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 이해하기 어려운 시작, 대사가 겉돌다

까칠부 2015. 10. 6. 05:06

너무 억지스럽다. 인정과 명분이 다르고, 명분과 대의가 다르다. 사적으로 의형제였다. 대대로 섬겨온 주군가문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고려를 배반한 반역자였다. 고려인이었고 고려왕의 신하였다. 고려의 왕이 잃었던 땅을 되찾고자 군사를 일으키고 있었다. 과연 의형에 대한 개인의 의리와 왕에 대한 충성 가운데 무엇을 더 우선해야 하는가. 최영은 고려의 충신이고, 사대부들은 당연히 유교의 대의명분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뻔히 이인임인 것을 아는데 굳이 이인겸(최종원 분)이라 바꿔 불러야 하는 이유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몇 년 전 같은 방송사에서 방영되었던 역시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 퓨전역사드라마 '대풍수'에서도 실제의 역사와는 전혀 달랐음에도 이인임은 그저 이인임일 뿐이었다. 하기는 작년 종영된 MBC의 역사드라마 '기황후'에서도 논란을 피하기 위해 주요인물들의 이름과 설정을 모두 달리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그 모델이 된 원래 이름을 바로 알아차리고 있었다. 다름아닌 역사를 배경과 소재로 사용하는 무거움일 것이다.


실제 있었던 사실이다. 실재했던 사람들이고, 일어났던 사건들이다. 새로운 사실 이외의 무엇으로도 그것을 부정하거나 훼손할 수 없다. 나라 이름이 고려이고, 이성계(천호진 분)와 정도전(김명민 분) 같은 이름들이 등장한다. 도방의 최고권력자이고 사람들로부터 수시중이라 불리운다. 다른 누가 있겠는가. 그 최측근 가운데 무장으로는 길태미(박혁권 분)가 있고, 원래 사대부였던 홍인방(전노민 분)이 있었다. 임견미가 원래는 삼한제일검이라 불릴 정도로 대단한 검술을 가지고 있었다 하러다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기록에 없는 것은 상상으로 채우고, 기록에 있는 것도 필요에 의해 각색을 한다. 전혀 다른 새로운 인물로 다시 태어나더라도 그거 역시 어디까지나 창작을 위한 재창조의 영역이다. 문제는 얼마나 역사적 맥락과 극적 개연성을 충족시키는가.


그래서 고증에 충실한 정통역사드라마를 표방했던 KBS의 대하드라마 '정도전'에서도 정작 세부적으로 기록과 전혀 다르거나 혹은 아예 없는 내용들도 적지 않았었다. 드라마로서 재미있어야 하고, 작가가 의도한 주제가 보다 명확히 전달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권신 이인겸의 포악과 사치를 강조하기 위해 중국 서진시대의 전설적 거부 석숭의 인유돼지 일화를 차용한 것은 매우 적절하면서 탁월한 선택이었다. 미각의 쾌락을 위해 돼지에게 사람젖을 먹이고, 다시 그 사람젖을 확보하기 위해 민가에서 갓 아이를 낳은 엄마들을 납치해 온다. 엄마의 젖을 먹은 돼지가 이인겸의 식탁에 오를 때 엄마를 잃은 아이는 젖을 못먹고 죽어가고 있었다. 화려한 개경의 한귀퉁이에는 아무렇게나 방치된 시신들이 그대로 썩어가고 있었다. 다름아닌 사람에 의한 고려말의 지옥과도 같은 현실이 단적으로 보여진다.


어미를 빼앗긴 오누이가 서로 의지하며 개경까지 찾아와 구걸을 하고, 어미를 잃은 어린 계집아이는 저보다 더 어린 동생을 업고 젖동냥에 나선다. 개경이 처음인 어수룩한 촌놈은 그들의 먹잇감이다. 부잣집 높은 담 틈새로 숨어들어 부엌에서 먹을 것을 훔친다. 권신은 나라를 훔치고, 부패한 관리는 백성의 것을 빼앗고, 백성은 살기 위해 서로의 것을 탐낸다. 그렇게 흘러흘러 아무런 희망도 없는 막다른 곳에 누추한 인생들이 모여 산다. 지게를 진 백성의 바랑에서 주먹밥을 훔쳐 나눠먹으며 세상과 미래와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들이 살았던 현실이었다. 지난 시대이며 역사였다. 사실인가보다 맥락이고 개연성이며 의미다. 이인겸이든 이성계든 그같은 의도 안에 존재하는 캐릭터들이다. 이인임이 이인겸이 되었다고 이인겸이 이인임이 아니데 될 수 없는 이유다. 불필요한 낭비다. 이인임인 것을 잊거나, 아니면 일부러 떠올려야 한다. 이인겸이면서 이인임이다.


억지스런 설정 만큼이나 자연스럽지 못한 대화들 역시 아쉬운 부분들일 것이다. 무언가 상당히 힘을 주어 대사를 내뱉고 있는데 그다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대사에 쓰인 휘황한 어휘들만 따로 노는 느낌이다. 배우들의 연기가 나쁘지는 않다. 아역들마저 연기가 훌륭하다. 다만 이인겸이라는 이름에서와 같이 지나친 작가의 의도가 자연스러움과 개연성을 해치고 있다. 대사는 작가가 쓰는 것이 아니다. 인물들이 말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장식적이고 기교적인 연출들도 드라마에 빠져드는 것을 방해한다.


기대가 컸다. 오히려 역사적 사실에 충실했던 KBS의 대하드라마 '정도전'에 대한 만족이 보다 상상이 가미된 새로운 드라마에 대한 기대를 키우고 있었다. 같은 정도전과 이방원(유아인 분)으로, 이성계와 이인임으로, 무엇보다 크게 화제를 불러모았던 전작 '뿌리깊은 나무'의 프리퀄로써 이방지(변요한 분)와 무휼(윤균상 분)이라는 익숙한 이름에 주목하고 있었다. 소이 신세경도 다른 이름으로 출연한다. 판단은 아직 이르다. 아쉬움이 크다.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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