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이박사와 뽕짝...

까칠부 2015. 6. 1. 01:38

70년대부터 이미 전통의 대중가요는 해외의 새로운 장르의 음악들에 밀려 조금씩 주류무대에서 물러나고 있었다. 더 이상 젊은 대중들은 트로트라는 이름의 지난 시대의 구닥다리 음악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과거의 팬들은 그저 추억으로만 옛음악을 소비하려 할 뿐이었다. 그때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던 트로트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준 곳이 바로 고속도로였다.


고속도로에서 장시간 운전하는 운전자들은 대부분 하층계급에 속해 있었다. 음악적인 의미나 가치보다 당장의 고단한 삶을 위로해줄 수 있는 수단이어야 했다. 어렵고 난해한 가사보다 쉽고 단순한 가사를, 일부러 주의해서 들어야 하는 음악보다 그저 흘려들어도 들리는 음악을, 무엇보다 운전의 지루함을 잊을 수 있는 신명나는 음악이어야 했다. 아무래도 하층계급에 속할 수록 문화적으로도 보수적이기 쉬웠기에 그 대상은 주로 전통의 대중가요에서 찾게 되었다. 많은 대중가요의 명곡들이 이때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일단 현실적으로 주류무대에서 대단한 인기나 수입을 기대하고 만들어지는 음반이 아니었기에 많은 비용을 들일 수는 없었다. 시장이 한정되었기에 수요층도 특정할 수 있었으므로 그 요구에 더욱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음반은 카오디오로 들을 수 있는 카세트테이프로 제작되었고, 대단한 음질을 기대할 수 없는 만큼 사운드에 대한 투자는 거의 없었다. 신디사이저 하나로 그저 귀만 지루하지 않게 자극적인 연주를 곁들였다. 노래는 빨라졌고 빈약한 사운드를 가리려 강한 리듬이 곁들여졌다.


아마 이쯤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눈치챈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말 그대로다. 이박사를 알기 한참 전에도 외할머니의 칠순잔치에서 그와 비슷한 공연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키보드 한 대만을 옆에 갖다놓고,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듯 숨가쁘게 여러 노래를 한꺼번에 쏟아내듯 부른다. 손님들의 흥을 돋으려 추임새를 넣는 것은 기본이다. 주류무대에서 트로트의 고급화를 추구하던 유명가수들 뒤에 오히려 대중과의 최일선에서 그들을 위한 음악을 들려주던 이들이 있었다. 그 연장에 이박사가 있었다. 더 적극적으로 당시의 빈곤하고 유치하던 고속도로의 사운드를 음악적 요소로 활용한다.


이박사의 음악이 가지는 원초적 흥의 정체일 것이다. 오랜동안 고속도로에서 단지 수단으로서만 음악을 소비하는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단련되고 발전해 온 결과였을 것이다. 무심히 듣던 이들도 졸음을 잊고 신명을 일깨운다. 더 적극적으로 청자에게 개입하여 그 흥을 이끌어내려 한다. 더 솔직했고 더 과감했다. 어쩌면 주류트로트가수들이 이박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태생은 트로트의 그늘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박현빈이나 홍진영 등 젊은 트로트가수들의 무대는 그같은 또다른 트로트의 뿌리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가사는 더욱 유치해졌다. 신명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음악적으로 엄숙해지려 하지 않는다. 친숙함과 저렴함은 어쩌면 종이의 앞뒷면과 같을 것이다. 주류가수들에 의해 트로트가 고급화되었다면, 그늘의 가수들에 의해서는 트로트가 더 친숙하게 다가가게 되었다. 잊혀질 뻔한 명곡들이 다시 더 값싸고 더 친근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돌아온다. 여전히 한국 대중음악에서 트로트는 가장 대중적인 장르 가운데 하나다.


문득 이박사에 대해 생각났다. 사기를 당해 그동안 번 돈을 다 날리고 몸도 불편한 아들과 함께 생활고까지 겪고 있다고 한다. 한국 트로트의 또다른 흐름이 이박사에 의해 만개되었다. 그리고 후배가수 가운데 많은 이들이 그 영향을 받고 있다. 태진아와 설운도가 있는가 하면, 어느 이름모를 잔치에 불려와 노래를 부르는 무명의 가수들이 있다. 그보다 더 친근하다. 그 의미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