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불타는 청춘 - 중년의 소년소녀, 단지 웃고 떠들며 놀다

까칠부 2015. 6. 27. 04:31

각박한 시간 속에 어느새 흐릿해져가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논다'일 것이다. 논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는 것이 잘 노는 것일까? 하기는 그런 고민을 한다는 자체가 논다는 것이 그만큼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 탓일 것이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논다는 생각조차 없이 너무나 잘 놀고 있었다. 굳이 논다고 여기게 되었을 때는 그만큼 놀 수 없게 된 뒤였다.


일이 노는 것이었고, 노는 것조차 일이 되고 있었다. 아이와 어른을 나누는 기준일 것이다. 공부도 놀이였다. 수를 알고 셈을 하는 것이 재미있고, 글자를 외워 책을 읽는 것도 재미있었다. 굳이 공부를 하려 해서가 아니라 놀이삼아 어느새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필요한 것들을 배워나갔다. 방청소를 하면서도, 혹은 주방에서 간단한 음식을 만들면서도, 어른들을 돕겠다고 기특하게 나서고 난 뒤에도, 가만 내버려두면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느라 정신들이 없다. 아이들이 진지해지기 시작하는 것은 무서운 것을 알고, 무거운 것을 알면서부터다. 그리고 조금씩 놀면서도 주위의 눈치를 살피고, 자기의 처지를 헤아리는 지혜를 알게 된다. 그만큼 지켜야 할 것들도 생기고,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것들도 늘어난다. 그만큼 삶이 무섭고 무거워진다.


그래서 더 새로운 것일 터다. 이미 자신의 분야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남다른 명성과 지위까지 거머쥐고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더 조심스러워지고 많은 것들을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한때 많은 이들의 우상이었고, 지금도 역시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고 관심을 가지는 명사들인 그들이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들며 놀고 있다. '말뚝박기'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며, 심지어 나무를 쪼개는 것 가지고도 놀이의 수단으로 삼는다. 누가 끝까지 나무를 더 잘게 쪼개는가. 대나무를 보고는 대뜸 타고 올라갈 생각부터 한다. 어디인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도 아니다. 단지 놀 수 있고, 놀려고만 한다면, 어디든 놀이터가 되고 무엇이든 놀이가 된다. 무심코 보기 시작한 SBS의 예능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에 자신도 모르게 금요일이면 채널을 고정하게 되는 이유다.


물론 팬이어서도 있다. 아주 어렸을 적 아이돌이던 강수지의 팬이었었다. 당연히 김완선의 팬이기도 했었다. 록을 좋아했기에 '백두산'과 김도균의 이름 역시 모를 수 없었다. 한때 김국진을 모르면 간첩이었었다. 그런 그들이 함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데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여전히 강수지는 아름답고, 김완선은 매력적이며, 김도균은 기타만 아는 도인이었다. 김국진은 예나 지금이나 남자면서 귀엽다. 나이를 먹어서도, 상남자가 되어서도, 그러나 항상 그의 말이나 몸짓에는 다른 사람의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가득 담겨 있다. 각자 나름의 굴곡도 있고, 아픈 상처도 있지만, 아니 그렇기 때문에 아무일 없이 웃을 수 있는 그들의 모습이 더 반갑기도 하다. 오래전 스타들은 여전히 자신의 삶에서도 주인공이었다.


때로 억척스런 아줌마가 되고, 때로 다시 천진한 소녀로 돌아가고, 때로 삶의 모든 쓰고 매운 맛을 두루 겪은 노회함이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백지의 순수로 되돌아간다. 설레고, 놀라고, 당황하고, 기뻐하고, 그러면서 가끔 깊은 이야기들도 오간다. 추억을 떠올리다가, 서로의 지난 시간들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새로운 만남과 경험에 놀라며 기뻐하다가, 그리고 마지막에는 서로 웃는다. 나이마저 잊은 듯 철없는 놀이에 빠져 자신마저 잊게 된다. 부러움이다. 나도 저들과 같이 아무것도 없이 그저 어울려 함께 놀고 싶다. 질투마저 없는 것은 그만큼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지내왔던 당연한 본능의 욕구인 때문일 것이다.


리얼버라이어티 '불타는 청춘'의 컨셉은 오직 하나다. 어디가서 무얼 하며 노는가. 어디서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며 함께 놀 것인가. 그때도 그랬다. 어디를 간다 하면 거기서 어떻게 놀 것인가부터 생각했다. 누구와 만난다면 누구와는 어떻게 무엇을 하며 놀 것인가만을 기대했었다. 새로운 장소에는 새로운 놀이가 있다. 새로운 만남이 익숙한 놀이마저 새롭게 만든다. 그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 바로 '논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상업방송이기에 이것저것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은 것이 한눈에 보인다. 하지만 결국 시청자와 TV를 통해 마주하는 것은 출연자 자신들일 것이다. 하기는 어쩌면 너무나 뛰어난 연기자들이라 그렇게 깜빡 속아넘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차라리 꿈을 꾸는 것은 그 꿈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문득 그런 생각도 해보았었다. 너무 나이든 사람만 나오는 것은 아닌가. 너무 지난 기억들에만 기대는 것은 아닌가. 대중의 향수에 기대어 추억만을 팔고 끝난 프로그램이나 연예인은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다. 만일 프로그램이 성공하려 한다면 보다 젊은 게스트가 필요하지 않을까. 젊은 게스트들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그조차 다른 누구도 아닌 출연자 자신들이 보여주려 한다는 것을. 어색하고 서툴지만, 몸도 머리도 따라주지 않아 힘들고 어렵기만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최선을 다한다. 최선을 다해 놀며 즐긴다. 그것들을 그저 쉽게 보며 즐긴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있다. 서로의 캐릭터를 만들과 캐릭터와 캐릭터 사이에 관계를 설정한다. 단지 강수지와 다른 남자출연자가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김국진과 엮이며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양금석이 출연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자연스럽게 김도균을 통해 그 이름이 언급된다. 김국진과 강수지의 치와와 커플은 소년소녀처럼 수줍고, 아저씨아줌마처럼 능청스럽다. 추억이 더해지며 아스라한 어떤 설렘마저 느끼게 한다. 일관되고 연속된 서사가 있다. 새로운 얼굴이 들어오고 나가도 그 큰 줄기는 흔들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웃을 수 있다. 가릴 것 없는 능청스럽고 넉살좋은 대화들이 그들만의 40금짜리 웃음을 만들어낸다.


다만 그럼에도 불안해지는 것은 오래된 것이 낡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대중의 인식일 것이다. 오래되어 친숙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진부하고 지루할 수 있다. 낯설면 낯설어서, 혹은 익숙하면 익숙해서, 그 경계를 찾기가 쉽지 않다. 출연자들의 부담이 크다. 매번 새로워야 하고, 그러면서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 예능초보들이 대부분이다. 금요일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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