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전국시대 일본처럼 싸움으로 날을 지새던 사회가 아니었다. 조금만 마음을 놓아도 호전적인 이웃의 침략을 받아 성은 불타고 신분이 높은 이들마저 예외없이 항복하거나 죽임을 당해야 한다. 무리해서라도 군비를 늘려야 했고, 항상 전쟁을 대비하며 살아야만 했었다. 하지만 조선은 무려 200년을 이렇다 할 외침없이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지나친 특권은 자칫 자신에게 지워진 책임을 회피하는 것마저 당연한 권리로 여기도록 만든다. 이유가 있었고 목적이 있다. 그래야만 하는 배경과 그러기까지의 과정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평온한 일상들이 반복되는 가운데 어느새 그런 지난 이야기들은 철저히 잊혀지고 만다. 지금 누리고 있는 현실만이 남게 된다. 자신에게 지워진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는 것은 그같은 자신이 누려야 할 권리를 확인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자신은 대단히 특별한 신본에 속한다. 에도시대 일본의 무사들도 할복같은 것은 야만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당장 나라가 위기라는 말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여전히 그들의 삶은 풍요롭고, 그들이 누리는 권력은 흔들림없다. 하고자 해서 하지 못할 일이 없고, 해서는 안된다 해서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없다. 새삼 나라가 위기라고 손에서 놓아버리기에는 지금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그같은 현실이 너무나 달아 차마 헤어나기 싫다. 미련일 것이다. 그렇게 믿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앞으로도 전쟁은 없을 것이고, 전쟁이 일어난 뒤라도 내게까지 차례가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장차 일어날 전쟁에 대한 계속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없을 것이라 고집스레 단언하던 선조(김태우 분)의 심리와도 많이 닮았을까?
그런 점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앞장서서 도망치고 뿔뿔이 흩어졌던 여러 관리와 장수들이 전쟁이 계속되면서 조금씩 자기 자리로 돌아와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던 모습은 눈여겨 볼 만할 것이다. 그만큼 200년 넘게 당연하게 여겨오던 현실이 무너지는 과정은 - 더구나 너무나 갑작스러웠기에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충격이 가시고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는 그들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조선조정이 무능했다기보다는 200년을 이어진 평화가 너무 길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세 차례의 왜변을 겪으며 조선조정은 판옥선이라는 오히려 수전에서 일본을 압도할 수 있는 신병기를 개발하여 배치하고 있었다. 서로가 놓인 역사적 배경과 환경이 다르다.
그럼에도 부산진성에서는 첨사 정발의 지휘 아래 3천 여의 군민들이 합심하여 1만 5천의 압도적인 고니시(이광기 분) 군을 맞아 물러섬없이 맞섰고, 동래성에서도 역시 문관인 부사 송상현을 중심으로 군민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일치단결하여 싸우고 있었다. 참고로 드라마에서와는 달리 당시 송상현은 성이 함락될 위기에 놓이자 조복을 갈아입고 왕이 있는 한양을 향해 절을 한 뒤 단정히 앉아 일본군의 칼에 맞았다고 하는데, 오히려 마지막까지 칼을 휘두르다 죽임을 당하는 드라마에서보다 더 긴장되고 더 엄숙한 느낌이었을 듯하다. 아무래도 대중드라마라면 보다 격정적인 영상을 선호하는 법이다.
덧붙이자면 당시 부산진성과 동래성에서 첨사 정발과 부사 송상현의 시신을 찾지 못했기에 한동안 정발과 송상현이 일본군에 항복하여 일본군 장수가 되었다는 소문까지 떠돌고 있었다는데, 특히 정발의 경우는 당시에는 그 활약상이 전해지지 않다가 일본에 통신사로 갔던 황신이 일본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조정에 전하면서 비로소 알려지고 있었다 한다. 비록 너무 짧은 저항이었고, 더구나 일방적인 패전이었지만, 그나마 처참할 정도로 지리멸렬하던 전쟁 초기 조선의 비루함을 조금이나마 잊게 해주는 올곧고 당당한 의기이고 용기였을 것이다. 다시 말해 아직 드라마의 조선조정에서는 그들의 죽음마저 전해듣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런 것이 정치의 어려움일 것이다. 누가 옳은 것을 몰라서 안하는가? 좋은 것을 몰라서 못하는가? 하지만 아무리 옳은 것도 그 반대편에 선 누군가가 있다. 아무리 좋은 것도 모두에게 좋을 수는 없다.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들을 납득시켜야 한다. 힘으로 눌러 굴복시키는 것은 정치가 아닌 전쟁이다. 만일 저들에게 충분한 힘이 주어진다면 마땅히 힘으로 맞서며 저항하려 할 것이다. 백성들이 고향을 등지고 피난을 떠난다. 농사를 지어야 할 농민들이 농지를 버리고 먼 타향으로 피난길에 오른다. 군역이 힘들다고 노역이 고되다고 조정을 원망하고 왕과 대신들을 비난한다. 그런데도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니 어찌되었거나 군역을 살고 노역을 지라. 지주와 양반들더러 세금을 더 내라면 냈을까? 당장 경상도에 왜적이 쳐들어왔다는데도 군적에 오른 병사들을 모으니 제대로 모이는 이들마저 드물다.
역시 이 또한 200년이라는 긴 평화가 가져온 부작용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전쟁은 멀었다. 전쟁의 가능성이란 먼 이야기였다. 지배층과 백성들을 설득하기에는 근거로서 그 존재가 너무 희미했다. 만일 전쟁이 일상이었다면 굳이 조정이 나서지 않더라도 백성들 스스로가 항시 전쟁을 대비하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평화가 너무 길었고, 전쟁은 어느새 백성들에게서 잊혀지고 있었다. 힘으로 강제하지 않는 이상에는 백성들로부터 동의를 얻어내어 군비를 갖추기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전쟁에 대한 대비를 했어야 한다. 그로 인한 민심의 이반을 감수했어야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사실을 알고 있으니 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그만큼 당시 조선사회에 있어 전쟁이란 현실과 동떨어진 남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비판이란 항상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 반성이 없으면 그것은 단지 배설에 불과하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가. 무엇이, 어떻게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들었는가. 그렇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가. 그래서 민주주의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대안이다. 국민이 주인이다. 국민 스스로가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한다. 국민에 묻고, 국민에 동의를 구한다. 국민의 의지로 결정한 전쟁이라면 국민 스스로가 기꺼이 인신과 재산을 전쟁을 위해 내놓게 될 것이다. 전근대사회의 한계다. 전제왕조의 한계일 것이다. 현대사회와 같이 보아서는 곤란하다. 역사드라마의 한계일 것이다. 어찌되었든 류성룡의 말과 행동은 조선중기라고 하는 시대에 갇힐 수밖에 없다.
드디어 고니시군이 부산진에 상륙하며 임진왜란이 시작되었다. 조선에서는 임진왜란이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분로쿠의 에키라 부른다. 현대에 와서는 가치중립적으로 조선과 일본의 전쟁인 조일전쟁이라 부르자 주장하기도 한다. 류성룡이 드라마의 제목인 '징비록'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참혹하지만 박진감넘치는 역사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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