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차라리 국정교과서가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

까칠부 2015. 10. 12. 00:42

어차피 국사라고 해봐야 암기과목이지 않은가. 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오로지 한 가지 수능을 잘 보기 위해서다. 좋은 대학 가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국사를 시간과 노력을 들여 배울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효율적인가. 교과서가 하나라면 문제를 내기도 풀기도 무척 쉬워진다.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이해가 공존해야 한다. 그러나 다양한 해석과 이해가 공존해봐야 어차피 시험문제란 객관식으로 출제된다. 아무리 다양한 해석과 이해가 있어도 정답은 오로지 하나다. 교과서는 여럿인데 답은 단 하나다. 무언가 모순되지 않은가. 바로 역사교육의 난맥이다.


아주 오래전이었다. 어느 사이트에서 제법 논객입네 알려진 이의 글이었을 것이다. 여러 정당의 주요정치인들의 실명을 들어 그들의 성향을 역사관에 빗대어 비웃는 내용의 글이었었다. 당연히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정치인에게는 교과서에 기술된 정답을, 자신이 비판하려는 다른 정당의 정치인들에게는 그와는 다른 오답을, 그런데 정작 내가 그 글을 보았을 때는 그들 다른 정당의 정치인들이 내놓은 답이 더 정답같았었다.


그 오류조차 나름대로 배웠다는 사람들이 모인 사이트에서 알아차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저 오답을 내놓은 다른 정당의 정치인들을 비웃는데만 급급했을 뿐이었다. 하기는 이해한다. 그렇게 배웠을 터다. 정답은 하나라고. 정답 이외의 다른 답은 틀린 것이라고. 그것이 바로 한국 역사교육의 현실이다.


어찌해야 하는가. 그러자면 비용이 많이 든다. 사람도 돈도 지금보다 몇 배로 든다. 그래서 안된다. 시험도 어려워지는데 내 주머니에서 돈이 더 나간다. 어느 한국사람이 그런 정책에 찬성하겠는가. 역사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계량할 수 있는 논술과 주관식 위주로 시험을 바꾼다. 그것을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문제내고 또 채점하겠는가. 한국사회에는 기본적으로 신뢰가 없다.


검인정이든 국정이든.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서 역사교육이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가졌을까. 아니 교육에 있어 다양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그렇게 대단한 의미를 가졌을까. 사실 가장 비겁하다. 냉소다. 그럼에도 어느 쪽이 더 우월한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다른 해석과 이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


국가에서 역사교과서를 일방적으로 만들어 전국의 학교에 배포한다. 국가의 의도와 목적이 개입되었을 수 있는 내용을 단 하나의 사실로써 모두가 배워야 한다. 배우고 평가받는다. 어째서 세계적으로 그와 같은 방식을 채택한 나라가 몇 나라 되지 않는가. 그럼에도 그것을 지지하는 국민이 다수라는 사실이 그저 즐거울 뿐. 한국인은 역시 우월하다.


나라경제가 어렵다. 기업의 경쟁력을 갈수록 떨어지고, 내수마저 침체되어 시장에 돈이 돌지 않고 있다. 다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다.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 쏟아부어야 할 시간과 노력이 어마무지하다. 다시 분열시키고 시간을 보낸다. 국민의 선택이다. 항상 존중한다. 국민은 현명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에 대한 판단은 국민의 여론으로 계량할 수밖에 없다. 국민이 지지한다. 국민이 최소한 용인해준다. 결코 정치적으로 잘못이라 말할 수 없다. 비판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국민을 바보로 만들 수는 없다. 체념은 결코 낙관이 될 수 없다. 지켜본다. 항상 그랬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