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는 국경이라고 하는 선에 의해 나뉘어진 수평의 세계와 삶의 층위에 의해 나뉘어지는 수직의 세계가 각각 존재한다. 국적보다, 민족보다, 심지어 혈연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현실의 층위에 의해 결정되는 세계일 것이다. 흔히 말하는 계급이고 신분이다.
아무리 가리는 것 없이 지내는 형제사이라도 한 살이라는 차이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그만큼 자기가 아직 어릴 때도 손윗형제는 벌써 어른이었다. 어렵기도 어려웠고, 의지하기도 의지했다. 그런데 어느새 언니가 자신을 더 어려워하고 자신에 기대려 하고 있다. 언니가 기껏 좋은 옷을 입고 자랑하듯 사진을 보내고 있지만, 그러나 자신은 이미 더 높은 곳에서 그것을 평가하고 있다.
서봄(고아성 분)이 언니 서누리(공승연 분)를 만나고 돌아오며 울적했던 이유였고, 그러면서도 한인상(이준 분)과 한이지(박소영 분)에게 기분이 좋다 말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만큼 언니와의 사이가 전보다 더 멀어진 것 같다. 멀어진 정도가 아니라 벽이 하나 생겨난 것 같다. 그런데 그 벽이 옆이 아닌 자신의 발 밑에 있다. 항상 올려만 보던 언니를 이제는 아래로 굽어볼 수 있게 되었다. 하기는 그 정도 되니 한정호(유준상 분)도 서봄을 일컬어 힘에 대한 감각이 있다며 칭찬하고 있었을 것이다. 놀라거나 당황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용할 줄 안다.
도대체 한정호가 가진 힘의 비밀은 무엇일까? 과연 무엇이 한정호의 집안으로 하여금 지금과 같은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준 것일까? 서봄이 항상 가장 궁금해하고 묻는 것들이다. 부모님처럼 가난하게 사는 것은 싫다. 앞으로도 가난한 채 사는 것은 더욱 싫다. 그 힘을 자신도 가지고 싶어한다. 한인상의 부모처럼. 한정호 부부처럼. 물론 한인상을 사랑한 것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한인상과의 결혼을 통해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다른 세계의 법칙들이 그녀를 매료시킨다. 간절히 자신도 그 세계에 속하고 싶다. 속물이어서가 아닌 인간이 가진 당연한 본능인 것이다.
단순히 한정호가 가진 힘만을 탐내지는 않는다. 더 많은 돈과 더 큰 권력과 더 높은 사회적 지위, 그러나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것들을 가질 수 있는가를 묻는다. 자격이며 능력이다. 자신의 손으로 그것들을 손에 넣겠다. 자신이 그것들을 가지겠다. 한정호가 약속한 사업지원에 서형식(장현성 분)은 도취되고, 서봄을 통해 건넨 카드에 서누리는 감격해한다. 한정호가 영리해졌다.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자신이 의도한 대로 따르도록 만들 것인가를 마침내 스스로 알아냈다. 이미 많은 것들을 가진 그들이다. 상대가 바라는 약간의 성의만 더한다면 감히 거부할 수 없는 여러가지 것들을 얼마든지 베풀 수 있다. 가식마저도 진심으로 바꿀 수 있을 정도다.
비로소 서봄이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어른의 사정에 휘둘리는 미숙한 아이가 아닌, 스스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행동에 옮기는 어른의 모습을 갖추어간다. 드라마에서는 그것을 '왕관'을 썼다는 표현으로 압축하고 있을 것이다. 단지 왕위에 오르게 될 순간만을 기다리는 왕자와 왕자비가 아닌, 스스로 왕위를 쟁취하고자 하는 진정한 왕자와 왕자비일 것이다. 아니 여왕이 될 것이다. 사소한 실수를 저지른 비서 이선숙(서정연 분)을 타이르는 모습에서 그같은 서봄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최연희(유호정 분)마저 감탄한다. 자격을 갖추었다.
한정호의 집에서 일하는 고용인들의 대화는 드라마를 위한 충실한 배경설명이며 앞으로 전개될 내용에 대한 예고다. 이미 드라마에는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한정호의 어머니, 즉 최연희의 시어머니에 대한 설명에서부터, 한정호의 탈모를 빗대어 안주인 또한 격세로 들어온다며 서봄의 앞으로를 예고한다. 한정호의 집안을 일으킨 시할머니처럼 서봄도 한정호의 집안을 바꾸게 될 것이다. 그에 비하면 너무나 서민적인 한인상의 변화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의 선택은 과연 어떤 드라마를 만들게 될까?
결국 민주영(장소연 분)은 한정호의 실력 앞에 두 손을 들고 만다. 굳이 직접적으로 행동에 나설 필요도 없었다. 단지 서봄의 가족에 대한 보다 성의를 담은 선의를 통해 민주영이 끌어들이려 한 서철식(전석찬 분)을 압박함으로써 민주영의 항복을 받아낸다. 변호사로서 이미 한송에 몸담고 있는 유신영(백지원 분)은 한정호가 내민 보다 유리한 조건의 계약서를 거부할 수 없다. 마지막 메시지를 서철식에게 보낸다. 그럼에도 자기와 함께 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모든 수단을 잃었기에 그녀는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서철식은 그녀와 끝까지 함께 할 것인가.
필요하다면 족보도 만든다. 필요가 없는 사실마저 만든다. 그들의 방식이다. 그동안 자신들도 전혀 모르던 선조가 생기고, 제법 행세하는 사람 가운데 같은 항렬의 일가도 나타난다. 도장업은 예술이 되고, 가난한 것은 청렴한 것으로 여겨지고, 한정호의 힘이다. 서형식을 위해서가 아니다. 서봄, 정확히는 서봄을 가족으로 맞아들인 한정호 자신을 위해서다. 한정호에 의해 모든 것은 사실이 된다. 서형식과 그의 가족마저 그대로 믿어버릴 정도로. 그들이 가진 힘의 무서움을 보여준다.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질서일 것이다. 세상은 수평으로도, 수직으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그 수직으로 나뉜 세상일 것이다. 동생이 언니처럼 군다. 언니가 동생처럼 동생에게 위축된다. 마치 가족이 아닌 것처럼. 여전히 가족이다. 담담해서 더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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