2015.03.21 |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왕이 아니었으면... (0) | 2015.02.20 |
고양이와 집사... (0) | 2014.12.30 |
이데올로기란... (0) | 2014.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