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건의 문제일까? 아니면 역량의 문제일까? 장면들이 하나같이 따로 놀고 있다. 장면과 장면을 잇는 선이 보이지 않는다. 각각의 장면을 조각으로 하는 전체의 그림이 전혀 연상되지 않는다. 막이 오르면 좁은 무대 위에서 배우들은 연기를 시작하고, 막이 내리고 연극이 끝나면 다시 모두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딱 보여줄 것들만 보여준다.
어쩌면 욕심이 너무 컸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더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싶다. 더 놀래키고 더 감탄케 하고 싶다. 시청자에게 더 강한 인상을 심어주려 한다. 고려의 최고권력자 이인겸(최종원 분)의 배후에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중요한 정보를 전해준 의문의 인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의문의 인물이 이인겸에게 남긴 편지에 찍힌 인장의 문양이 땅새 남매의 어머니를 납치해간 이들의 그것과 일치하고 있었다. 악단의 수레에 숨어 이인겸의 집을 빠져나오던 땅새 남매를 습격한 것은 복면을 쓴 정도전의 무리들이었고, 아무도 모르게 원나라 사신을 맞는 영접사를 자청한 정도전이 무언가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정도전이 원나라와의 수교를 막기 위해 스스로 영접사가 되어 원나라 사신을 죽이려 하고 있다. 확신처럼 번지기 시작한다.
사대부들은 그런 정도전의 계획을 막기 위해 나서고, 이인겸은 그런 정도전의 계획을 이용하여 사대부들을 일소하기 위해 계획을 꾸미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 어린 봄이와 이방원의 인연이 이어지고, 정도전과 어린 이방원, 그리고 정도전과 어린 이방지와의 만남도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장면에서 이제까지의 모든 추측과 확신, 의혹들을 한 번에 뒤집는 일대 반전이 일어난다. 정도전은 처음부터 이인겸의 계략을 눈치채고 있었으며, 오히려 그것을 역이용하여 모두가 우려한대로 사대부와 백성의 힘을 모아 원과의 수교를 막는 계획을 행동으로 옮긴다. 어떻게든 전쟁을 막고자 하는 정도전의 연설과 그에 고무되어 일어나는 사대부와 백성들, 피가 튀고 살이 찢기는 참상 속에 무심히 정도전에게서 시작된 노래가 번져간다. 정도전이 계획한 것들이 마침내 현실이 된다.
아마 빠진 부분도 있을 것이다. 미처 생각나지 않아 적지 못한 것들이다. 하나나 둘이면 되었다. 확실한 주제 하나를 중심에 두고 그를 살릴 수 있는 내용을 위주로 분량과 비중을 조절하여 가지처럼 배치한다. 이인겸의 배후에 있는 의문의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키우고 싶었다면 그에 대한 분량을 늘리는 것이 옳았다. 정도전의 계획이 중심이었다면 오히려 이인겸의 배후에 숨은 의문의 인물은 그저 언급만 하고 지나치는 정도가 적당했다. 아직 초반이다. 먼저 시청자로 하여금 드라마에 지중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충분히 드라마에 집중한 상태에서 나머지 필요한 다른 설정과 내용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끔 배려한다. 오히려 너무 많은 내용들을 일방적으로 우기듯 집어넣는 바람에 자칫 흐트러질 수 있다. 산만하고 난잡해진다.
한 마디로 기승전결이 없다.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도 중요하지만, 한 회 한 회 방영되는 단위 안에서 완결되는 구조 역시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한 회가 끝나면 다시 하루를 기다려야 하고, 2회 한 주 분량이 끝나면 일주일을 기다려 다음회를 봐야 한다. 충분히 방영분 안에서 완결된 재미를 느끼면서 다음 회를 기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단 드라마로서 재미가 없었다. 이것저것 흥미로운 요소들은 많은데 그것을 하나로 잇는 일관된 무언가를 찾을 수 없었다. 조금 더 지켜보다 보면 나아지게 될까. 일단 설정 자체는 무척 흥미롭다. 어떻게 살릴 것인가가 남은 과제일 것이다. 많은 창작물들이 아이디어만 놓고 본다면 매우 훌륭하다.
인물들을 느낄 수 없다. 이성계가 뭐하는 사람인지, 정도전이 어떤 성격에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이인겸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고, 길태미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인겸의 대사처럼 정몽주(김의성 분)와 홍인방(전노민 분)은 어떤 욕망과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차라리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장면을 연기하는 어린 봄이의 모습에서 익숙한 무언가를 느꼈다. 귀한 신분의 사내아이와 비천한 여자아이가 한 데 어울려 싸우며 뒹굴고 있다. 아직 봄이와 이방원 두 사람 사이의 인연은 중요하게 다루어질 단계가 아니다.
전작인 '뿌리깊은 나무'를 떠올리게 된다. 주제가 명확했다. 중심이 확실했다. 나머지를 오로지 그를 위해서만 존재했다. 그 위에 로맨스가 더해졌다. 왕의 고뇌와 사대부의 날선 주장이 더해지고 있었다. 하나의 중심이 되는 사건을 쫓아가는 가운데 그 모든 것들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겪게 되었다. 대사에도 너무 힘이 들어갔다. 대사만 멋지다. 실망이 크다. 아쉽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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