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많은 다른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강수지의 팬이었었다. 물론 김완선의 팬이기도 했었다. 이지연도 좋아했었다. 남자의 지조란 원래 강가의 갈대와 같은 것이다.
강수지가 결혼한 사실도 몰랐다가 이혼하고 방송에 다시 나오기 시작하고서야 겨우 알게 되었다. 도대체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가. 어디서 누구와 어떤 삶을 살았었는가. 아니 솔직히 그다지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워낙 오랜 이야기이니. 그러다가 문득 '불타는 청춘'에서 쑥을 뜯으며 일년치 쑥을 일부러 캐다가 쪄서 얼리는 이야기에서 어떤 감동같은 걸 느꼈다. 그동안 참 열심히 살았었구나.
그러고 보면 진미령이 출연하기까지 방송내내 부엌일을 도맡았던 것이 김혜선과 강수지였었다. 이것저것 참으로 억척스레 잘도 하고 있었다. 평소 하던 일이었을 게다. 주부로서 남편을 위해, 아이를 위해. 그런 일상의 익숙함이 화려했던 과거의 모습과 겹치며 새삼스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한 편으로 아줌마의 억척스러움이, 그러면서도 여전히 소녀와도 같은 순수함을 보여준다. 강하다. 김국진과의 치와와커플이 주는 웃음과 별개로 인간 강수지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녀를 좋아했던 시간들이 어쩐지 뿌듯해지기도 한다.
사실 얼마전까지 '불타는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는 줄도 몰랐었다. 새로 시작하는 프로그램을 일부러 찾아서 볼 정도로 여유가 있지 않다. 드라마도 시작하고 나서나 어떤 드라마를 하는가보다 알지 사전에 알고서 보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치와와 커플 이야기를 듣고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보기시작해서 일주일만에 12편을 다 완주할 수 있었다. 아, 재미있다.
강수지의 말 그대로다. 어느새 나이를 먹고 나니 이것저것 가리는 게 많아졌다. 그러면서 할 수 있게 된 것들 만큼 하지 못하는 것들도 늘어났다. 오랜 친구만이 아닌 새친구와 만나 그러고 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것들로 울고 웃고 떠들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함께 같은 시간을 보냈던 이들이 TV속에서 다시 아이들로 돌아간다. 아이들의 순수와 지나온 시간의 상처들이 교차한다. 그래도 참 열심히 살고 있구나. 보상이다. 어느새 돌아보는 일에 익숙해진다.
평생 기타만을 알고 살아온 도인 김도균의 순수를 알아주는 것이 고맙다. 김동규의 여유와 넉살은 정말 배우고 싶다. 아무나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강한 듯 다정한 양금석이나, 어느새 막내가 되어 버린 김혜선의 성실함이나, 무엇보다 그 중심에 김국진이 있다. 야생에 풀어놨을 때 더 빛을 발한다. 리얼버라이어티를 위해 태어난 남자였을 것이다. 못하는 것이 없다.
고민이다. 하기는 '프로듀사'가 12부작일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된 것을 반기며. 무엇보다 순수한 웃음이 있다. 비웃거나 놀리지 않아도 흐뭇한 웃음이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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