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어셈블리 - 진상필의 진심과 돌아온 최인경, 다시 동지로써

까칠부 2015. 8. 13. 04:45

믿고 싶은 것일 게다. 결국은 진심이라고. 진실하고 성실한 마음만이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드라마로나마 - 아니 드라마이기에 꿈꾸고 싶어진다. 거짓없는 진심이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것을. 고작 지역구 국회의원에 불과할지라도.


여론이란 전체가 아니다. 그렇다고 항상 다수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목소리 큰 소수가 다른 소리들을 집어삼킨다. 당장 귀에 들리는 것이 그것 뿐이니 그것이 전부라 착각하고 만다. 그것이 다수고, 대세고, 전부다. 그래서 맞서지 말라 하는 것이다. 억지로 키운 목소리라면 언젠가 지치는 순간이 오고 만다. 진실이 아니라면 반드시 한계를 맞는 순간이 온다.


모든 경제시 시민들이 신항만건설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모든 주민들이 개발에 찬성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개발이 구체화될 쯤이면 항상 언론의 지면을 장식하는 것이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과의 갈등일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터전을 잃는다. 정든 고향을 등지고, 평생의 일을 놓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목소리가 그다지 크지 않기에 아무도 그들이 하는 말을 귀기울이지 않는다. 때로 다른 사람의 큰 목소리에 휘둘리기도 하기에 그 목소리는 바로 전해지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적나라한 현실일 것이다.


평생을 다른 곳에서 살았어도 단지 태어난 곳이 이곳이라는 이유만으로 같은 고향 사람이라며 반긴다. 평생을 이곳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왔음에도 태어난 곳이 다르니 다른 동네 사람이라며 어색해한다. 정부에서 실사단도 나오고 거창한 행사가 열리니 그것만으로 그저 대단하다 여기며 감탄한다.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가 구체적인 계획이나 포부보다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진 사실에만 주목한다. 당장 신항만이 필요해서가 아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사실에 이끌린다. 바로 백도현(장현성 분)의 전략이다.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백도현이라는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경제시 유권자들에게 알린다. 백도현 정도의 거물이 경제시에서 태어났다. 지지부진하기만 하던 신항만을 어느새 가시권으로 끌어올렸다. 경제시의 유력인사들이 백도현을 지지하고 나선다. 그런데 막 불기 시작한 바람에 정면으로 맞서려 하니 진상필(정재영 분) 정도는 그냥 휩쓸려 날아가 버린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경제시를 위한 바람이었고, 경제시 유권자들을 위해 필요한 바람이었는가. 그러나 바람이 너무 거셀 때는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기도 버거운 법이다. 바람이 불 때 모든 것을 결정지으려 한다. 바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이성도 논리도 합리도 없다.


하기는 정치란 것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유권자가 후보자와 공약에 대해 일일이 구체적으로 살피고 따져서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4년에 한 번 있는 선거이고, 선거가 아니더라도 당장 자신의 일상부터 너무 분주하다. 결국은 인상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 같은 고향 사람인가. 들어 본 적 있는 이름인가. 이름 앞에 과연 어떤 호칭들이 따라붙는가. 그나마 정당은 일관된 지향과 정책을 가지니 나름대로 합리적인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후보자의 이름도, 성향도, 전력도, 공약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바람에 휩쓸려 선택하고 결정한다. 그같은 정치와 유권자의 속성을 이용한다. 박춘섭(박영규 분)이 경고하는 이유이고, 최인경(송윤아 분)이 백도현에게 실망한 이유다. 그런 정치를 하자고 백도현과 함께해 온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최인경에 대한 자격지심이었을 것이다. 국회의원은 자신인데 오히려 보좌관인 최인경 쪽이 더 많이 알고, 더 많은 것들을 경험했으며, 더 옳고 더 바른 판단을 할 줄 안다. 그래서 더 의심한다. 최인경처럼 얼마든지 더 많은, 더 가치있는 일들을 할 수 있는 빼어난 실력을 가진 인재가, 아무리 자신 정도의 인물을 위해 진심이 되어 있을 리 있겠는가. 그보다 더 큰, 더 가치있는 의도나 목적이 개입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자신으로 인해 최인경이 국회의원 출마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쉽게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자기가 그녀의 꿈을 빼앗았다. 그녀의 것이었어야 할 기회를 가로채 버렸다. 자신의 자격지심이 사실이 되어 버린다. 의심과 열등감을 미안함이 대신하며 원래의 신뢰를 회복한다. 신뢰라기보다는 동경이었다. 자신보다 우월한 대상을 향한 부러움이고 존경이었다. 그런 최인경이 자신을 동지라 말해준다. 그래서 더 최인경을 놓아보내려 한다. 속죄를 위해. 그리고 그녀를 향한 자신의 인정과 존경을 위해. 최인경이 정치인으로서 성공한다면 자신은 당장 실패하더라도 얼마든지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관계가 역전된다. 차라리 진상필이 최인경의 보좌관 같다. 최인경을 존경하여 그녀를 위해 희생한다. 원래 진상필이 국회의원이고 최인경이 보좌관이다. 동지란 나란히 함께 가는 사람이다. 누가 앞서거나 뒤따르는 일 없이, 누가 끌어주고 밀어주는 것 없이, 그냥 함께 손잡고 함께 나간다. 수어지교라 말한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다. 아직은 진상필이 국회의원이고, 진상필에게 기회가 있다. 그 기회를 진상필의 허락 아래 마음껏 누린다. 최인경이 백도현이 아닌 진상필을 선택한 이유다. 백도현 역시 최인경을 필요로 했지만 그녀의 자리는 항상 백도현 자신의 뒤이거나 아래였다. 존중도 존경도 없었다. 일방적인 거래만이 있을 뿐이었다. 진상필의 그릇일까? 오직 최인경만이 그것을 꿰뚫어본다.


비로소 국회의원과 보좌관으로 만난다. 백도현의 소개가 아닌 서로 자신의 의지로 동지로 만나 다시 손을 잡는다. 진상필 개인의 싸움이 아니다. 최인경 자신만의 싸움도 아니다. 우리의 싸움이다. 자신들의 싸움이다. 백도현은 일개 재보선출신의 반쪽짜리 초선의원과 그 보좌관이이 상대하기에는 너무 크고 강한 적이다. 현실정치의 모든 모순과 부조리가 백도현의 편을 들고 있다. 백도현 자신이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그것들을 자신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 현실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기적은 가능할 것인가. 인간의 신뢰가 부정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최인경의 실력과 진상필의 그릇이 백도현과 현실을 넘어선다.


드라마일 것이다. 하기는 그래서 드라마다. 김규환(옥택연 분)마저 우연히 듣게 된 진상필의 진심에 오해를 풀고 그의 편에 서게 된다. 김규환으로 인해 최인경은 다시 진상필에게로 돌아간다. 진심을 믿고 싶다. 진실이 통함을 믿고 싶다. 현실이 그렇지 못함을 안다.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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