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천봉삼(장혁 분)을 찾아 천소례(박은혜 분)는 멀리 동생을 버린 의주의 신당근처 의원까지 찾아간다. 마침 송파마방을 떠난 천봉삼도 어렸을 적 인연을 쫓아 의주의 신당을 찾는다. 의원을 통해 누나가 자신을 찾으러 왔다가 방금 떠났다는 말에 천봉삼은 무작정 누나가 차고 떠났다는 가마를 쫓아 아무 가마나 뒤지며 달려간다. 벼룻길에서 벼랑아래로 떨어지는 가마를 보았을 때 누나라 여기며 뛰어들었지만 그러나 정작 가마에 타고 있던 것은 막 청상이 되어 친정으로 돌아가던 여인 조소사(한채아 분)였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한양에서는 김학준(김학철 분)을 통해 신석주(이덕화 분)에게 그녀의 초상이 그려진 화첩이 건네지고 있었다. 드라마만 아니었다면 이렇게 기막힌 우연과 운명이 어디에 있을까.
아니나다를까 천오수라는 이름은 길소개(유오성 분)에게 평생의 빚이었다. 자기로 인해 죽었고, 마지막 남긴 유언마저 지키지 못했다. 천오수의 탓이 아닌 걸 안다. 객주인이라면 당연히 그때 그런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모르려 해도 이제는 알 수밖에 없다. 단지 인정하기 싫은 것 뿐이다. 그런데도 천오수는 자신과 천가객주의 식구들을 위험에 빠뜨린 자기를 용서해주었었다. 심지어 자식들까지 자기에게 맡기려 하고 있었다. 마지막 죽으면서 비명처럼 외친 아버지의 이름이 아직까지 가슴에 맺힌다. 자기가 잘못한 것은 아닐까. 터무니없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은 아닐까. 그러나 되돌릴 수 없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 천오수의 유언마저 저버리고 천소례와 천봉삼을 버려둔 채 혼자서 떠나고 말았다. 변명처럼 위안삼는다. 그래도 천소례가 아주 못살지는 않는구나.
악한 것이 아니다. 약한 것이다. 여린 것이고, 어리석은 것이다. 되돌리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돌아가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나마 천소례와 천봉삼은 피로 이어져 있다. 가족이기에 천소례는 천봉삼을 찾아 과거의 잘못을 되돌리려 한다. 죽음은 결코 되돌릴 수 없고, 스스로 떠나온 이상 다시 가족이 될 수도 없다.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후회를 성공으로 덮고, 미안함을 야망으로 가린다. 그나마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을 이룰 수 있다면 아버지의 아들로는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를 위해 그런 선택들을 해야만 했다. 처음으로 솔직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불우한 현실로부터 다시 한 번 더 앞으로 더 위로 나아갈 계기를 만난다.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그는 과거라는 운명과 만난다.
정이 너무 깊어 차라리 그 정을 배반하고 만다. 좋아하는 여자마저 기꺼이 양보할 정도로 깊었던 의리가 인정받지 못했을 때 차라리 원망은 증오로 바뀐다. 남자는 개가 아니면 개다. 봉선이(양정아 분)가 보기에 송만치(박상면 분)는 그저 덜된 아이에 불과하다. 좋아 따르던 형에게 삐져서 돌이키지 못할 잘못을 저지르고 마는 철부지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봉선이가 송만치를 따라나선 이유였을 것이다. 이미 지나버린 정보다는 차마 혼자 버려둘 수 없는 불안함이고 연민이었을 것이다. 다그치며 다시 돌아가자 설득한다. 그러나 형제의 정만을 고집하기에는 형 조성준(김명수 분)는 이미 400명이 넘는 식솔들을 책임져야 하는 송파마방의 쇠살쭈였다. 한 번 엇갈린 관계는 오해를 풀 사이도 없이 극단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어차피 남의 이야기란 그저 술자리의 안주거리에 불과하다. 송파마방에 일어난 불상사를 안주삼아 술자리에 모인 전국의 객주들인 한바탕 웃음꽃을 피운다. 한 여자의 불행한 인생 또한 그저 사내들의 걸죽한 음담패설의 소재가 될 뿐이다. 그게 바로 남이라는 것일 게다. 그나마 남이 아니기에 미워도 하고 원망도 한다. 가엾게도 안타깝게도 여긴다. 우연으로 인한 인연을 운명으로 바꾸려 한다. 신석주는 조소사의 화첩을 집어들고, 조소사는 자신을 구해준 천봉삼을 따라가려 한다. 전혀 모르는 남이더라도 인연과 운명은 한순간에 바뀌고 만다. 누나를 만나지 못했기에 천봉삼도 또다른 운명과 만난다.
서로 다른 곳을 향해 흩어지던 운명이 이끌리듯 다시 하나로 모인다. 서로 다른 운명을 걷던 천봉삼, 천소례, 길소개 세 사람이 하필 같은 날 의주에 모이고 있었다. 천소례를 뒤쫓아 무작정 달리던 그의 앞에 막 남편을 잃고 시댁을 떠나던 조소사의 가마가 있었다. 멀리 한양에서도 또 하나 인연은 시작된다. 길에서 만난 인연은 다시 길에서 헤어지는 법이다. 풀어진 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히며 모인 이야기들이 다음으로 이어진다. 아직 다 만나지 못한 인연들이 남았다. 차마 다 담지 못한 감정들이 길 위에 흐드러진다.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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